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인의 명복을 빌기보다, 남겨진 사람의 안녕이.
힘든 시기에 함께 늦은 시간까지 어쩌면 가족보다도 더 오랜 시간을 함께 보냈던, 함께 일했던 동료이자, 이 모이자, 언니였던. 함께 일하지 않게 된 지 한참의 시간이 지났음에도 만나면 여전히 반가운 사람의 슬픈 소식을 건네 들었다. 정확한 내용은 기억이 나지 않지만, 일본에 계셨던 이모님의 남편분께서 건강이 나빠지셨고, 병원으로 급히 옮겨 치료를 받고 있던 중 증세가 점점 악화되어 한국으로 돌아오려고 했다. 하지만, 일본의 병원에서 어차피 희망이 없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며 차일피일 미루고 시간을 끌었고, 한참의 시간이 지나고서야 한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는데 돌아오기까지의 시간을 계속 끄는 실력 없는 일본 의료진들 덕분에 상황이 더 악화되었고, 결국 오늘 부고를 들었다.
최근에 아빠의 정년퇴임이 있어서 그 회사를 아직도 다니는 친구에게 도움을 받은 적이 있었는데, 그때 이모를 잠깐 만났었다. 그때의 이모는 일본에서 돌아온 남편분을 병간호하면서 일을 하느라 많이 약해지셨고, 너무 반가운 마음에 안아 드렸지만 안 그래도 작고 왜소했던 이모는 바짝 말라있었다. 그때는 이 일에 대해 알지 못했음에도 분명 이모에게 무슨 일이 생겼다는 것을 바로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이모의 모습은 많이 초췌했다. 사연을 친구에게 건네 듣고 내내 마음이 좋지 않았는데, 이렇게 부고를 들으니 마음이 많이 좋지 않다. 상태가 호전되길 바랐는데, 역시 일본에서의 그 딜레이 되는 시간 동안 악화된 탓에 더 이상 어떤 것도 소용이 없어진 상태였던 걸까. 이렇게 보면 정말 외국에서 다치거나 문제가 생기면 참 답이 없다는 게 너무 선명한 듯하다. 한국이어서 빨리빨리 가 기본 베이스인 나라여서 그래서 잘 몰랐던 것들이 이렇게 발을 묶었다.
이모가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기도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게 나 자신이 하찮게 느껴지는 날이다. 고인의 명복을 빌지만, 그보다 앞으로를 홀로 살아내야 할 이모가 안녕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