18년 학교생활을 통한 나 자신 바로알기
오랜만의 글이다.최근 브런치 글이 뜸했다. 지난 글이 2월이니 약 4개월을 쉰 셈이다. 개인적인 일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대학원 생활의 거진 마무리가 가장 컸다. 2주 전, 마지막 기말고사를 끝으로 대학원에서의 의외로 힘들었던 CE과정을 끝나게 되었다.
나의 학부 전공은 Computer Science & Engineering이다. 즉, 공학(Engineering)과 과학(Science)을 함께 배운다. 즉, 전자과처럼 하드웨어 회로를 직접 다루는 것은 아닌데, 컴퓨터 구조부터 해서 어셈블리언어, 임베디드 시스템, 그리고 요즘 유행인 뭐 아두이노나 라즈베리 파이를 구동하고, 센서를 연동하고, 이를 통한 하드웨어적 장치를 만드는 것 까지 배우는 것이 공학이고, 과학은 인공지능이나 자료구조, 알고리즘, 프로그래밍 언어론, 컴퓨터 공학, C, C++, 자바, 디자인 패턴 및 컴퓨터와 관련된 수학을 배우게 된다.
학부의 커리큘럼은 나름대로 괜찮다고 생각했다. 2학년때 까지 어느정도 공학과 과학의 기본적인 과목을 배우고 3학년부터 내가 공학을 할지 과학을 할지를 정한다. 그때부터는 소위 전공 필수라 하는 것이 공학 혹은 과학으로 나뉘어진다. 나의 경우는, 당연히 하드웨어나 로우레벨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에 컴퓨터 과학을 택한 편이었다. 학부에서 최악의 학점을 받은 것들이 다름아닌 컴퓨터구조와 디지털 프로세싱, 논리회로 등의 공학과 관련된 과목이었기 때문이다.
미국에 대학원을 진학했을 때, 사실 학업보다는 창업에 꿈이 컸다. 그래서 대학원도 사실 죽어라 노력해서 간 경우는 아니다. 그렇게 진학했던 지금의 대학원이 벌써 2년이 지났다. 친구들은 다 졸업했는데, 나는 하필 한 과목을 재수강 하는 판국에 밀려서 한학기를 더 들어야 한다. 뭐 그래봤자 SE (Software Engineering)를 전공하는 친구들과의 졸업작품이겠지만. 참고로 우리 대학원은 취업 위주의 학교라, 논문 혹은 졸업작품을 선택해서 졸업할 수 있다.
내가 근 2년간 가장 후회했던 것이 바로 전공의 선택이었다. 사실 위에서 언급한 공학과 과학의 차이를 대학원에 들어갈때도 잘 알지 못했다. 대학에서 무엇을 배우는지, 커리큘럼을 자세히 보지 않았다. 대학원 초에 왜 논리회로와 디지털 프로세싱을 다시 배우는지는 그저 의아해 했을 뿐이었다.
그러던 중, 입학한 학교를 1년 후 돌아보니 내 전공이 Computer Engineering이다. 즉, 로우레벨부터 다시 시작하는 셈이다. 운명의 장난일까, 내가 그렇게 싫어하던 컴퓨터 구조, 어셈블리, 디지털 프로세싱 등을 그것도 심화과정을 해야한다. 그것도 졸업 필수 과목으로써 빼도 박도 못하게 말이다. 그렇게 디지털 프로세싱 한 과목을 재수강 했고, 지난 학기에는 졸업 필수 과목인 Advanced Computer Design, Computer Architecture를 듣느라고 정말 말 그대로 정신이 없었다.
난 사실 메모리의 구조에도 별로 관심이 없고, SRAM, DRAM이 어떤 colxrow로 배치되어 몇 Kb가 어떻게 나눠 들어가는지, 메모리 주소는 어떻게 할당되는지 그런거 모르면 어때 하고 생각했는데 그런걸 배웠다. 파이프라이닝이 존재한다고 알면 됬지, 그걸 진짜 하드웨어에서 어떻게 돌아가는지 그리고 버스에서의 바이트 들의 이동에 대해, 그리고 그 16진수들의 짜임에 대해, 그리고 그걸 ARM이나 MIPS로 해석하는 과정까지 배울줄은 몰랐다. 정말, 몰라도 정말 몰랐다.
