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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마태 Nov 26. 2024

인간이 가진 지혜의 한계 자각으로 인한 '자유함'

헤럴드경제 'E스포츠' 인터뷰를 돌아보며

아직 성공하지 않은 회사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아무 곳에다 대고 아무 말이나 막하는 것과 느낌이 비슷합니다. 지금은 누구도 이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지요. 보통 세상은 결과로만 판단을 해요. 과정은 결과가 나온 다음에 관심을 가지는 대상이 됩니다. 그런데 한 가지 재미있는 부분은 '여기'가 사실 가장 '아이러니한 포인트'라는 것이지요. 그 과거와 동일한 환경과 상태와 기회가 다시 돌아오지도 않고 누구에게도 열릴 수 없는데 모두가 과정을 가지고 결과를 해석하려 한다는 것이에요.


이런 아이러니가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는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관심에 가치가 있고 그 가치가 곧 재화이기 때문에 모두가 이 아이러니한 일을 해요. 그 아이러니의 본질을 알면서 하든 모르면서 하든 상관없어요. 결과는 동일하니까요. 지금 우리의 이야기가 의미를 가질 날이 온다면 아마 그때 다시 사람들은 이 글을 읽을 것이라고 생각을 해요. 그리고 어쩌면 그때 깨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성공을 하게 된 회사의 이유를 찾는 것 자체는 사실 '그다지...'라고 말할 정도의 의미라는 것을 말이지요.


그러나 저는 무의미하지는 않다고 생각을 합니다. 같은 환경과 상태와 기회는 돌아오지 않으나 이 세계 속에 존재하는 인간의 삶을 관통하는 변하지 않는 법칙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지요. 이를 테면 법칙이란 한 노래의 가사처럼 봄이면 씨앗을 뿌리고, 여름이면 꽃이 피고, 가을이면 풍년 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 법칙을 아는 것이 의미를 가진다고 믿어요. 그것을 '지혜'라고 여깁니다. 따라서 지식은 단지 그 지혜를 해석(증명)하는 것일 뿐이게 되고, 그래서  조금 무언가 더 안다고 해서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게 되는 것이지요.  


이제 우리는 결국 더 이상 처한 상황을 두고 해답을 찾는 사람이 아니게 되게 됩니다. 법칙을 찾아 알려는 존재이지 그 법칙을 정하는 존재가 아니니까요. 이 개념을 반대로 적용해 보면 우리는 그저 세계가 운행하는 법칙을 이해하고 그 법칙을 적용해 보려는 시도를 하게 되는 존재입니다. 지혜가 있는 자가 되려고 끊임없이 시도하는 것뿐이지요. 그 시도를 통해서 세계는 어느 한 끝을 향해서 나아갑니다. 이쯤에 와서야 사실상 우리는 우리(인간)라는 존재가 할 수 있는 가장 의미 있는 질문을 할 수 있게 되게 됩니다.


"지금 내가 추구하고 있는 일과 그 일을 추진하는 방식이 과연 법칙에 맞는 것인가?"


그런데 이 질문에 대답을 하기 전에 우리는 한 가지 추가로 확인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이 과연 어느 정도까지의 가치를 지니는가에 대해서 바로 알기 위함이지요. 그 내용은 '법칙은' 그 자체로는 어떤 절댓값을 가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쉽게는 같은 지혜를 가지고 같은 결론을 내려도 결괏값이 다를 수 있습니다. 이유는 변수 때문입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변수는 인간이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결국 변수는 법칙을 이해하는 사람을 (*그 앞에서) 겸손하게 만드는 수단이 됩니다.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은 대부분 경험(지식)에 기반합니다. 그래서 혹자는 경험을 곧 지혜라고 말을 합니다. 그런데 100% 작동하는 경험이란 없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지혜를 확률에 기대어 설명을 해요. 그렇게 될 확률이 어느 정도 높다 혹은 낮다는 식으로 해석을 합니다. 그런데 오직 결과만을 두고 보면 모든 것은 마치 컴퓨터 언어처럼 '0' 아니면 '1'입니다. 되거나 안되거나 둘 중 하나라는 말이지요. 3할 타율을 자랑하는 선수라도 그 타석에서는 안타를 치거나 아웃을 당하거나이지, 반루 진출 같은 것은 없어요.  


