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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도을일기

가을 저녁의 밥상

추석 달빛에 내리는 희노애락

by 도을 임해성

<도을단상> 가을 저녁의 밥상

1남 1녀를 둔 아버지와 어머니가 자식들에 둘러싸여 인삼주와 식사를 하십니다.


저도 이제 나이가 들어가는 건가요.

강철같은 무릎이 꺽이고 얼음장같은 의지가 녹아내린 건가요.

자식이 있다는 것.

아들이 있다는 것에 늘 안도하는 아버지를 보며 유난스럽다고 생각했는데, 한 해 한 해 지날수록 자식이 있다는 것, 아들이 있다는 것에 필요이상의 든든함을 느끼게 되는 것 같습니다.


제대한 아들녀석과 우리 두 사람 일생에 처음으로 마주 앉아 전을 부치며 두런두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매우 좋았습니다.


90년대의 음악이 흐르는 배경 위로 흩뿌려지는 웃음소리와 코 끝이 찡해지는 서로에 대한 감사와 앞서 가신 가족에의 그리움으로 잠시 눈이 얼얼해지기도 하는 것은 꼭 43도짜리 인삼주가 매웠기 때문만은 아닐 것입니다.


하루종일 준비해서 한 시간 먹고 일어나는 음식의 엔트로피에서 삶의 유한함과 질기디 질긴 생에의 의지를 절감하면서 잠시 과학이 눈감아 주리라 믿고 휘영청 달을 보며 마음에 있는 말들을 말없이 눈에 담아 보냅니다.


수 천만의 간절함과 이타의 에너지가 모이는 초점이 되는 달은 일년 중에 오늘이 가장 행복할 겁니다. 좋은 에너지의 일념이 모이는 오늘밤, 그래서 늘 한가위만 같아라 하는 맘으로 저는 부모와 자식이 모두 곁에 있음에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벌써 조카가 돈 벌어서 산양산삼을 선물할 정도로 장성했네요.

보람이란 이런 걸까요.

내 다음 세대가 뿌리 내린 모습을 보며 내 가지 마른 것을 잊고 기뻐할 수 있는 것.


점정 더 아버지를 닮아가는 저녁입니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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