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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흔한이름 May 02. 2023

엄마를 키우는 아이의 말 한마디를 시작하며

“엄마, 나무가 다 여름이 됐어! “

아이를 키우면서 가장 놀랄 때는 말을 할 때다. 어떤 때는 그 표현력에 놀라고, 어떤 때는 이런 말도 하는구나 싶어서 놀란다. 어느 순간은 감동이었다가, 또 어느 순간은 나를 돌아보게 된다.


큰 아이의 이름은 우주다. 처음에는 이 이름을 지어놓고 고민이 많았다. 우선 이름이 너무 커서 자라서 부담이 되지 않을까 싶었고, 우주라는 어감으로 놀림을 받지 않을까 싶어서 다양한 경우의 수를 놓고 고심했다.


이름의 크기보다 이름이 담긴 뜻은 단순하다. 한글이 아니라 한문으로 획을 맞춰 지었는데, 어쩌다 보니 ‘나무’라는 뜻이 담겼다.


결국 나중에 본인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바꾸더라도, 우리는 ‘나무’라는 뜻의 우주로 이름을 지었다. 다행히 9살이 된 우주는 이름도 아주 마음에 들어 하고, 나도 그 이름이 참 좋다.


그 덕분인지 아이는 넓고 광활한 우주를 나에게 보여주기도 하고, 어떤 때는 그냥 아주 귀여운 내 아이 우주가 되어 준다. 솔직한 성격도, 때로는 다정한 말로 부족한 엄마를 다독여주는 것도 다 이름을 잘 지어서 그런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둘째 낳은 이야기를 10편 정도로 정리하고 나서, 다음에 무엇에 대해 쓸까 고민을 했다. 지겨운 회사생활에 대해 쓸까, 워킹맘의 버거움에 대해 쓸까. 늘 체기가 가득한 것 같은 결혼생활에 대해 쓸까. 그러다가 이 모든 문제를 함께 풀어가고 있는 나의 우주와 나의 아이가 토닥여 주는 말을 담아 보기로 했다. 9살이 되어 제법 귀여운 생각을 문장으로 쓰는데, 그런 이야기도 같이 해보면 좋겠다 싶었다.

우주가 꼬꼬마이던 시절, 이렇게 다정한 친구로, 든든한 동료로 자라줄지는 상상도 못했다.


해를 거듭할수록 좁아지는 엄마의 마음과는 달리, 아이는 세상을 더 크게 보고 때로는 단순하게 세상을 풀어내 나를 성장시킬 때가 많다. 그래서 요즘은 이 아이가 내 인생을 하드캐리하고 있다는 생각을 거의 매일 한다.


얼마 전에 들은 말 중에 깜짝 놀랐던 말은 이거였다.


엄마, 무시해!


내가 어떤 일 때문에 계속 마음을 쓰고 답답해하니까. 그걸 보고 있던 우주가 한 말이었다.

 

“너 ‘무시한다’는 게 무슨 말인지 알아?”

“응, 선생님이 말해줬어. 싫은 친구가 계속 싫은 행동 하면 그냥 모른 척하고 신경 안 쓰는 거랬어. “


철렁했다. 선생님의 설명도 조금은 기가 막혔지만 그런 말을 기억하고 있다가 나에게 해주는 것도 놀라웠기 때문이었다. 나 역시 별다른 상황이 아니라 싫은 친구가 계속 말을 해서 마음을 괴롭혔고, 건건이 다 반응하기가 힘들었던 때였다. 가뜩이나 요즘 산후우울이 아직 남아 있나 싶을 정도로 눈물이 많은데 매번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눈물마저 쏟아졌고 그 눈물을 우주에게 몇 번 들키고 난 다음이었다.


무슨 말을 더 해야 할지 몰라서 멍하게 서 있는데 우주는 저 마치 앞서 걸어갔다. 뛰어가서 손을 잡았다. ‘무시한다’는 말이 가진 부정적인 측면을 일일이 설명하기는 내 상황을 들켜버린 것 같아 어떤 말도 할 수가 없었고, 한편으로는 감출 것은 감췄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것 같아 부끄럽기도 했다.


분명 아기였는데 언제 저렇게 자랐을까. 나는 또 어떤 모습으로 우주 눈에 담겼을까. 마음이 복잡한 순간이었다. 그런 내 마음도 모르고 우주는 쉬지 않고 재잘거린다. “근데, 엄마 나무가 다 여름이 됐어! 그치?”


우리 앞에 ‘무시’할 수 없는 계절이 새로 와 있었고, 우리는 또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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