그래서 확률이 높았다고 해서 재수가 되는 것은 아닌 것이지요.


실패를 미화시키는 사람들은 실패가 성공의 어머니라고 합니다. 때로는 너무 쉽게 다시 할 수 있다고 하지요. 그런데 이것도 사실은 성공을 한 사람에게 적용되는 말이지, 지금도 실패를 하거나 성공을 위해 재도전을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말은 아닙니다. 그 명언이 가치가 없는 것이라는 뜻이 아니라 절댓값을 가지는 것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반대로 성공할 때까지 하지 않는 것이 그 어머니가 어머니로의 역할을 하지 않는다는 말이 될 수 없으니까요. 이 개념을 가진 채로 지금 내가 하는 일에 대해서 적용을 해야 해요.


제가 사업을 시작하고 인터뷰를 하고 싶어서 부단히도 노력을 했던 적이 있습니다. 제가 평소에 잘 알고 따르던 한 경제지 기자님으로부터 제 인터뷰를 올려 주시겠다는 확답을 받은 적도 있었어요. 그분이 계신 여의도까지 제 책을 들고 찾아가기도 했었습니다. 확답을 받고 직접 찾아가서 얼굴도 보고 담소도 나누었으니 확률이 낮았다고 하기 어렵겠지요.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인터뷰는 올라오지 않았습니다. 메시지를 넣어보았지만 연락이 없었어요. 대게 저의 노력으로 하려는 것은 이와 같습니다. 언제든 '0'을 찍습니다.


그런데 어떤 인터뷰들은 그냥 어느 날 제게 옵니다. 최근 두 번이 그런 케이스였어요. 하나는 'KBS 포항 라디오' 인터뷰였습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오늘 소개해드릴 '헤럴드경제' 인터뷰이지요. KBS 포항은 그 작가님이제 연락처를 여기저기 물어 물어서 찾았다고 하셨습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님들은 어떠신지 모르겠으나 제게 그런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아요. 많은 사람이 저와 비슷하다 생각합니다. 그런데 헤럴드경제는 더 합니다. 제가 커피숖에서 코치님들과 업무에 대한 대화를 하는 것을 기자님이 우연히 들으셨어요.


그리고 학원 주위에서 원장님이 코치님과 또 한 주제에 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을 또 우연히 들으셨다고 하셨습니다. 같은 주제에 관해 시간차를 두고 두 번을 각기 다른 대상으로부터 듣는 것도 특별한 일이지만 그 내용이 그 기자님의 귀에 들어가 마음을 울린 것도 신기한 경험이었습니다. 이 기자님이 학원에 올라와서 학원 인터뷰 기사에 관해 자신의 의견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여기서 바로 끝나지도 않아요. 그 후로 한참을 연락을 하지 않으셨어요. 모두가 잊어가고 있었습니다. 물론 저는 아니었지요.


어느 날 우리는 기자님께 문자를 보내기로 했습니다. "혹시 도와드릴 것이 있나요?"라는 식의 그냥 '툭!~' 던지는 메시지였습니다. 시점은 최근 있었던 한국이스포츠협회의 글로벌 E스포츠 포럼이 막 끝났을 때였어요. 그때 페이커 선수는 E스포츠에 관해서 다양한 자신의 의견을 드러냈는데 몇몇 코멘트가 꽤 화제가 되었습니다. 이 기자님은 우리의 연락을 받았을 때에 여러 매체에서 소개된 그 기사 내용들이 같이 떠오른 것이지요. 그날 오후에 학원에 방문하셨고 그다음 날 기사를 작성 완료하여 기사가 올라가게 됩니다.  



