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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udie Jan 19. 2021

나는 또라이였다.

기면 기고 아니면 아니지.

나의 고등학교 시절은 참 화려했다. 학교에서 유우~명한 개또라이였다. 어쩌면 학교에 입학하기 전부터 유명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입학을 한 고등학교는 공부를 안 하기로 유명한 학교였다. 실업계 고등학교였냐구? 아니. 인문계 고등학교였다. 나는 국민학교를 입학했고, 중간에 초등학교로 전학을 나오게 되는데, 그때부터 진학한 학교는 죄다 신설 학교였다. 초등학교도, 중학교도, 고등학교까지도. 그래서 학교의 이미지가 좀 별로 였다. 소문이 좋지는 않았다. 그중에 가장 소문이 안 좋았던 것은 고등학교였다. 나는 가까워서 진학을 하기로 했지만, 인문계 고등학교에서 실업계 고등학교로 전향이 되느냐 시비가 있었던 학교였다. 다행히 내가 진학을 하기 1년 전 우리 바로 윗 선배가 될 학생들이 공부를 열심히 했고, 학교 이미지는 입학하기 직전 아슬아슬하게 좋아졌다. 물론, 지금은 구미에서 나름 명문 고등학교가 되어있지만.


어려서부터 피아노를 좋아했고, 노래하기를 좋아했다. 그렇다고 잘하는 건 아니지만, 예고에 진학을 하고 싶었을 정도로 좋아했다. 중학교 때는 합창부 동아리를 들었고, 고등학교 때는 예고에 진학하고 싶었다. 아빠의 반대로 예고 대신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을 하게 되었고, 아쉽지만 동아리 활동으로라도 음악과 관련된 걸 하고 싶었다. 피아노를 하기보다는 노래를 하고 싶었다. 다만, 자랑할 수 있는 게 없었기 때문에 동아리에 들어가기 위해서 선배들이랑 미리 친해져야 했다. 친구들이 입학하기 전 들어가고 싶은 동아리가 있으면, 동아리의 카페에 가입해서 선배들이랑 친해지는 게 좋다고 했고, 나는 카페에 가입해 선배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게 시발점이었다.


고등학교에 입학을 했고, 무슨 인터넷 소설 같은 이야기가 내게 일어났다. 당시 귀여니 소설이 유행 아닌 유행을 타던 시기였는데, 그런 인터넷 소설에서 흔히 일어나는 이야기가 눈앞에서 펼쳐진다고 생각하면 어떤 그림인지 대충 각이 나오겠다. 학교에 입학하기 전 밴드부 선배들과 친해지기 위해 카페 활동을 했고, 선배들은 나를 궁금해했다. 그것이 그런 파장을 불러올 줄은 상상도 못 한 채.


고등학교 밴드부의 이미지가 생각보다 좋았다. 학생들 사이에서 연예인 수준이었다. 인기도 상당했다. 밴드부 선배들이 잘생겼었는지 그냥 동경의 대상이었는지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우리들 사이에서 잘생기고 멋있는 진짜 연예인 그 자체였다. 뭐, 나만 착각한 걸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선배들은 키가 크고, 동급생들보다 잘생기고 멋있었다. 그런 남자 선배들이 쉬는 시간마다 내 이름을 부르며 반에 찾아왔다.


1학년의 교실은 1층, 2층. 2학년은 3층, 3학년의 4층에 위치해 있었는데, 그중에 나는 1층에 있었다. 3층에서부터 선배가 내려오면, 2층 애들도 따라 내려왔다. 당연히 1층에선 구경거리였다. 처음에 선배들이 왔을 때, 나는 자리에 없었고, 선배는 나를 찾다 돌아갔다고 한다. 다음 쉬는 시간에 찾아오겠다고 하고. 동급생들은 난리가 났다. 조용하고 눈에 띄지 않던 내가 삽시간에 이슈거리가 된 거다.


선배들은 쉬는 시간마다 나를 찾아왔고, 밴드부를 함께 하자는 이야기를 남겼다. 씩 웃으면서 나를 찾아오면, 나는 소문의 주체가 되었다. 덕분에 반에서 유명해졌고, 피곤한 일의 연속이었다. 곧바로 동급생들의 괴롭힘이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동아리의 오디션을 봤고, 마지막까지 살아남았는데 어이없게 떨어졌다. 선배에게 물으니 이유는 여자여서 라고 했고, 납득하기 어려웠지만 포기해야만 했다. 거기까진 넘겼는데 선배들은 신디라도 하자며 나를 찾아왔고, 피아노는 하기 싫어 밴드부를 고사했다. 봉사점수를 준다는 말에 하기 싫었던 도서부에 들어가면서 밴드부와는 끝이 났다.


