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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audie Dec 15. 2021

리슨

보호를 명분 삼아 강제한 삶

오늘은 오랜만에 병원을 다녀오는 날이었다. 한 달에 한 번씩 나는 서울로 병원을 간다. 매일 병원을 가야 할 정도로 상태가 좋지 않았던 나는, 달에 한 번만 병원을 가도 괜찮을 정도가 되었고, 이제는 매번 갈 때마다 검사를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많이 건강해졌다. 이전에 받은 검사 결과를 듣고 잠깐의 진료, 한 달치 약 처방을 끝으로 역대 최고로 짧은 시간을 병원에 있었던 것 같다. 참 감사한 오늘이었다. 늘, 병원에 갈 때면 언제 아플지 모르는 상태에 놓였고, 검사와 치료에 지쳐 대중교통을 이용해 왕복하는 일이 어려웠다. 하지만 이제는 많이 건강해졌고, 충분히 대중교통으로 이동할 수 있을 만큼이 되었다. 그래서 오늘은 아침 일찍 기차를 타고 서울로 가 진료를 받고, 돌아오기 전에 엄마와 영화를 보기로 했다. 내가 사는 지역의 영화관에서는 상영하지 않는 영화라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간 김에. 그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리슨]이라는 영화였다. 



- 약간의 스포가 있을 수 있음.


보청기를 껴야만 세상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한 아이가 있다. 그리고 그 아이를 누구보다도 아끼는 가족이 있다. 전제가 난민이었던 것인지, 이민이었던 것인지에 대해서는 명확히 드러나지 않았다. 확실한 것은, 그곳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은 아니었다. 일용직 목수로 일을 했지만, 월급이 밀려 일을 그만둔 아빠와 가정부로 일을 하는 엄마. 자주 몸이 아픈 첫째 아들 그리고 보청기를 껴야만 세상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둘째 딸. 마지막으로 아직 젖도 떼지 못한 막내가 있었다. 가족은 가난하지만 서로를 아꼈고, 최선을 다해 살아간다. 가난한 탓에 제때 식사를 하지 못하고, 마트에서 겨우 훔친 빵 같은 것으로 겨우 끼니를 때우기 일쑤였다. 여느 날과 같이 아이들을 마트 뒤에 숨겨두고 훔쳐온 빵을 가지고 와 끼니를 겨우 해결 한 뒤, 딸을 학교로 보내고 엄마는 젖먹이 막내를 데리고 일을 하러 나간다. 사건이 일어나기 전 둘 때 딸의 보청기가 실수에 의해 망가졌고, 가난에 의해 둘째 딸의 부서진 보청기를 구하지 못하고 학교를 보내는 것을 기점으로 이 가족에겐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벌어진다.


영국에서 있었던 실화라는 이 영화의 시작부터 장면들이 너무 마음 아팠다. 농아인 둘째 딸의 보청기는 이들이 돈을 주고 구매할 수 있는 정도의 값이 아니었고, 근로계약서나 급여명세서를 따로 받지 못하는 일용직과 가정부의 직업을 가지고 있어 할부로 보청기를 구매하는 일마저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이 아이를 학대하는 일이라고 간주하는 복지국 때문에 부모와 아이들은 헤어져야 했다. 복지와 보호를 핑계로 말도 안 되는 것들을 강제했다. 그리고 결국 세 아이를 모두 빼앗겼다.


빼앗긴 아이들을 되찾는 과정도 가족에게는 너무 잔인했다. 아이들은 부모에게 돌아가고 싶었지만 할 수 있는 것이 없었고, 부모 역시 아이를 데려오고 싶었지만 쉽지 않았다. 겨우 아이를 데려오긴 하지만, 결국 맞네 아이는 데려오지 못하고 영화가 끝이 난다. 강제로 입양 절차가 진행되고 나면 아이는 영영 찾을 수 없도록 되어있는 말도 안 되는 시스템이었다.


복지라는 이름으로 학대를 당하는 아이들을 지켜낸다는 것에는 굉장히 긍정한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제대로 된 수사가 없이 그저 의심이 되는 단서 하나만으로 만들어진 억측으로, 괜한 가족을 찢어 놓을 수 있다는 그 이면이, 그 실수가. 어쩌면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잦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단 이런 일 뿐만이 아니라, 어떤 사건을 놓고 볼 때에 명확하지 않은 어떤 것으로부터 만들어진 의심과 억측만으로 사건을 만들어 잘못이 없는 사람이 피해를 입는 일들이 상당히 많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간히 뉴스에서 보기도 하고. 잘못된 편견들이 만들어낸 그 피해자들이 더 생겨나지 않았으면 한다. 조금 더 관심을 기울이면 그런 안타까운 일이 한 번이라도 덜 생기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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