언론에 얼마나 노출이 되는가가 우리의 사업의 성공과 실패를 결정하지 않지요. 언급드린 바와 같이 절댓값이 될 수 없습니다. 노출을 하고 싶어 노력을 한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닌 것도 우리를 겸손하게 만들지만, 노출이 된다고 해서 사업에 성공하는 것도 아니라는 것도 우리를 겸손하게 만듭니다. 그러나 우리의 방향이 여기로 설정이 되어야 하는 것은 또한 '법칙'을 따르는 것입니다. 봄에 씨앗을 뿌리고, 여름에 꽃이 피고, 가을에 거두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것은 지식이고 그 지식을 바탕으로 하는 지혜라 여길 수 있습니다.


'우리라는 상품을 세상에 알리지 않아도 되는 사업이 있을 리는 없지요.'  


그래서 저는 이 사업을 해가며, 해야 할 일은 하나 그 결과는 나에게 달려 있지 않다는 것을 아는 것과 그 사실을 인정하는 연습을 꾸준히 또 고강도로 하는 중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실패라는 것에 대해 저 자신이 견딜 수 없게 되어요. '왜 나는 안될까'라고 100번 1000번을 물어도 답은 안 나오니까요. 결국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끝은 아닙니다. 어느 순간부터 이 생각을 하게 되면서 저에게 추가로 더해졌던 또 하나의 보석 같은 선물이 있습니다. 오늘은 그 이야기까지 하고 글을 마무리 지으려고 해요.


제 글을 꾸준히 보시는 분들은 제가 이후에 어떤 결과를 맞이하게 될지를 확인하시게 됩니다. 그리고 오늘은 그 과정 중 하나를 미리 보신 것이지요. 누구도 미래를 알 수 없다는 가정을 한다면 이 사업이 성공을 할지 실패를 할지는 아직은 아무도 모른다고 말해야 옳을 것입니다. 글을 읽는 여러분들은 별 생각이 없으실 수 있겠습니다만 글을 작성하는 저는 사업이 실패를 했을 때 오늘날의 이 글이 내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저를 더 초라하게 만들 수도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당장 할 말이 있어도 남기는 것이 어려워요.


우리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항상 두려워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 삶을 부정당하는 것일 거예요. 우리가 옳다고 생각을 하고 그것이 맞다고 생각하면 그 가치의 성취를 위해 추구해 온 시간이 있게 됩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 가치의 추구가 사실은 무의미한 것이 밝혀진다면 나라는 사람 자체가 세상에 존재해야 할 의미가 없다는 생각을 할 정도로 충격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물론 그 가치도, 그 시간도 '나(자체)'와 동일시될 수 없지요. 그러나 사람의 심정은 그렇게 됩니다. 인정하지 못해서 고집을 피울 수도 있고 반대로 깊은 자괴감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저는 선물 같이 '부정'에 대한 자신감을 얻은 것이지요. 누구에게도 '저를 따라 해서 성공하시라'라고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니까요. 그렇다고 모든 것을 '우연'이라고 말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당연히 운7 기3 같은 것을 말을 하는 것도 아니에요. 성공을 하게 된다면 그것은 나의 능력과 지혜에 전적으로 기반한 것이 아니라는 설명과 거기에 나의 능력과 지혜는 내가 추구해야 하는 가치를 따라 가게 만드는 근거이기 때문에 없어서는 절대로 안 되는 것이라는 논리 안에서 저는 큰 자유를 느낍니다. 이것이 글을 남기는 자신감이에요.


그래서 주어진 기회에 따라 최선을 다해 인터뷰를 하고 오늘도 이런 이야기를 하기에 적합하다고 여기는 플랫폼에 저의 경험과 그 경험에 기반한 생각을 남깁니다. 언제까지나 제가 하고 싶어하는 일이지요.      

       

 글 : 구마태

헤럴드경제 구마태 대표 인터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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