하지만 친구들의 괴롭힘은 시작되었고, 놀림거리에 중심은 항상 나였던 것 같았다. 매일 놀림을 당했고,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학교 친구의 괴롭힘에 참다 참다 열에 받친 나는 결국 경찰을 불렀고, 그날 이후로 나는 개또라이로 더욱 유명해졌다. 학교폭력이라고 신고를 하는 바람에 학교는 떠들썩 해졌고, 그 아이의 부모까지 내게 울면서 빌었다. 당시 학교폭력이 일어나면 학생은 퇴학을 당하는 게 거의 당연한 수준이었다. 그 정도로 심각한 문제였다. 하지만, 그 친구는 퇴학 대신 접근 금지 명령이 내려졌고, 당연히 보복은 시작되었다. 거기서 당하기만 하면 또라이가 아니었겠지.


보복으로 거의 이지매 수준의 폭력 아닌 폭력을 당했다고 하겠다. 조용했던 학생은 학교에서 유명해졌고, 잘난 것 없던 덕분에 괴롭힘의 대상이 되었다. 물건이 사라지거나 눈앞에서 놀리는 건 일상이었고, 밀치거나 때리기도 했다. 아주 얇실하게 행동했던 것 같다. 당연히 나는 또 신고를 했다. 아니 괴롭힘을 당했는데 찍소리도 않는 건 나랑 캐릭터가 영- 안 맞아서. 부모들은 내게 다시 빌었고, 선생님들은 퍽 난감해졌다. 그 친구들은 반성문을 쓰고 마지막 경고를 받았다. 같은 일이 한번 더 일어나면 퇴학처리가 될 위기에 놓였고, 그때부터는 더 이상 내게 아무 짓도 할 수 없었다. 평화로운 학교생활을 기대했건만, 일어난 건 너무도 드라마틱했다. 거기서 끝이라면 참 좋았을 텐데.


나는 성격이 더럽다. 불의가 있다면 참지 않는다. 밟으면 꿈틀 거리는 게 아니라 상대를 조진다. 당연히 절대 그 누구도 내가 잘못했다고 이야기할 수 없는 상황을 연출한다. 뭐, 굳이 연출하지 않아도 내가 당연히 잘못한 게 없었지만 말이다. 입학 때부터 유명했는데, 졸업 때까지 유명할 필요는 없었는데. 퍽 좋은 기억은 아니지 싶다.


나는 어려서부터 도서관을 참 좋아했다. 엄마가 만들어 준 습관 때문이었는지 도서관에 가는 게 익숙했고, 책을 좋아했다. 책을 손상되는 일로 난동을 피웠을 정도로. 책과 그 공간을 사랑했다. 하지만 굳이 도서부는 하고 싶지 않았는데. 오디션을 보는 동안 다른 동아리는 인원이 거의 다 채워졌고, 그나마 좋은 조건이 도서부였다. 왜냐고? 봉사점수를 1년에 60시간이나 처리해줬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굳이 하고 싶지 않았다. 도서부 동아리를 들어간다는 건 나쁘게 말을 하면 범생이나 찐따 같은 느낌이었으니까. 그렇게 소문이 돌기도 했고. 하지만, 딱히 갈 데도 없었고, 친했던 친구가 거기 있어서 하는 수 없이 동아리 가입을 하게 되었다.


동아리는 생각과는 거리가 멀었다. 도서실 안에서 공 차고 노는 건 기본이었고, 책을 던지고, 훔치고 찢고. 고등학교 도서관이 맞아? 싶을 정도로 꾀나 충격적이었다. 봉사를 한다는 이유로 야자시간에 시간을 빼서 도서관에서 몰래 가져온 술 담배를 하거나, 이건 소문만 무성했던 일인지 진짠지 모르겠지만, 그곳에서 관계를 가지기도 했다고 한다. 나중에 그 소문의 주인공이 친구여서 충격적이었지만. 어쨌든 책을 다루는 공간이, 체육관보다 엉망이었다. 봉사점수를 주니까.라는 이유로 1학년을 보냈고, 좋아하는 선배가 있어 동아리를 계속했다. 어차피 1학년 때는 딱히 신경 쓰지 않아도 거저였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2학년이 되고, 친구가 부장이 된 다음 소문은 소문이 아닌 수준이 되었고, 도서관 사서 자리의 컴퓨터에는 야동만 잔뜩 있고, 새로 들이는 책마다 시리즈 전권이 사라지는 일이 반복되자 더 이상은 무리다 싶어 그만두겠다고 했다.


물론, 나는 개 또라이다.


