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브레이크를 걸고, 생각해봤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쓸 데 있는지, 없는지 모를 고민을 하고 있다. "세상은 언제까지 UX라이터를 필요로 할까?", "UX와 라이터라는 조합이 생소한 시기를 지나 호기심 단계를 넘어 충분히 인지도가 쌓인 단계에 이르면 그다음은?", "라이팅은 디자이너도 하고, 개발자도 하고, 기획자도 하는데 '라이팅' 하나만으로 경쟁력을 지닐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에디터로서 인정받은 경력이 하찮아서가 아니다. 플러스 알파가 필요하다는 생각에서다. 나는 단순히 '지면'에서 'UX/UI'로 형태만 바꿔 글을 쓰는 사람이고 싶지 않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내가 찾은 해답은 바로 '전략가 마인드'다.
얼마 전 원티드에 쿠팡 UX Writer 채용공고가 올라왔다. 쿠팡에서는 UX라이터가 아니라 Senior Content Strategist (Coupang Eats)란 표현을 쓴다. JD를 살펴보니 UX라이터를 찾는 일반적인 공고와 대동소이했지만, 관련 해서 검색하다가 우연히 보게 된 담당자 인터뷰에서 한 가지 인사이트를 발견했다.
쿠팡 UX팀은 콘텐츠를 서비스 전반에 걸쳐 고객 경험을 좌우하는 중요한 영역으로 여기고 있어요. '글'을 '크리에이티브한 카피'로만 보지 않고, 디자이너와 동일하게 프로덕트 설계 단계에서 깊게 고민하고,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에게 진짜 필요한 정보가 무엇일지, 어떻게 효과적으로 전달할지 그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 기존과 다른 경험이라 생각되었습니다. 내가 만든 콘텐츠가 제품 사용 경험에 어떻게 기여했는지 데이터로 그 결과를 확인하면서, 전략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는 것도 굉장히 전문적이라고 느꼈고요.
└ 박스 내용을 요약하자면, UX 전략가 마인드를 지닌 UX라이터란?
프로덕트 설계 단계에서부터
서비스를 이용하는 고객에게 진짜 필요한 정보가 무엇인지 선별해서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전달할지 그 방법을 고민하는 것(라이터라면 '글'로써 기술)
내가 만든 콘텐츠가 사용자 경험에 어떻게 기여하는지 데이터로 결과를 확인
그러니까 개발자와 디자이너가 사용자 경험을 고려해 코딩과 디자인 기술로 웹/앱 공간을 실현한다면, UX라이터는 위와 동일한 사용자 경험을 고려해 '글'로써 전략을 풀어내야 하는 자리라고 할 수 있다. 그것도 혼자가 아니라 같이(개발자+디자이너)! 왜 이렇게 당연한 얘기를 빙~둘러서 하느냐고 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인하우스가 아닌 회사에서 라이팅을 할 때는 이 마인드를 종종 잊곤 한다. 정확히는 그렇게 하고 있더라도 '일부'에 그칠 뿐이다. 자체 서비스를 운영하느냐 운영하지 않느냐에서 비롯된 차이인 것 같기도 하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나는 UX 전략가 마인드를 지닌 라이터가 되고 싶다. 그게 바로 내가 생각하는 UX라이터의 미래이고, 롱런하기 위한 전술이다. 실제로 많은 디자이너와 카피라이터들이 UX라이팅 분야에 관심을 갖고 있다. 그들이 보유한 기술 노하우에 라이팅까지 엎고 간다면 '글만 쓸 줄 아는' 나 같은 에디터 출신들은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도 간과할 수 없는 노릇 아닌가. 인하우스에 가고 싶은 나로서도 UX 전략가 마인드는 필수라고 생각한다. 야놀자의 CSI Lab에서도 쿠팡과 같은 맥락에서 UX라이팅 하기를 요구한다. 심지어는 서비스 기획자의 자질과 실제 운영 경험까지 우대한다.
앞으로 UX라이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수록 그에 대한 요구 조건도 점점 더 많아질 거라 생각한다. "글 좀 쓰는 너, 그래 너! 이리 와서 해봐"의 시대는 없다. 애초부터 없었다. 처음엔 나도 거기까지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다양한 스타일의 글도 쓸 줄 알고, 교정교열도 잘 보는 정도의 기술은 너무나도 기본이고 그 위에 경쟁력을 하나씩 채워나가야 한다.
18세 피아니스트 임윤찬은 말했다. "커리어에 대한 야망은 0.1%도 없다. 다만, 다음에 연주할 곡 생각뿐이다" 띵-하고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 들었다. 몰입의 경지가 어떠하기에 이렇게 순수하게, 욕심 없이 오로지 '그 일' 생각만 할 수 있는 걸까. 부럽기도 하고, 위대해 보이기도 했다.
나는 커리어에 대한 욕심이 있다. 그 욕심은 나를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다. 다음에는 어떤 주제로 글을 써 볼까 즐거운 고민을 하며 뚝심 있게 전진하려고 노력한다. 글쓰기가 기계적인 스킬에 그치지 않고, 보다 넓은 의미에서 어떻게 스킬업 할 수 있을지를 진지하게 고민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얼마 전 UXW에 대한 관념에 잔잔한 파동이 일었다.
배달의민족앱을 이용하기 어려운 발달장애인을 위해 배민 이용 안내서를 만들게 된 이야기를 담은 아티클이었다. 실제 안내서의 첫 페이지에 이런 글귀가 나온다.
알아두면 더 편리한 정보를 안내합니다
어려운 용어를 쉽게 설명합니다
맞다. UX라이팅의 본질은 정보를 쉽게 설명하는 것이다. UX라이팅의 제1원칙과도 같은 이 글귀를 <쉬운 배달앱 안내서>에서 보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꼭 필요한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도움을 줄 수 있는 글을 쓰자! 세상에서 제일가는 전략가 마인드와 기술을 지녔다고 할지라도 '정보를 쉽게 쓰고 전한다'라는 UX라이팅의 본질은 바뀌지 않을 테니까.
이번 아티클을 갈무리하며,
나는 임윤찬 피아니스트처럼 커리어에 0.1%도 관심 없다고 말할 자신은 없다. 그래도 단 한 가지, UX라이터로서 어떤 역할을 하고 싶고, 그 역할을 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만큼은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임윤찬 피아니스트가 말한 것처럼 나도 그다음 콘텐츠를 구상할 생각뿐이다.
[2022년 7월 14일 목요일, 내용 추가]
이 글을 쓰고 나서 몇 주가 지났다. 이 글에 담긴 내 생각에 공감하는 누군가의 하트가 쌓여갈 때마다 나는 생각했다. 이 생각이 다소 오버스러운 건 아닌지를. 그러다 한 아티클을 발견했다. 네이버 웨일의 도움으로 알음알음 번역하며 읽어 보니 내가 생각했던 요지를 뒷받침하는 내용이라 아카이브 차원에서 임베드를 걸어본다.
번역해 가며 읽으려니 시간이 꽤 들었지만,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 글이다. 그리고 다시 한번 확신했다.
콘텐츠 전략가로서 UX라이터가 되어야 경쟁력이 산다는 것을. 그럼, 이제부턴 '어떻게'에 집중해 보자!
https://uxwritinghub.com/content-strategy-and-ux-writ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