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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달 안정현 Nov 23. 2018

이불밖은 위험해서 혼자입니다

마음달심리상담





가끔은 온몸에 가시를 세우고 주변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싶을 때가 있다. 오로지 혼자 가만히 있고 싶은 날. 그런데 세상과 거리를 두고 싶은 날이 1년 365일이 된 사람이 있다. 

현아는 진정한 ‘집순이’다. 약속이 생겨도 비가 오면 나가기 싫어서 바로 취소한다. 부모의 바람대로 고등학교 졸업 후 유학을 갔지만 한 달만 수업을 듣고 그 후에는 학교에 가지 않았다. 그렇게 낯선 외국인을 피해 1년간 집에만 있다가 결국 부모에게 더 이상 견딜 수 없다고 울먹이며 말했다. 부모는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현아를 한국으로 데리고 왔다. 










부모는 더 이상 현아에게 학업 스트레스를 주지 않기로 했다. 다시 수능을 보게 하고 집에서 먼 지방 대학에 입학시켰다. 감정 표현이 부족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관심이 없던 현아는 자신보다 나이 어린 동기들과 친해지기 힘들었다. 자취방에서 혼자 치킨과 짜장면을 배달시켜 먹으며 마음의 허기를 채우다 보니 몸무게가 점점 불어났고 나중에는 살이 찐 모습을 남들에게 보이기 싫어서 수업을 제대로 듣지 않았다. 낮은 학점에 학점 이수도 제대로 하지 못해 졸업이 힘들어지자 현아는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했다. 결국 매사에 의욕이 사라져 스스로를 고립시키며 집 밖으로도 나가지 않게 되었다. 부모는 상황이 심각해지고 나서야 현아를 상담실로 데리고 왔다.







세상으로부터 숨어버린 은둔형 외톨이







상담을 하면서 10대부터 40대까지 다양한 은둔형 외톨이들을 만났다. 그들이 마음을 닫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친한 친구에게 배신을 당해서, 오랜 기간 부모와의 관계에서 거리감을 느껴서, 학업에 실패해서, 취업에 실패해서, 시험 준비를 오래 하다가 취업 기회를 놓쳐서 등 이런저런 이유로 숨는다. 누구나 고통은 피하고 싶다. 상처받기 싫고 실패하고 싶지 않아서 세상과 거리를 둔다. 










심리학에서는 이들을 ‘은둔형 외톨이’라고 하지 않는다. 타인과의 관계에 관심이 없고 감정 표현이 부족해 사회 적응이 어려운 이들 중 일부 ‘정신분열성 성격장애’가 있다고 말한다. 
영화 〈슬로우 비디오〉의 주인공 여장부는 동체 시력이라는 특별한 능력을 가졌다. 하지만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받고, 유일한 친구인 수미도 같이 따돌림을 당할 것 같아 자신이 먼저 그를 떠난다. 









영화 <슬로우 비디오> 스틸컷






여장부는 방문을 걸어 잠그고 세상과 담을 쌓고 지낸다. 오랫동안 마음을 닫고 살다가 서른 초반이 되어 CCTV 통합관제센터에서 일을 시작한 그는 간단한 대화조차 서툴다. 많은 생각을 하지만 밖으로 나오는 대답은 한 단어나 짧은 문장으로 끝나고 만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에게 ‘좀 이상한 사람’으로 오해받는다. 

상담을 하는 중에 현아에게서 유리벽 같은 거리감이 느껴졌다. 그녀는 혼자가 편하고 친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해 어디에도 소속감을 느낄 수 없다고 했다. 중학교까지는 친한 친구들이 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친구들을 멀리했다. 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대부분의 친구가 부유했고, 상대적으로 가난했던 현아는 심한 열등감을 느꼈다. 친구들은 자기보다 멋지고 나아 보였다. 끊임없이 자신과 비교하고 혹시나 실수라도 할까봐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말하는 것도 힘들었다. 고3이 되면서 부모님의 사업이 성공해 집에 여유가 생겼지만 그녀는 자
신이 가난하고 부족하다는 생각을 멈출 수 없었다.







