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지피티 쓰는 저연차 UX라이터를 위한 헬퍼텍스트
회사 안에서도 밖에서도 이제 에이아이 필수 시대다.
불과 1~2년 전만 해도 에이아이를 업무에 사용하는 것에 대한 불신의 티끌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비용을 지불하고 쓰는 하나의 '도구'가 되었다. 그 흐름에 맞춰 에이아이는 이렇게 써야 해, 저렇게 써야 해 하는 사용법 안내가 우후죽순 등장하기 시작했다. 나도 좀 더 편하게, 효율적으로 에이아이를 쓰기 위해 몇몇 글들을 찾아 읽기도 했다. 그런데 정작 에이아이를 잘못 쓰는(또는 생각하는) 누군가를 위한 '헬퍼텍스트'가 없다는 사실에 안타까움을 느꼈다.
챗지피티 쓰는 UX라이터를 위한 헬퍼텍스트
UX라이팅에서 헬퍼텍스트는 시점과 인터랙션에 따라 두 가지 스타일로 쓰인다. 첫 번째는 '이렇게 쓰세요'로 직접적인 피드백을 주는 것이고 두 번째는 '이래서 틀렸습니다'로 무엇이 잘못됐는지를 오류메시지 형식으로 알려주는 간접 피드백이다. 둘 다 사용자와 인터랙션 하는 피드백으로 물고기를 직접 잡아 주느냐, 아니면 물고기 잡는 법을 알려주느냐 정도에 비유해 볼 수 있다. 이번 글은 후자 스타일에 가깝다. 챗지피티와 함께 한 지난 경험을 떠올리며 UX라이터를 위한 세 가지 헬퍼텍스트를 간추려봤다.
챗지피티가 으쯘다고 즈쯘다고
네가 유난이다.
Error Msg. 너무 곧이곧대로 받아들여서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할루시네이션 현상에 강력한 처방전이 있다면 챗지피티를 삐딱하게 바라보는 시선과 그에 걸맞은 질문이다. 나는 친한 상대가 별것 아닌 걸로 우길 때 쓰는 방법을 챗 지피티에게도 곧잘 쓴다. "10만 원 빵? 콜?" 또는 "정말 200% 확신해?" 딱 두 가지 질문이면 금세 꼬리를 내린다. 단, 내가 알고 있는 게 100% 정답일 때만 효과가 있다. 이 예시를 곱씹어 보면 챗지피티의 답변을 마치 정답인 양 비판 없이 수용해선 안 된다. 삐딱하게 바라봐야 한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나도 UX라이팅 작업 시 몇 번의 실수를 한 적이 있다. '당연히 맞겠지'하는 안일한 생각으로 챗지피티 의견을 곧이곧대로 반영한 탓이었다. 뻔뻔하게 답하는 챗지피티에게 속은 그날 얼마나 이불킥을 했는지 모른다. 내가 속다니... 내가... 마치 보이스피싱에 절대 안 걸릴 것처럼 굳게 믿었던 게 와르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 그날 이후 난 챗지피티를 더 삐딱하게 본다. 내 질문에 아부하며, 좋은 생각이에요 훌륭해요 하는 식의 번지르르함에 넘어가지 않고 근거/출처 있는 사실에 기반한 정답인지를 재차 묻는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챗지피티는 절대 말문이 막히는 녀석이 아니다. 그러니 꼬리를 물고 늘어져 틀린 답에 대한 사과와 정답을 받아내야 한다. 이것 또한 학습(길들이기)이니 응당. 마땅. 고도리 그리하는 게 좋다.
하지만 오해하면 안 될 것이 무조건 삐딱한 시선만 가지라는 건 아니다. 챗지피티를 업무에 적용할 때는 약간의 사전 조사 후, 일정 정도 개념을 정립한 뒤 묻고 T스럽게, 까다롭게 답변을 분석해야 한다. 그게 내가 정의하는 삐딱하게 보는 법이다.
Error Msg. 너무 의지(기대)해서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듀얼 모니터 한쪽을 챗지피티로 가득 채운 채 하루 종일 모니터와 대화하는 사람을 본 적 있다. 저연차인 친구였는데 모니터를 응시하며 무언가 항상 깊은 고민에 빠져있었다. 회사에서 그러면 안 된다는 법은 없지만, 뭔가 너무 안타까웠다. 낮은 연차에서는 되도록 챗지피티에 의존하지 않았으면 하는 게 내 생각이다. 어디에선가 읽었는데 에이아이는 연차가 높을수록 더 잘 다룬다고 한다. 프로젝트를 리딩하는 과정에서 구성원에게 묻고, 답하고, 듣는 경험이 많다는 게 그 이유다. 더 근본적으로 파고 들어가면 사실 '아는 게 많아서'다.
