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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을단상] 유발 하라리는 모르고 있다.

원시 공산제를 지나 고대 노예제로?

by 도을 임해성

[도을단상] 유발 하라리는 모르고 있다.

평화로운 조국, 생각하기 좋은 아침입니다.

"산업혁명으로 촉발된 경제 체제의 변화를 기존 농업시대의 이데올로기로는 극복할 길이 없어 사회주의 같은 새로운 이데올로기가 출현했습니다. AI 혁명으로 양산될 무노동 계급 등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완전히 새로운 이데올로기와 모델들이 출현해 경쟁하게 될 것입니다."

유발 하라리가 한 말입니다.
마르크스의 글을 읽어 보면, 원시 공산제와 플라톤의 국가론 등에 대한 동경이나 향수가 많이 엿보입니다. 사회주의는 새로운 이데올로기라기보다는, 새로운 산업혁명의 물결 앞에서 공동 생산과 공동 분배라는 농경주의적 전통과 농업시대와 그 이전의 원시적 이데올로기로 회귀하려는 움직임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산업혁명으로 촉발된 산업 시대에 대한 솔루션이 아니라 그에 대한 반발과 퇴행의 결과일 수 있다는 것이죠. 그것을 새롭다거나 새로운 이데올로기라고 보기에는, 21세기 독자들의 독서량이 너무 많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리적 AI와 인간의 형상을 한 휴머노이드 로봇의 생산 현장에 대한 투입은 그야말로 새로운 이데올로기를 요구합니다. 그러나 낙원에서 쫓겨난 인간 이야기는 노동을 숙명으로 그려냅니다. 동양의 오랜 이야기들은 노동을 수양의 단계로까지 끌어올리기도 하죠.

생산 현장과 소비 현장에 인간이 존재하고, 생산 시점에 소득을 벌고 소비 시점에 생산된 재화와 용역을 소비함으로써, 경제적 순환을 확대 재생산하는 산업시대의 이데올로기에 커다란 균열이 발생합니다.

생산에 공헌하지 못하는 인간,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비에 공헌해야 하는 인간. 노동에서 해방되는 유토피아적 미래가 아니라, 노동에서 완전히 소외되는 디스토피아적 현실 앞에서 자본주의는 스스로를 유지할 새로운 철학을 도출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에 놓여 있습니다.

정말로 10년 정도면 현실이 될 강력한 변화입니다. 1850년대의 현실 앞에서 고민했던 마르크스와 같이, 2050년대의 현실 앞에서 우리도 고민을 해야 할 것입니다.

선진국은 물론 이른바 브릭스 국가들의 공장이 휴머노이드로 가득 찼을 때, 사무실 업무의 대부분을 인공지능이 수행하게 될 때, 인간의 자리는 어디이며 인간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수천 년간 '바람직한 인간'의 동반자로서 존재했던 '노동'을 제거하거나 제거된 인간을 상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인간이 생산의 단계에서 소득을 확보할 수 없어도, 자본주의의 고리가 돌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역사에서, 노예제 사회는 그런 사회가 가능함을 보여 주었습니다. 노예 대신에 로봇이 그 자리를 차지해야 하겠죠. 노예제 사회 인간이 무엇을 하였고, 어떤 역할을 했는지에 대해서 공부를 해 봐야겠습니다.

왜냐하면, 저도 모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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