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달 심리상담
“저는 왜 이렇게 잘하는 게 없을까요?”
수민은 입사한 지 몇 달 되지 않았지만 퇴사를 고민하고 있다. 서른 곳 넘는 회사에 입사지원서를 넣었고, 높은 경쟁률을 뚫고 현재 직장에 들어갔지만 막상 일을 시작해보니 이 일을 왜 하는지 의미를 찾을 수 없고 업무도 자신과 맞지 않는 것 같았다. 일요일 저녁만 되면 출근 걱정에 가슴이 두근거리고 두통이 밀려왔다.
일을 척척 잘해내는 상사들과 주어진 업무를 깔끔하게 마무리하고 칭찬받는 입사 동기를 보며 점점 더 자신감을 잃었고, 빨리 적응하지 못하는 자신이 원망스럽기도 했다. 업무에 대해 상사에게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는 날에는 하루 종일 기가 죽었다. 모르는 게 있으면 선배들에게 물어보기라도 해야 하는데, 그것도 모르냐며 야단맞을 것 같아 묻지 않다 보니 실수는 더 잦아졌다. 사수는 신입사원이 의지가 없는 것 같다며 열
심히 하라고 쓴소리를 했다. 수민은 왜 자기만 이 모양인지 답답하고 속상했다. 그냥 이대로 퇴사하고 여행이나 다녀오고 싶었다.
회사원, 퇴사를 꿈꾸다
2016년 한국경영자총협회에서 전국 306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신입사원 채용 후 1년 내 퇴사율이 27.7퍼센트로 나타났다. 실제로 네 명 중 한 명이 1년을 넘기지 못하고 퇴사하는 것이다. 중학생을 대상으로 자유학기제가 도입되어 청소년기부터 자신을 탐구할 시간이 주어졌다고 하지만 대부분의 20대는 자신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원하는 일을 하기 위해 무엇부터 해야 하는지도 모른다. 졸업하기 전부터 구직 활동을 시작해 높은 경쟁률을 뚫고 겨우 신입사원이 되어도 사소한 일만 맡는데다 일이 서툴러서 성취감이나 보람을 느끼기 어렵고 제대로 해보기도 전에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생각해버리기도 한다.
경험이 적기 때문에 일이 서툰 게 당연한데도 일을 잘하는 선배들을 보며 자존감이 바닥을 치기도 한다.
어떤 이들은 이런 스트레스를 오랜 시간 버티다 정서적으로 소진되고 결국에는 에너지가 바닥나기도 한다. 자신에 대한 이상적인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상황이 지속되면서 좌절감은 더욱 커진다. 결국 조직의 구성원으로 자리 잡기 위한 업무나 지식, 규범, 가치관을 학습해가는 조직의 사회화에 실패하고 이직을 꿈꾼다. 워라밸Work&Life Balance(일과 삶의 균형)을 이루며 살고 싶지만 이상에 그치고 마는 것이다.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한 자기위로 능력
MBC 드라마 <그녀는 예뻤다> 중
드라마 〈그녀는 예뻤다〉의 주인공 혜진은 패션잡지사에 비정규직으로 입사한다. 입사한 첫날부터 그녀는 동료들의 언어가 외계어로 들린다. 처음 들어보는 낯선 패션 용어들에 당황하다가 회의 내용도 제대로 정리하지 못하고 동료들에게 무시당한다. 그런 상황을 벗어나고 싶었던 혜진은 친구에게 고민을 털어놨고, 출근 버스에서 패션 관련 공부를 하면서 업무 능력을 조금씩 키워간다.
처음 일을 시작할 때는 불안이나 긴장 같은 불쾌한 정서를 자주 경험하게 된다. 이때는 자기위로 능력이 필
요하다. 이것은 다른 사람의 요구에 자신을 잃지 않으면서 스스로 감정을 달래고 위로하는 능력이다.
심리학 박사 에드워드 글래스먼은 자기위로 능력을 네 가지로 정의했다. 자신이나 타인의 신체를 접촉함으로써 위로받는 능력, 자신의 어려움에 대해 타인에게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위로받는 능력, 타인이 위로해주는 것을 수용하는 능력, 힘든 상황에서 벗어나는 힘이 있거나 스스로 위로하는 능력이다.
혜진은 고민이 생겼을 때 쌓아두지 않고 친구에게 솔직히 털어놓았기에 회복이 빨랐다. 반면 앞 사례에 등장했던 수민은 그렇지 못했다. 학교에 다닐 때는 성적이 좋은 편이었고 공부에 자신이 있었는데, 회사에서는 동기들에 비해 뒤처지고 업무에 빨리 적응하지 못하면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고 이를 부정적인 주변과의 관계를 통해서도 극복하지 못하고 회피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 과정에서 자존감이 더욱 떨어졌다. 이 경우 감정을 피하지 않고 현재 자신이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지,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수민의 생각을 들여다본 결과, 일을 잘하고 싶다는 소망과 주변 사람들로부터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가 있었다.
사람은 사회 환경 속에서 서로 관계를 맺으면서 성장해간다.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는 인간의 욕구를 다섯 단계로 나눠 설명했다. 하위 욕구에서 상위 욕구로 올라가는데 가장 하위 단계인 1단계는 생리적 욕구, 2단계는 안전의 욕구, 3단계는 사랑의 욕구, 4단계는 존중(인정)의 욕구, 가장 상위 단계인 5단계는 자아실현의 욕구다. 그중 존중(인정)의 욕구는 타인으로부터 받아야 하며 이것이 충족될 때 우리는 자존감을 잃지 않는다.
