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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시절 소중한 선물

마음달 심리상담

by 마음달 안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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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초록색 대문 밖에서 들렸다.

마당에 나가보니 한 소녀가 문을 슬며시 열어서 집 안을 보고 있었다.

'전학 간 애자나. 먼 곳으로 이사 갔다고 전해 들었는데.'

'우리 집에는 웬일일까?'


한시가 좀 넘은 시간이었다.


"밥 먹었어?"

아이는 선뜻 답하지 못하고 답을 미루고 발 밑을 보고 있었다. 엄마는 배고프지 않으냐며 부엌에 들어가서 금세 밥을 차려다 주셨다.


그 아이는 엄마가 내 준 상을 받고 웃으며 밥을 허겁지겁 먹었다.


주인이 살지 않는 다세대 주택인 우리 집에는 넓은 마당이 있었다. 늦은 밤을 제외하고는 철로 만든 초록색 대문은 잠그지 않고 열려있었다. 도둑이 들어도 훔쳐갈 게 없는 그런 집이었다. 엄마는 여덟 식 구를 먹이고 입히느라 분주하고 바빴지만, 엄마가 일하러 나간 친구들이 집에 오면 먹을 것을 내어주셨다. 엄마는 사람이 집에 오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했다. 그래서 친하지 않은 아이들도 편하게 우리 집을 들리곤 했다.


식사가 마치고 아버지가 오래된 나무로 만든 평상으로 갔다. 사철나무 그늘에서는 무당벌레가 몇 마리 날아다니고 있었고, 우리는 사철나무 열매를 뜯어서 열어보았다. 소녀들의 호기심으로 화단에 피어있는 붉은 샐비어의 꿀을 먹겠다고 쪽쪽 소리 나게 빨아먹었다.


"이거 네 거야."


아이는 선물이라며 수줍게 내밀었다. 거즈 천 두 개를 잘라서 시접면을 접어 붉은 실로 꼼꼼하게 홈질을 한 직접 만든 손수건. 갑작스러운 선물이 고맙기도 하고 낯설기도 했다.


단발머리에 눈이 길고 팔이 가늘어 갸냘퍼보이는 아이가 손으로 한 땀 한 땀 만들었을겠구나.


더 이상 학교를 다닐 수 없게 되었고, 아이는 공장에서 일을 한다고 했다.

부모님이 따로 살고 자기는 아버지와 같이 있다고.


가슴이 바늘로 콕콕 쑤시듯이 아파왔다. 전학 가버린 아이의 자리는 금방 채워졌고 난 그 아이의 빈자리를 아쉬워하지 않았다.

지금 아이는 내가 너와 함께 한 반에 있었다고 나라는 사람을 잊지 말라고 하는 것 같았다. 미안해해져 사는 곳을 물어보았는데 주소도 알려줄 수 없고 전화도 없다고 했다.


다음에 네가 보고 싶으면 이렇게 찾아오겠다고 했다.

언젠가 고모가 다니던 공장의 시끄러운 공업용 미싱 소리가 울리는 듯했다.

운동장에서 더 이상 나와 뛰어놀 수도 없고, 그림을 그리지도 않고 미싱 바늘에 초점을 맞추고 고개를 숙이고 있을 이 아이를 생각하니 맘이 아팠다.


"나 , 괜찮아. 일 재밌어."


내 맘을 알기라도 한 건지 그 아이는 그렇게 말했다. 아이가 집에 갈 시간이라고 했다. 버스 정류장까지 데려다주고 버스를 탄 그녀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녀가 준 손수건은 예뻤지만 마음이 고마워서 사용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삼촌이 쓰던 오래된 마호가니 책상 서랍에 넣어 두고 가끔 들여다보았다. 이후 전화도 없이 아이는 나를 찾아왔으나 그땐 친구 집에 놀러 가 있어서 만나지 못했다. 그 손수건은 이사를 여러 번 하면서 사라져 버렸다.


그 아이는 나중이라도 학교는 갔을까?

아직도 미싱을 돌리고 있을까?

엄마가 되어서 아이를 키우고 있을까?


어딘가 숨어있는 잊어버린 아이들. 소외되어 내 눈에 보이지 않는 아이들. 어디선가 잊어버린 그 아이를 만나고 싶었었나 보다. 그래서 작은 나라에서 작은 시골에서 그 아이들을 만난다.


가난하던 그 시절의 아이가 준 손수건이 나와 또 다른 다른 아이에게 선물이 되어서.


copyright 2017. 마음달 안정현 all rights reserved.


안정현은 마음달 심리상담의 13년 경력의 심리학회 상담 심리 전문가 및 임상심리전문가입니다.

"두려움 너머 온전한 자신이 되고자 하는 이들과 함께합니다."
네이버, 티스토리, 브런치, 인스타그램 심리치료와 관련된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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