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독

편식은 하지 않지만, 편독을 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by maudie

브런치에서는 나를 글을 쓰는 작가로 소개를 한다. 글을 쓴다는 건 그만큼 많은 글을 읽어봐야 하는 일인 것 같다. 사실 나는 편식은 하지 않지만, 편독은 해오던 사람이다. 내가 원하는 이야기가 아니거나 혹은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이야기가 아니면 전혀 읽지 않았다. 생각보다도 취향이 확고한 사람이다. 서점에서 책을 고를 때도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린다. 책의 표지를 보고, 다음은 책의 뒷면의 소갯글을 읽는다. 그리고 책의 글자크기, 종이의 색 같은 걸 본다. 앞의 것들을 다 보고 난 후에는 아무 페이지나 펼쳐 그 책을 쓴 이의 문장을 본다. 문장이 나와 맞지 않으면 책은 다시 덮인다. 몇 번을 다시 봐도 저 조건들이 다 맞지 않으면 읽을 시도 조차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글쓴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책의 중심축이 되는 이야기

책의 종이 색과 글자크기, 그리고 글자의 색.

마지막으로 글쓴이의 문장.


글쓴이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책의 중심축은 역시 책의 장르를 단정 지어주는 부분도 있고, 그 책의 스타일이 분명하게 나타난다.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가장 먼저 손이 닿게 하는 부분이기도 하겠다.


책의 종이 색과 글자크기, 그리고 글자 색은 생각보다 눈을 매우 자극하는 것을 배재하기 위함이다. 눈의 피로도가 심한 책일 경우는 여기서 제외된다.


나는 케이크를 만드는 일을 하면서 눈이 급속도로 나빠졌다. 언젠가 이야기를 한 적이 분명 있을 테지만, 티라미스 케이크 위의 코코아 파우더의 층을 확인하기 위해 일을 하는 내내 집중을 해야 했고, 그 이후로 많이 나빠졌다. 눈의 피로도를 견디는 일을 쉽게 하지 못한다. 집중력도 당연히 피로도에 의해 많이 낮아졌다. 아니, 티라미스 케이크를 만드는데 왜 눈이 나빠져? 파우더의 충은 뭐야? 그게 눈 나빠지는 거랑 무슨 상관이지?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물론 나도 그땐 그렇게 생각했으니까.


내가 다녔던 회사에서의 티라미스 케이크는 원형으로 된 큰 티라미스(무스) 케이크를 만든 후에 틀을 제거하고 파우더를 뿌린 후 케이크를 조각으로 나눠 커팅을 한 후에 마지막 데코를 하고 조각 별로 따로 포장을 해서 박스 포장까지 해야 완성이 된다. 이때, 코코아 파우더의 양이 일정하지 못하거나, 너무 많은 양 혹은 너무 적은 양이 뿌려졌을 경우에 커팅을 하면서 파우더가 소실되거나, 혹은 커팅을 하면서 케이크 단면을 더럽힌다. 그전에 이미 케이크 상단이 얼룩덜룩하다. 이 모든 걸 지나간다고 하더라도, 박스 포장을 해 배송을 하는 동안 가루가 날리거나 흔들려서 박스 안은 엉망진창이 되고 만다. 그래서 입자가 매우 고운 그 코코아 파우더의 두께를 확인하기 위해 초 집중을 한다. 가루의 입자 하나하나 확인한다고 생각하면 되겠다.

그것 외에도, 작은 것 하나하나 봐야 하는 일들이 많고 아무래도 식품 쪽이라 민감한 사안이라 더 집중했던 것 같다. 작은 문제 하나라도 생기면 직접적인 영향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눈을 혹사시켰다.


그래서 눈이 많이 나빠졌고(시력과 상관없음) 장시간 집중하기가 많이 힘이 든다. 병원에서는 수정체의 문제라고 했다.(일상생활에 크게 문제는 없음) 그래서 글자의 색과 종이의 색이 글을 읽는데 피로도를 정하는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해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종이의 색이 매우 하얗고 밝은데 글씨는 짙은 검은색이면 눈이 부시고, 글자색이 온통 파란색이거나 검은색이 아닌 다른 색인 경우의 책이 요즘 자주 등장하는데, 그런 책은 읽을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 그래서 처음부터 시도조차 하지 않게 하는 것 같다.


마지막으로 글쓴이의 문장. 이것도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 중 하나다. 글쓴이의 문장이 너무 딱딱하거나 정말 교과서적일 경우는 금세 흥미를 읽는다. 사람의 말투에 대화를 하는 것이 좌우되는 것과 마찬가지가 되겠다.


그래서 사실 이것저것 따지는 게 많아 글을 읽는 데에도, 그 글을 선별하는 데에도 이미 많은 시간을 투자하는 것 같다. 그리고 그걸 다 충족하지 못하면 그 글을 읽을 기회를 나 스스로 잃는다. 참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 경우에 해당하는 글은 읽는다고 해도 끝까지 읽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굳이 애쓰지 않았다.


그런데 브런치를 시작하면서부터 여러 작가님의 많은 이야기들을 접하면서 편독이 많이 줄어든 것 같다. 사실 책 보다 기계로 보는 게 더 힘이 들긴 하지만, 몇 번을 다시 읽어가면서 까지 읽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분들이 몇 분 계셔서 한 문장을 놓고 서너 번씩 다시 읽더라도 읽으려고 애쓰는 것 같다. 덕분에 글에 대한 편견도 많이 줄었다.


사람의 이야기를 글로 읽는 것. 사람의 생각을 읽는 것. 그것만큼 흥미로운 것도 사실 잘 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중에서도 이건 안돼, 저건 이래서 어렵겠어하고 배재했던 류의 글들도 브런치에서는 읽게 된다. 그럴 기회를 가지게 된다. 참 대단한 공간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작가님의 글을 읽으면서 든 생각이 있다. '낯선 읽기' 그걸 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시는, 이끌어 주시는 작가님들 존경합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반드시 꽃은 필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