업무 성과가 좋으면 조직의 인정을 받는 건 당연하지만 신입사원이 처음부터 그렇게 되기는 힘들다. 무술을 배우러 소림사에 간 수도승들이 처음부터 권법을 배우지 않고 물을 기르고 장작을 패는 것부터 시작하듯이, 회사에서도 들어가자마자 번듯한 업무를 맡기는 어렵다.
내 경우를 예로 들면, 상담사가 되기 위한 과정도 비슷하다. 심리학회에 소속된 상담심리 전문가는 석사 졸업 후 최소 3년의 수련 과정이 필요하다. 최소 400회기 이상의 상담을 하고, 개인 상담과 관련해서 50회 이상의 슈퍼비전을 받는데 이때 자신이 상담하는 데 부족한 부분을 잘 들으면 상담사로서 성장할 수 있다. 즉, 피드백을 잘 들어야 한다. 스스로 실력이 부족함을 인식해야 하고, 학술지에 논문도 내야 하기에 모든 과정을 거쳐 상담심리 전문가가 된 사람은 2018년 현재 1,300명이 넘는 정도다.
서툴러도 포기하지 않는 법
일이 서툴 때 포기하지 않고 자신을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일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서툴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다른 사람보다 배우는 속도가 느리다면 느린 자신을 받아들여야 한다. 대신 다른 사람보다 좀 더 시간을 들여서 일하면 된다. 변화보다 현재의 내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잘하고 싶다는 마음에 부담을 갖고 지금의 생각이나 기분을 비판하기보다는 알아차리는 마음이 필요하다. 불안을 회피하지 말고 바라보는 것이다.
둘째, 문제를 피하지 말고 ‘잘한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서툰 자신의 모습을 보는 것이 힘든가? 꼭 잘해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인지 치료의 선구자 앨버트 엘리스는 ‘나는 능력 있고 유능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나는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인정받아야 한다’ 같은 융통성 없는 사고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런 생각을 자주 한다면 스스로를 힘들게 하고 있을 수도 있다.
어떤 TV 예능 프로그램에 나온 일화다. 모 개그맨이 길에서 만난 아이에게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덕담을 하자, 옆에 있던 이효리 씨가 이렇게 말했다. “훌륭한 사람 말고 아무나 돼!” 이 말을 듣고 내 마음이 다 편해졌다. 훌륭한 사람이 아니라 그냥 나라도 괜찮다는 이야기다.
JTBC <한끼줍쇼> 중
‘훌륭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나는 왜 이럴까’라는 자책으로 이어지면 자신을 괴롭히는 생각이 된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자신을 옥죄는 감독관이 되면 의욕은 점점 떨어진다.
셋째, 자신의 장점과 단점을 파악해야 한다. 잘하고 싶고 실력을 발휘하고 싶은 부분이 어디인지 생각해보자. 물론 신입일 때는 잘하고 싶어도 경험이 많은 선배를 따라가기는 힘들다. 선배와 자신을 비교하지 말고 어제보다 조금 더 실수가 줄고 나아졌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하자. 또한 어떤 부분에서 부족하고 실수가 반복되는지 살펴보자. 단순히 생각하는 데 그치지 말고 구체적으로 적어보는 게 좋다. 모호하게 생각하면 모호한 결론밖에 나지 않는 법이다. 일을 못한다고 자책하면서 바닥을 치고 있다면 이런 구체적인 기록이 도움이
된다.
넷째, 자신과 비교되는 사람을 관찰한다. 그 사람의 어떤 점이 나보다 나은지, 어떤 점을 본받고 싶은지 생각해보자. 수민이 부러워했던 선배와 동료 들은 많은 시간을 일에 쏟았을 것이다. 누구나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기까지 오랫동안 좌절하고 실수한다. 말콤 글래드웰의 《아웃라이어》를 보면 세상에 노력하지 않은 천재는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비틀스도 유명해지기 전 수많은 시간을 공연에 투자했다. 대부분의 사람은 특별한 재능을 갖고 태어난 게 아니라 오래도록 공들여 노력해 결과를 맺는다.
다섯째, 최선을 다했는데도 일이 맞지 않는다면 다른 길을 고민해야 한다. 고민만 하고 이도 저도 못 하는 게 아니라 현재 하는 일이 맞지 않음을 인정하고 다른 길을 갈 수도 있다. 〈그녀는 예뻤다〉의 혜진은 패션잡지사에서 능력을 인정받지만 우연히 동화작가 인터뷰를 하면서 자신이 정말 좋아하는 일이 기자가 아님을 알게 된다. 동화작가가 자신이 원하던 일이라는 걸 깨닫고 새로운 꿈을 향해 도전한다.
무엇보다 자신이 원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찾는 게 중요하다. 나 역시 수민처럼 일이 서툴러 자책하고 포기해버릴까 고민에 빠진 적이 많았다. 그러나 상담하면서 알게 된 사실은 매주 1회씩 빠지지 않고 꾸준히 상담하는 내담자들은 점차 자신이 원하는 사람으로 변화한다는 것이다. 그들은 힘들어도 포기하지 않았고 문제의 원인을 타인에게서만 찾지도 않았다. 그들을 보면서 글쓰기에 재능 없는 나 또한 작가로서 한 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그리고 종종 스스로에게 이런 말을 해주는 것이 필요하다.
그냥 해보는 거지, 뭐.
할 수 있는 만큼 했는데 안 되면 “다음번에 더 잘해보자.”라고 하면 된다. 지금 이렇게 노력하는 나에게 격려의 말을 건네자. 오늘은 오늘의 나로서 만족하는 내가 되기를 바란다. 누구나 인생은 처음이라 서툴다.
책<나를 사랑하는 일에 서툰 당신에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