중간고사에 크게 대어서 그랬을까, 어쨌든간에 정말 낙제의 칼날에 서있던 지난 학기에 가까스로 수업 통과를 했고, 의외로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정말, 이 2년간의 대학원 생활, 물론 창업을 하며 부차적으로 공부하자는 생각으로 시작한 것이었지만, 내가 간과를 해도 너무나도 크게 간과를 한 것이 있다면 바로 내가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인지를 고려해 보지 않고 시작했다는 것이다.
대학원 이전, 나는 유학 경험도 없고 외국의 수업을 받아본 적도 없었다. 혹자는 미국 스타일을 따라가는 데에 반년에서 1년이 걸린다고 했다. 그 1년동안의 나의 성적은 형편없었고, 과제나 조모임 같은 것을 따라가기도 벅찼다. 그 시간동안에는 "내가 왜 이 공부를 하고 있는거지?" 라는 생각을 할 겨를 조차 없었기 때문에, 그저 시키는 대로 묵묵히 공부할 수 밖에 없었다.
이제야 모든게 끝나고 되돌아 본다. 그 동안 얼마나 스스로 배우고 싶던 과목이 많았던가, 클라우드 컴퓨팅이나 PL, FP, HCI, ML등.. 그렇게 공부하고 싶었는데 인강이나 책 한줄 볼 시간이 없었다. 게다가 로우레벨이 익숙하지 않은 나머지 생활 패턴이 엉망이 되었고, 나름대로 자기관리 서비스를 개발한다는 놈이 자기관리가 제대로 안되서 살이 부쩍이나 늘었다. 새벽 기상은 자주 지켜지지 못한것은 매한가지.
그래서 정말, 모든 것은 신중하되 정말 내가 좋아하는지를 몇번이고 되짚어 생각해 봐야 하는 것 같다. 이번 대학원 커리큘럼을 끝내며 내가 느낀것은 일단 학교는 나랑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초중고 12년, 대학4년, 대학원 2년을 다녀봤는데 사실상 단 한번도 나는 공부로써 흥미 내지는 재미를 느껴본 적이 없다. 사업 등으로 5년을 쉬고 학부에 다시 간 이유도, 대학원에 진학한 이유도 언젠가는 내 재미를 찾겠지 라는 생각이었는데, 나는 누군가가 커리큘럼을 짜주고, 매주 숙제와 진도가 정해져 있고, 중간고사 기말고사가 있고, 누군가 내 성적을 매겨주는 자체가 맞지 않다.
물론, 모든 삶은 시험이자 숙제이자 평가인 것은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그게 명시적으로 되어 있는 자체가 내게는 크나큰 부담인 셈이다. 가슴에 손을 얹고, 공부를 했던 지난 18년간 모든 시험은 벼락치기였다. 심지어 지난 마지막 시험에서는 시험 4시간 전에 그날 시험인 것을 알고 부랴부랴 준비해서 갈 정도였으니. 끝까지 미루고 안하고 미루다가 하는 이 습관을 아마 나는 기존의 학습 체계에서는 고치기 힘들 것 같다.
그럼 나는 어떤 체질일까, 나는 누구나처럼 그저 Self-pacing일 뿐이다. 나는 나 스스로와의 약속을 해서 지키지 않으면 그 어떤것도 할 수가 없다. 아니, 사실 나는 미루기의 천재이다. 지금도 가장 오랜기간 미뤄온 프로젝트는 약 4년간 미뤄왔다. 이핑계 저핑계로 말이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어디가서 성공하겠냐고? 사실 근데 지금의 스타트업 아이디어는 3년간 미뤄왔고 지금도 1년을 또 미뤘다. 영어공부도 불과 3년전에는 생각도 하지 않았다.
사실 하고싶은게 너무나도 많다. 그런데 미룬다. 정확히는 당장 하지 않을 분이다. 지금도 솔직히, 음악이 너무나도 하고 싶은데 집에서 간간히 피아노 치고 연습하는게 다일 뿐이다. 언젠가는 하겠지, 하겠지 하면서 실제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 미술도 마찬가지다. 지금도 디자인을 간간히 하지만 전문적으로 공부한 적도 없고, 또 그럴 필요까지는 느끼지 않는다. 왜 꼭 학위를 수여해야만 전문성은 아니지 않는가, 물론 어떤 어르신들은 석사 학위를 몇개씩 따곤 하는데, 글쎄 그게 나에게 맞다면 그렇게 했겠지.