사람들과 연결 고리를 만들다










어릴 때는 외모가 튀거나 학습이 부진하거나 사회성이 떨어지면 친구들에게 놀림을 받기도 한다. 때로 가난이 열등감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외로웠던 현아는 고등학교 시절 공부라도 잘해서 자신의 능력을 보여주고 싶었다. 정작 유학을 가자 학업을 따라가기 힘들었고 집에서 컴퓨터 게임을 하면서 점점 더 혼자가 되었다. 

현아는 다른 친구들과 자신이 다른 것 같았다. 오랫동안 고립되어 있었던 어린 시절의 그녀를 토닥여주고 끊어진 연결고리를 이어주어야 했다. 그녀는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지 않다 보니 어휘력이 부족했고 다소 독특한 억양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타인의 감정을 읽는 능력, 상황을 파악하는 능력도 떨어졌다. 
앞서 소개한 영화 속 주인공도 타인에게 다가가는 방법이 서툴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한다. 사랑했던 수미를 만나고 잠만 자는 아버지를 둔 소년도 만나고 마을버스 기사 아저씨도 만난다. 









영화 <슬로우 비디오> 스틸컷






여장부가 동체 시력으로 떨어지는 은행잎을 빠르게 잡는 것을 수미가 좋아하자 원치 않는 은행잎을 한가득 선물하기도 한다. 그러나 점점 굳어가는 수미의 표정은 읽지 못한다. 
타인과 관계를 맺지 않고 오랜 시간 담을 쌓고 지낼수록 현실에서 직업을 구하는 것도 힘들고 관계에 적응하기도 힘들다. 은둔형 외톨이들은 상담 시간에도 침묵하거나 질문에 간단하게 답하는 경우가 많다. 겉으로는 아무런 표정이 없고 무감각한 듯하나 실제로는 타인의 반응에 예민하고 고집스러운 면도 있다. 

세상을 등진 채로 중년이 되어 나이 든 부모에게 경제적 짐을 지우고 방에만 있는 경우는 더욱 심각하다. 부모는 자식을 고쳐달라고 요청하지만 당사자는 상담을 거부한다. 상담실에 온다고 해도 부모를 피하고 싶어 하거나 원망하는 경우가 대다수다. 세상 밖으로 나가는 것도 힘들고 부모에게서 벗어나고 싶다고 하지만 경제적, 정신적 독립을 하지 못한다. 이 경우는 어린 시절 통제적인 부모 아래 모범적인 자녀가 되기를 강요받아서 어른이 되지 못하고 성장을 멈춘 것이다.










사례들을 보면 나이가 어릴수록 변화하는 정도가 높다. 사람이 싫다며 혼자인 게 편하다고 하지만 친구가 한두 명 생기면서 표정이 변하는 것은 숨기지 못한다. 이제 막 성인이 된 경우는 사회에 적응하기가 쉽지 않아서 좌절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일자리를 구하고 주변 사람들을 만들어가기도 한다.







이제는 딱딱한 껍질을 벗고 나올 때







〈슬로우 비디오〉의 여장부는 다치지 않고 안전하게 살고 싶어 만든 벽을 스스로 무너뜨린다. 결국 그는 수미를 도와주다가 동체 시력을 잃는다. 
세상에 나아가면 다칠 수도 있고 아플 수도 있다. 그래도 부모의 안전한 집을 벗어나 두려워도 오늘을 살아보겠다면서 용기를 내는 이들이 있다. 혼자가 안전한 것 같지만 마음은 점점 굳어져 온기를 잃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랫동안 혼자인 사람들은 관계를 맺는 데도 그만큼의 시간이 든다. 딱딱한 껍질을 부수는 것은 혼자서는 힘들다. 










현아가 세상으로 나아가기까지는 1년 이상의 시간이 걸렸다. 상담실에 빠지지 않고 매주 올 정도로 성실했고, 가깝게 지내던 친구도 있었다. 그녀는 학교로 돌아가 졸업했고 작은 회사에 취직해 월급을 받았다. 사람은 혼자서는 자랄 수 없다. 조금은 아프고 힘들더라도 누군가를 만나 소통해야만 성장할 수 있다.



*사례는 모두 창작의 과정을 거쳤습니다.

<나를 사랑하는 일에 서툰 당신에게> 중에서

안정현 지음  maumd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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