잊었겠지만, 그냥 넘어가진 않는다. 나는 선생님께 그동안 동아리 활동하며 있었던 모든 이야기를 털어놨고, 이제는 부끄러운 마음에 그만두겠다고 했다. 학교는 또 한 번 나로 발칵 뒤집어졌다. 위에 말했던 친구는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였고, 나름 오래 알고 지냈다. 그 친구는 학교에 소문을 이상하게 냈고, 도서부원들 앞에서 물건을 던지고, 내게 폭력을 행사했다. 아무리 내가 운동을 오래 했다고 하지만, 남자애를 이길 순 없는 법이었다. 그날의 일로 완전히 도서부를 그만두겠다고 했는데, 담당이었지만 동아리에 관심이 없었던 선생님은 이일로 동아리에 관심을 두기로 했는지 그 친구들을 내보내고 나를 부장 자리에 앉혔다. 오랜 설득 끝에 나는 도서 부장이 되었고, 그 이후로 학교에서 조금 더 유명해졌다. 물론, 미친년으로.


여전히 도둑맞는 책이 많았고, 툭하면 책이 찢겨 돌아왔다. 상식적으로 고등학생이 하는 짓이라곤 상상도 못 할 일들이 여전히 일어났다. 화가 났다. 시스템을 전부 바꾸기로 했다. 교장선생님과 독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학교에서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니 생각이 있다면 내 말을 들어주겠지. 시에서 운영하는 도서관에서 처럼 대출을 하지 않으면 삐삐삐 소리가 나는 기계 (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그 출입문 설치하는 기계를 설치해달라고 하기 시작했고, 문제는 학교에서 제공하고 있다고 기억은 나지 않지만 굉장히 논리 적으로 따져 들기 시작했다. 학교의 방치로 문제가 커진 것이라고 말했던 것 같다. 교장은 맞는 말이라며 사과했고, 내게 감사하다고 했다. 교장이 개입하기 시작하니 일은 더 커졌다. 도서관을 운영하는 내내 나는 권력 아닌 권력을 행사했다. 선배들이라고 내게 함부로 할 수 없게 만들었다.


당시 선배라고 하면 후배들은 찍소리도 못했는데, 나는 일진도 아니면서 일진보다 더했던 것 같다. 맞는 말을 해댔으니 더 할 말 없었겠다고 생각하고 넘겼지만, 선배들이 나를 찾아오고 따지는 일은 더 많아졌다. 선배들 앞에 지나가기라도 하면 온갖 욕을 먹었다. 아니 잘못은 즈들이 하고 욕은 왜 내가 먹지라는 생각으로 웃어넘겼다. 맞지만 않으면 되지. 도서부였던 선배들을 넘어 3학년 전체에게 욕을 먹기 시작했다. 도서부 후배들을 급식을 무조건 먼저 먹이겠다고 선포한 덕분이었다. 도서관 관리를 하고 돌아가며 밥을 먹어야 했던 이유로 애들 밥을 먹고 오라고 보내면 거의 울먹이는 수준으로 내려와 밥을 못 먹겠다고 하기가 일쑤였고, 화가 난 나는 애들을 데리고 직접 줄을 세웠다. 선배들은 당연히 욕이란 욕은 다했지. 밥을 먼저 먹는다는 건 정말 생각지도 못한 일이니까. 지금 생각하면 참 유치한데, 그때는 그게 권력이었다. 선배들이 먼저 밥을 먹는 게 당연했고, 선배 앞에 새치기를 하는 일이었으니까. 그렇게 나는 2학년을 마무리할 때까지 미친 개또라이였던 것 같다.


선생님들한텐 얌전하고 열심히 하는 모범생. 친구들한텐 또라이, 미친년, 썅년, 개또라이. 물론 꼭 그렇지 만은 않았다. 원래 이슈는 사라지기 마련이니까. 뭐 덕분에 편한 학교생활 하긴 했다. 후배들한테는 멋진 선배가 되기도 했으니깐. 물론, 무섭고도 험한 인상의 조폭 같은 선배로 기억한다면, 할말없다. 지금 말하면 나는 완전.... 일진 수준이었............. 애들 엎드려뻗쳐 시키고.. 발로 까고.... 뭐 안 했다고는 못하겠다. 물론 그만큼의 잘못을 했지만. 뭐 어쨌든. 그렇게 개또라이로 유명하게 학교 생활을 하다 3학년 때 동아리 활동을 접고 학업에 매진하면서 다시 조용한 학생이 되었다.


지금 다시 그때를 생각하면 굳이 내가 왜 그랬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이슈의 중심이 되고 싶지 않았는데, 그런 마음과는 달랐던 행동 때문에 늘 이슈의 중심이었다. 그 이야기를 그때 그 이슈를 함께한 사람들은 어떻게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선생님들께는 예쁨 받았으니까.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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