나는 그냥 스스로가 만족하는 삶을 살고 싶다. 그런데 그게 되려면 우선 나 스스로가 안정 속에 있다는 전제가 되어야 한다. 여기서 안정이란, 안정적인 삶, 즉 수입이 어느정도 일정하고 이에 대한 안정성이 충분히 보장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스타트업들이 그 일에만 죽어라 하는게 아니라, 사실 너도 나도 안정적이건 아니건 최소한의 차선책은 한두 가지씩 만들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 차선책 혹은 안정적인 무언가가 주는 그것을 나는 간과했다. 그래서 너무 올인을 하고 뜻대로 되지 않으면 깊은 좌절속에 살았던 것이다.
이야기가 조금 샜는데, 지금은 학교에 일주일에 한두번만 가면 되고, 다시 본업이 회사일, 정확히는 스타트업 일로 바뀌게 되었다. 이곳 사람들은 사람마다 많이 다르지만 보통 9to5 출퇴근 시간을 지키는 편인데, 나는 보통 8to4를 즐겨한다. 몇일을 이렇게 다시금 사무실로 나가 보니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다. 내가 만드는 제품에 관계된 공부들, 빅데이터니 HCI니 ML이니.. 이런 것들을 스스로 찾아가는 재미가 그렇게나 크다니, 그리고 그것들에 대해 공부해야 할 것을 스스로 찾아가는 것이 이렇게 즐거웠구나.
분명 나의 페이스라는 것이 존재했는데, 학교라는 존재에 나를 맞추다 보니 허겁지겁 따라가기 바뻤던 것이다. 나는 충분히 나의 규칙적인 생활과 하루에 어느정도 꼭 해야할일 (일기, 독서, 기도, 운동, 명상 등) 을 하고 나서 남는 시간에 공부를 하는 것이 좋은데, 물론 그렇게 하면 남들은 몇개월이면 끝낼 것을 진도가 잘 나가지 않을 것을 알겠지만, 반대로 말하면 내가 꼭 해야할 일을 안하면 그 만큼 몸과 마음이 망가지기 때문에 공부를 아무리 빠르게 해서 지식을 잡더라도 되려 나는 그것은 안한 것만 못하다는 내 개인적인 생각이었다.
나는 분명 느리다. 공부를 그리 좋아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들은, 그것이 무엇이 되던 간에 즐겁게, 폭넓게 본다고 생각한다. 얼마전 아버지는 학사 학위가 있으심에도 불구하고 55세가 넘은 나이에 학위 하나를 회사를 다니며 취득하셨다. 마찬가지다. 모두가 다른 삶을 사는 지금은, 모두가 똑같은 속도로 공부할 수 없고, 누구에게나 기회는 주어지고 때는 언젠가는 분명 존재하게 되어 있다.
내가 만드는 유라임은 그런 의미를 담고있다 생각한다. 모두가 다른 삶을 살지만 어찌 보면 모두가 행복한 삶을 꿈꿀 것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바쁜 이 세상속에 스스로를 쉽게 돌이켜 볼 수 있는, 그런 서비스가 되었으면 좋겠다.
나중에 쓰겠지만, 약 반년간 유라임 개발을 쉬면서 시스템을 다시 점검했다. UI도 바꾸고, 로고도 바꾸고, 시스템도 많이 변경했다. 아직 베타까지는 시간이 있지만, 그 시간동안 몇 가지 부족했던 지식에 대해 공부하고, 시스템을 개선해 나가고, 하루 빨리 대중앞에서 설 수 있는 날을 바래본다. 그런 의미로 브런치에 앞으로 이처럼 자기관리에 대한 나의 생각, 유라임 개발일지 및 공부한 내역을 좀 더 규칙적으로 쓰려고 노력해보겠다.
글쓴이 메튜장 | matthew@urhy.me | http://www.matthewlab.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