정보를 분별하고 수렴하고 종합하는 능력이 챗지피티를 더욱 유익하게 쓸 수 있는 테크닉이라면, 반대로 낮은 연차일 때는 이를 기대하기 어렵다. 그런데 주변에 사람이 있어도 질문하지 않고 챗지피티에게 기대 버릇하면 일종의 '의존증'이 생긴다.
스스로 무언가를 찾아 배우고 익히기보다는 얼른얼른 답을 내려주는 그 빠릿빠릿한 반응에 중독되어 '문제해결능력'을 기르기 어렵다. 내 머리로 사고한 게 아니니, 주워들은 정보는 금방 휘발된다. 앞에서 고백했지만 연차가 있는 나도 속는데, 연차가 낮은 친구는 얼마나 더 잘 속을까. '자기 생각'인 것과 아닌 것의 차이는 언제든 들통나기 마련이니 해결해야 할 문제 앞에 무조건 챗지피티부터 꺼내고 보는 버릇은 기르지 말자. 대신에 이 방법을 권한다.
저연차 UX라이터를 위한 세 가지 챗지피티 활용법
UX 문구를 개선해야 할 때 3가지 스텝을 기억하자. 첫째, 어떻게 개선할지 먼저 생각하고, 초안을 쓰자. 원안보다 분량이 넘쳐도 비문이어도 상관없다. 일단 나만 보는 용이니까. 스스로 문구 개선 방향을 생각하고 더러운(?) 초안을 완성한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만 보는 용이니까 그 의도나 의미만 분명하면 되니 일단 주르륵 써본다. 이 과정에서 관련 자료를 찾아본다. 책이나 구글링이면 된다. 둘째, 챗지피티에게 개선할 문구의 맥락과 개선 방향을 알려주고 초안을 덧붙인다. 맥락은 최대한 자세히 알려줄수록 좋다. 셋째, 챗지피티가 준 안과 내 안을 비교 분석해서 재고Rethink하고 개선Upgrade한다.
첫 번째 과정은 머릿속으로 사고의 결과를 시뮬레이션하는 것이고, 두 번째 과정은 프롬프트 작성 경험을 키워가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과정은 크로스체킹의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좋다. 삐딱한 시선을 장착하고 챗지피티와 대화를 나누며 '내 생각'을 공고히 다진다. 이 3가지 스텝에 익숙해지면, 해결할 문제를 만났을 때 무조건 반사처럼 챗지피티를 켜는 의존증은 내려놓을 수 있을 것이다.
Error Msg. 너무 만만하게 보여서 오류가 발생했습니다.
AI 학습 능력의 진화는 곧 나의 학습능력의 진화로 이어져야 한다.
1만 시간의 법칙에서 '1만 시간'은 단순한 행위의 반복이 아니다. 자신의 기량을 향상할 목적으로 의도적 수련을 지속하는 과정이다. 이 과정이 실제 실력 향상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두 가지 기회가 수반되어야 한다. 하나는 피드백을 짧은 주기로 얻는 것, 또 하나는 실수를 교정할 기회다. 잘했나 못 했나를 알게 되면 행동을 조정하는 아주 좋은 팁이 된다.
위 내용은 내가 좋아하는 책 <함께 자라기>를 읽고 요약한 내용이다. 나는 이 책을 읽으며 챗지피티와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1만 시간의 한 과정이 될 만큼 가치 있는 시간이길 바라는 마음이 커졌다. 내가 쓰는 챗지피티의 학습 능력이 진화하도록 동시에 나의 학습능력 또한 진화하도록 말이다. 그래서 나는 두 가지 액션을 취한다. 챗지피티의 답변에 반론을 제기한다거나 찬반 의견을 묻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어떤 정보가 무용한지 유용한지 분별하는 눈을 키우려고 노력한다. 내 생각(의견)에 대한 챗지피티의 반론을 듣는 재미도 제법 쏠쏠하다.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교정할 기회를 얻을 수도 있다. 이런 식으로 나에게 이롭게 챗지피티를 다루고자 하는 게 챗지피티란 문명 앞에 선 나의 이기利己다.
또한 정보의 분별력은 에이아이에게만 필요한 능력이 아니다. 에이아이에게 대체되는 존재가 되지 않으려면 인간에게도 필요한 능력이다. 정보 분별력을 키우기 위해서 인간은 결국 더 많이 공부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챗지피티보다 더 많이 알 수도 없지만;; 아무튼 각자가 길들이는 챗지피티의 수준은 결국 사용자의 수준 안에서 결정되므로 내가 더 많이 아는 만큼 나의 챗지피티도 함께 성장한다는 것 또한 분명하다. 그러니 나의 질문에 답을 해주는, 나보다 더 많이 아는 존재로만 챗지피티를 바라보는 한계를 두지 않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