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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들의 태움

마음달심리상담

by 마음달 안정현



대학원을 졸업하고 정신건강의학과에서 근무를 시작했다. 상담과 검사 두 가지를 다 하고 싶었는데, 종합심리검사와 심리상담을 원하는 병원에서 일하게 되었다. 종합심리검사는 3시간 정도 시간이 걸리는데 처음 병원에 오는 초진환자들을 대상으로 하기에 원장 선생님과 의사소통이 필요했다. 그래서 내 방은 원장님 옆방으로 치료실과는 별개로 의사, 간호사 선생님 등의 의료진과 자주 이야기를 하고 만나야 했다.


같이 근무하던 간호사 선생님은 대학병원에서 3교대를 하다가 힘들어서 그만두었다는 했다. 정신건강의학과에서 가장 힘든 부분은 환자들이 의사와 치료사에게 대하는 태도와 간호사분들에게 하는 태도가 다르다는 것이라고 했다. 병원 내에 인도의 카스트제도가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내담자분들이 데스크의 간호사들에게 왜 다르게 대하는 것인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최근 모병원의 사건을 계기로 방송국에서 태움에 대한 내용을 방영했다.

여성의 돌봄의 기능이 가장 두드러지는 직업 중 하나가 간호사가 아닐까 싶다. 상담에서도 보건의료직 계열의 분들이 상담을 받으러 오는 경우가 있는데, 특히 막내 간호사들은 참으로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간호사분들이 데이, 나이트, 이브닝으로 3교대 일을 하면서 환자도 보살펴야 하고, 의사들의 지시사항도 확인해가는 일들을 들으면서 '대, 단, 하, 다'라는 말밖에 나오지 않았다. 정말 멀티여야만 일을 할 수 있는 직업. 신입사원이 회사에서 힘든 것은 흔히 있는 일이지만, 막내 간호사들이 선임간호사분들의 눈치도 봐야 하고 일을 실수하거나 느릴 때 받는 피드백은 어마어마했다.

1-3년 차 간호사들을 병원에서 많은 수를 뽑는 것은 그만큼 그만두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태움'사람을 태워서 재가되도록 만들어서는 안 된다.


지금이라도 태움이라는 문화가 대중에게도 드러나서 다행이다 싶다.

일부 병원뿐 아니라 일부 석박사 연구실, 의대 레지던트, 임상심리전문가 과정 수련생들은 고통스러운 시간을 견뎌야 한다.

선임이 괴롭힘을 당했다고 후임에게 고통이 대물림되는 것이 당연시되어야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한때 을이었던 이가 과거 힘든 고통의 시간을 당했다고 지금 갑이 되어 을에게 같은 방식으로 넘겨줘야 하는 것인가?

선배의 가르침을 받아야 하는 후배들이 참고 인내의 시간을 견뎌야 하는 것이 과연 옳다고 할 수 있나?


직장 내 수련제도 내에서 선배와 후배 모두의 권리를 지켜줘야 하는 것이다.

선배가 후배에게 잘 가르치는 것과 인격적인 모독을 하는 것은 구분이 되어야 할 것 같다.

가르침을 받는다는 명목 아래 타인을 괴롭히는 이들이 있다면 그들의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려주는 문화가 형성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1971년 스탠퍼드 대학의 필립 짐바르도 심리학 교수는 스탠퍼드 감옥 실험을 했다. 2주를 계획하여 심리적, 육체적 , 정서적으로 안정된 남자 대학생들 24명을 상으로 교도관, 죄수의 역할을 맡게 했다. 2주간의 실험기간임을 밝혔음에도 교도관 역할을 맡은 이들은 죄수들의 권리를 없애고 학대를 가했고, 죄수의 역할을 맡은 이들은 점점 수동적이고 무기력하게 되었다. 권력을 갖게 된 이들은 점점 더 포악해졌고 실험을 중단하게 되자 화를 낼 정도였다고 한다. 교수가 실험을 중단하지 않았다면 극단으로 흘러갈 실험이었던 것이다.


권력의 힘은 을에게 영향을 미친다. 병원이의 간호사이건 대학이던 수련제도 내에서의 갑의 위치는 크다. 을이 주장을 한다고 해서 변화될 것도 아니고, 신규직원이나 수련생의 경우 명백한 문화, 타인의 권리를 해치지 않을 수 있는 문화가 형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돌봄과 관련된 직업을 가진 간호사, 어린이집 교사, 서비스직 종사자들을 비롯해 배움을 받아야 할 수련생, 석박사생, 레지던트들이 사람들이 인간적인 대우를 받으면서 일을 할 수 있도록 제도적인 개선이 시급한 일로 생각된다.

더 이상 귀중한 목숨들이 사라지지 않기 위해서는 말이다.


copyright 2016. 안정현 all rights reserved.


안정현은

마음달심리상담의 13년 경력의 심리학회 상담 심리 전문가 및 임상심리전문가입니다.

"두려움을 너머 온전한 자신이 되고자 하는 이들과 함께합니다."
네이버, 티스토리, 브런치 에서 심리치료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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