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쓰는가? (2)

'너'를 사랑하기 위해, '나'다워지기 위해

by 정희주


“어떤 작가가 되고 싶으세요?”

지난가을, 한 출판사에서 내가 투고한 원고에 관심을 보였고, 출판사 관계자와의 미팅 자리에서 받게 된 질문이다. 신진 작가에게 할 법한 질문이었지만, 나는 이 질문에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수십 편의 원고를 준비하고 여러 출판사에 투고 메일을 쓰면서도, 나는 ‘어떤 작가가 될 것인가’에 대한 답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어떤 글을 쓰고 싶은가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았지만, 아직 어떤 작가가 되고 싶은지는 생각해 보지 않았다. 나에게는 ‘작가’라는 정체성이 없다. 나는 그저 글을 쓰고 싶었고, 원하는 글을 쓰고 있을 뿐이다.

나는 언젠가부터 “너는 뭐 하고 싶어?”라는 욕망을 묻는 질문에 “글을 쓰고 싶다”라고 말해왔다. 한때 이 대답은 마치 젊은 시절에 유학을 가고 싶다거나, 세계일주를 하고 싶다거나 하는 막연한 꿈에 불과했다. 오랜 시간 실행에 옮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형식을 갖춘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7년쯤 전부터였다. 함께 도슨트 활동을 했던 선생님 중에 출판사 편집자 경력을 지닌 분이 계셨다. 그분의 존재는 함께했던 사람들로 하여금 글을 쓰는 동기를 만들었다. 책을 낼 수 있다는 막연한 기대와 출간 작가가 되고 싶다는 명예욕이 있었다. 그때 한 달에 한 편씩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글을 쓴다는 것이 막막하기만 했다. 매달 주제를 정했지만 매번 백지 공포가 찾아왔다. 그때 글을 쓰고 서로 합평을 해주며 모임을 몇 년간 이어갔다. 그 과정에서 글의 재료가 같아도 각자 자기만의 글을 쓴다는 것을 깨달았다. 결국 어떤 식으로든 자신을 표현하게 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본격적인 글쓰기는 4년 전 시작되었다. 지금도 함께 공부하고 있는 인문공동체 철학흥신소에서 감정 글쓰기 수업에 참여했다. 매일 한 편의 글을 12주간 쓰는 수업이었다. 매일 글을 써야 하는 주제는 ‘나’에 관한 것이었다. 그것도 감정에 관한 글이었다. 당시만 해도 나는 그림이 글보다 감정을 표현하기에 더 좋은 수단이라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감정 글쓰기를 하면서 글 역시 그림처럼 강렬한 심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글은 떠오르는 심상을 재빨리 잡아채어 분명하게 묘사해 준다는 장점이 있었다. 무의식의 기억들이 펼쳐지는 동안, 내 손은 떠오르는 이미지를 속기사처럼 받아 적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글은 내 의식이 쓰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이 써 내려간다는 것을 경험했다. 그렇게 글을 한 편 끝내고 나면, 글을 받아 적기만 한 줄 알았던 나의 의식이 변해 있었다. 글은 내가 만들어 낸 생산물이 아니라 나를 변화시키는 과정이었다.


나의 글쓰기는 그런 방식으로 시작되었다. 감정 글쓰기가 끝난 다음 해 브런치 작가가 되었고, 지금까지 일주일에 한 편꼴로 글을 쓰고 있다. 나는 진정성 있는 글을 쓰고 싶다. 하지만 그 진정성은 말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누군가 내게 다가와 “저는 진정성 있는 사람입니다”라고 말한다면, 나는 그 말을 믿지 않을 것이다. 진정성은 말해지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그것이 좋다면 좋아하는 만큼 밀도 있는 시간을 보내게 된다. 그렇게 글을 썼다. 좋아하는 만큼 좋아하는 일을 했다.


나는 글을 유려하게 잘 쓰는 사람은 아니다. 대신 퇴고를 많이 한다. 글 한 편을 쓰는 데 보통 일주일이 걸린다. 처음에는 떠오르는 생각대로 글을 툭툭 뿌려 둔 후, 말도 안 되게 쓰인 초고를 퇴고한다. 자료를 찾기도 하고, 걸으면서 글에 대한 생각을 다듬는다. 그렇게 글을 쓰다 보면 처음에 생각했던 방향에서 벗어날 때가 많다. 나는 글을 수정하는 과정을 좋아한다. 퇴고의 과정에서는 과연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이야기일까를 고민하며 나를 가늠해 보게 된다. 간혹 포기하거나 축소해서 쓰기도 하고, 때로는 과장해서 오버하는 날도 있다. 그럴 때 내 마음을 살핀다. 그렇게 글을 쓰는 과정은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 된다. 이 과정이 정직하지 않으면 기만에 빠진다. 그래서 성실하게 공부하고, 정직하게 나를 돌아보려고 애쓴다.

자기 분야에 대해 깊게 고민한 사람들은 말투가 유려하지는 않더라도 그만의 매력이 있다. 그 사람의 말 속에는 강밀한 감정이 들어 있다. 그 강밀함은 대상에 대한 관심과 치열함에서 나온다. 나는 '너'를 향한 글을 쓰고 싶다. 글쓰기 과정이 좋아질 때는 내 글이 누군가를 향한 글이었을 때다. 글을 쓰는 나의 지식이나 성찰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글에 있는 ‘너’(발견되지 않은 ‘나’, 타자, 미술, 음악, 책 등)를 좀 더 깊이 있게 관찰하고 주의를 기울였을 때 글쓰기 과정은 의미 있어진다. 글을 쓰는 일은 그런 과정이다. 진정성 있게 글을 대하는 과정이다. 그리고 그 과정을 통해 진정성 있는 사람이 되어 가는 과정이다. 진짜 내가 되어 가는 시간이다.

나는 나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타자를 사랑하는 작가가 되고 싶다. 그 타자를 자주 생각하고, 이해하기 위해 애쓰고, 숨겨진 의미를 발견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것이 미술이든 사람이든 삶이든, 내 글의 주인공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내가 쓰는 ‘너’를 생각하며 함께 기뻐하고, 함께 아파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무엇이라도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해주고 싶다. 그럴 때 나는 가장 ‘나’다워진다. 그 순간 ‘나’는 더 완전한 존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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