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나는, UX라이터로소이다

에이치뱅크에서 쓰는 삶

by Maudie Bloom
Flower Children pl70 (1910) _ Marion T. Ross (American, 1881-1937)



이곳에 온 지도 보름이 지났다.



지난 보름의 시간은 달콤쌉쌀했다.주어진 일과 시간의밀도가 이전과는 확연히 달랐기에 달콤하기도 했고, 동시에 외부에서 내게 기대하는 책임의 무게 때문에 쌉쌀하기도 했다. 달콤 8 쌉쌀 2 정도의 비율이랄까. 아무튼 쌉쌀한 맛이 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새로운 환경에서 새로운 주제로 새로운 현업과 합을 맞추는 과정은 일하는 이상, 피할 수 없는 일인데 어찌 달콤하기만 할까.


그리고 함께 온 두 명의 동료와도 싱크를 조율할 필요가 있었는데 다행히도 우린 잘 맞았다.


여기에서 '잘 맞는다'는 말은 여러 함의를 지니고 있다.

> 함께 라이팅을 하는 동료로서의 합

> 연차에 따라 매기는 위계에 있어서의 합

> 인생 선후배 역할에서의 합


회사생활에서 위 세 가지는 상황별로 등장하는 일종의부캐와도 같다. 관계에 있어 이 중 단 한 가지라도 삐걱거리게 되면 어디에선가 구멍이 나기 마련이다. 그래도 사회생활이니 어찌어찌 잘해보려고 ‘노력’이란 걸 해야 하는데 그 노력 자체로 많은 에너지가 소모될 수밖에 없다. 생각해 보면 연차가 높을수록 저 3가지 역할을 고루고루 참 잘해야지 싶다.



라이팅을 함께하는 동료로서의 합


이 세 가지 중 특별히 이루고 싶은 한 가지가 있다. 바로 ‘라이팅을 함께하는 동료로서의 합’이다. 나는 라이터로서 직장에서의 위계 / 인생 선후배 역할이 동료의 역할보다 우선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세 가지 역할을 두고 우열을 가릴 것도 없고 우선순위를 매길 필요도 없지만, 내가 동료로서의 합을 더 추구하는 이유는, 함께 쓴다는 것의 가치를 아는 ‘동료’가 주는 힘은 생각보다 큰 시너지를 발휘한다는 사실을 체감하고 있어서다.


나는 실감한다. 나의 구멍을, 너의 구멍을 서로 재지 않고 메우는 과정은 언제나 유용하고, 언제나 행복하다. 이른바 '집단지성'이라 부를 수 있을 라이터끼리의 합은 이 일을 더 하고 싶게 만들 만큼 강력한 힘이 있다.


라이터끼리의 합을 공고히 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보이지 않는 규칙이 있다.

> 더 많이 안다고 해서 교만하거나 거만하지 않기

> 반대 의견을 피력할 땐 더 나은 대안을 고민해서 설득하기

> 위계에 얽매이지 말고 열린 마음으로 수렴하기

> 너도 나도 불완전한 존재라고 인정하기

> 서로가 서로에게 배우려는 자세로 갖기

> 감정 섞지 말고, 담백하게 논리(근거)로 설득하기

> 기본적인 언어예절을 갖추기


연차가 높다고 무조건 옳은 것도 아니고, 연차가 낮다고 무조건 틀린 것도 아니다. 적어도 나는 라이터는 그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쓴 라이팅에 대한 책임은 그럴 때 보다 단단해진다. 글쓰기라는 행위 자체가 각자의 경험과 생각이 묻어나는 일이므로 이 일에 지위 고하는 중요치 않다. 서로가 서로에게 보다 유의미한 피드백을 건네며 서로의 글을 더 가치 있게 만들어나가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



따로 또 같이 쓰는 기쁨


나는 ________ UX라이터로소이다



지난 보름 간의 시간을 되돌려 보며 라이터끼리의 합을 맞출 수 있는 순간순간에 감사함을 느낀다. 그리고 내년에 라이터로서 나는, 직장 후배가 여럿 생긴 선배로서의 나는 두 가지 다짐을 한다.


하나, 자유의지로 살기

속박 내지는 그렇게 살지 못해서가 아니다. 진정한 자유의지가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고 살았다는 걸 깨달았을 뿐이다.


어떤 풍경이 아름답다고 느낄 때
고민을 통해 깨달음을 얻었을 때
틀에 박히지 않은 감각적 쾌락을 느꼈을 때
타인에 대한 사랑이 갑자기 솟구쳐 오를 때

그런 순간 우리 모두는 자발적 체험이 무엇인지 알게 되며, 그런 체험이 이렇게 드물지 않게, 세련되게 찾아온다면 인간의 삶이 어떻게 달라질지 어렴풋하게나마 예감하게 될 것이다.

-80p, 에리히 프롬의 ‘자발성에 관하여’
ⓒ롱블랙


올해는 자의든 타의든 보이지 않는 감옥에서 머문 시간이 길었던 것 같다. 삶의 가치관이나 방향성이 바뀔 만큼 한바탕 바람이 지나갔다. 바라건대, 새해부터는 자유의지 실현을 위해 뭐든 하고 싶다. 자유의지의 가장 큰 목적은 지금, 오늘 이 순간의 행복은 그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다는 진리를 지키기 위해서다.


하루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회사 생활에서도 자유의지를 지켜낼 참이다. 행복하려고 일하는 거니까.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쓰는 일을 택했으니까. 자유의지로 선택한 이 삶이 더 행복해지기 위해서 함께하는 라이터 동료들과 더불어 멋진 글을 쓰고 싶다는 소망을 품어 본다.



둘, 주위 사람들의 성장을 도모하기

누군가를 내적이든 외적이든 성장시키고 싶다는 열망은 나 자신의 성장을 전제로 한다. 그리고. 나 자신의 성장은 이타적일 때 비로소 완성된다.

지난여름, 폭풍 속을 지나며 나는 한 가지 엄청난 비밀을 깨달았다. 바로 겸손에 대해서다. '남을 존중하고 자기를 내세우지 않는 태도가 있음'이란 겸손의 사전적 정의를 단순히 '교만'의 반대말 정도로 여겼던 나는, 이 안에 담긴 '이타성'을 다시 생각하기 시작했다. 진정한 의미의 겸손이란, 나의 성장을 타인과 함께 나누고 타인의 성장을 진심으로 응원하는 것 그 자체라는 사실을 말이다.


2024년

나는 더 많이 행복하기로 결심했다.

인간으로서도, UX라이터로서도.




요즘 출퇴근길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를 아주 몰입해서 읽고 있다.

살다 보면, 삶을 송두리째 바꾸는 계기는 누구나 경험하기 마련인데 그 과정 속에서 미처 형용하지 못했던 감정을 누군가 대신 '언어'로써 풀어주니 그 자체로 참 위로가 되는 책이다.

저자는 말한다. '세상 속에서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애를 쓰고, 꾸역꾸역 긁고, 밀치고, 매달려야 하는 종류의 일은 할 수가 없었다'고. 나도, 우리도 종종 그런 기분에 사로잡힌다. 2024년에도 분명, 그럴 것이다.

다만, 2023년에 그러했던 것보단 더 매끄럽게 대응할 수 있겠지. 그러길 빈다. UX라이터로서 에이치뱅크에서 한 번 더 점프하는 중이다. 착지할 무렵에는 한 뼘 더 자라 있기를. 해피뉴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