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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을 임해성 Sep 14. 2022

연극라면 재관람 후기

레트로 코믹극 속 레트로를 생각하다


연극라면 재관람, 후기 있는 후기.

후기는 역시 재관람 후기가 최고!

대학로 연극 라면은 하나의 전제 위헤서 시작이 됩니다. 극의 제목이기도 한 라면은 은실을 향한 만수의 사랑이자 등장인물들 각각의 개성에 대한 메타포입니다. 은실 어머니 방여사의 가업을 이어받고싶은 만수, 하지만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라면집을 차리고 싶어하는 그런 만수를 은실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한편, 만수는 퍼진 면을 좋아하고 은실은 꼬들면을 좋아합니다. 그리고 조연 부부 중 남편인 경필은 라면을 끓일 때 스프를 먼저 넣고, 아내인 희선은 면을 먼저 넣습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 서로 다른 남과 여를 표현하기 위하여 붕어빵을 먹을 때 머리부터 먹는지, 꼬리부터 먹는지를 묘사하듯 라면이라는 소재를 이용합니다. 

이렇게 서로 다르지만 스프를 먼저 넣으면 어떻고 면을 먼저 넣으면 또 어떠랴? 어차피 끓여 놓으면 같은 라면인데. 극의 종반 희선이 이렇게 읊조리는 얘기를 들으며 은실은 만수의 미래에 동참하기로 결정합니다. 사랑의 크기에 비하면 차이는 사소하다는 것, <라면>의 주제의식을 하나로 압축하자면 이것이겠네요.


잘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분식집을 차리겠다는 만수와 그런 만수에게 멋진 프러포즈를 기대하는 은실, 일찍 가정을 꾸렸지만 여전히 철없는 경필과 그 남편에 사춘기 딸로 고민하는 희선 등 다섯 명의 인물들이 겪는 좌충우돌 연애 스토리를 그려나갑니다. 

극의 백미는 극 종반 만수가 은실을 향한 독백을 하며 라면을 끓이는 부분입니다. 만수는 포스터에도 실려있는 문구인 '라면은 인스턴트 음식이라고 하지만 정말 맛있는 라면을 먹고 싶다면 신경써야 할 것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사랑도 그런 게 아닐까....' 등을 독백하며 실제로 라면을 끓이기 시작합니다. 포트에 끓인 물을 부르스터 위에서 예열 중인 양은 냄비에 붓고, 물이 다시 끓으면 라면을 넣고 스프를 끓이고 집게로 잘 저어주고, 그걸 그릇에 담습니다. 


라면을 끓이는 동안 소극장 안에 고소한 라면 냄새가 가득 퍼집니다. 흔히들 연극이 관객과 배우가 소통하는 오감예술이라고 말하지만, 대개 후각은 소극장 특유의 퀘퀘한 냄새를 맡다가 이내 마비되는 것으로 그 역할을 다하죠. 그런데  <라면>에서는 연극 고시원에서와 마찬가지로 MSG 가득한 라면 냄새가 관객의 후각에 각인되는 자극으로 남습니다. '먹고 싶은 연극'이라는 캐치프레이즈가 이걸 염두에 둔 것이라면 꽤나 성공적인 셈이죠.ㅎ 적어도 '소극장에서 공연되는 그런 저런 연극들 중의 하나'로 관객의 기억 어딘가에 묻혀버리지는 않을 테니까요. 제목이 또 라면이니까 정말 그럴겁니다. 

90년대를 반영하는 연극이기 때문일까요? 레트로를 내세우는 연극이니만큼 남성과 여성이 서로를 바라보는 방식, 서로를 다루는 방식이 좀 올드하기는 합니다. 남자는 미래를 향해서 나아가고 여자는 남자를 기다리죠. 남자가 자기만의 방식으로 여자에게 감동을 주고 싶은 남자의 마음을 여자는 이해하지 못합니다. 좀처럼 잠자리를 허락하지 않는 여자를 남자는 안타까워합니다. 친구들을 만나면 술도 한 잔 하고 외박도 하고 싶어하는 남자들의 마음에 여자들은 관대하지 않습니다. 여자들은 까다롭기만 합니다. 남자들은 애가 탑니다. 그렇게 서로 달라도 정성을 다 해서 사랑하며 꿈을 향해 나아가고 사랑은 결실을 맺습니다. 


또한 경태가 술을 마시다 새벽 늦게 들어왔을 때 희선은 거실 쇼파에 앉아 도끼눈을 뜨고 경태를 노려봅니다. 은실은 연애 초반처럼 열정적으로 자신을 대하지는 않는 만수에게 '이럴 거였으면 포장지를 벗지 말 걸 그랬어'라고 이야기합니다. 은실의 관념 속에서도 여성의 순결은 여성의 상품가치를 유지시켜주는 도구의 하나로 인식되어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런 인식은 다시 처음의 주제의식과 만납니다.  스프를 먼저 넣으면 어떻고 면을 먼저 넣으면 또 어떠랴? 어차피 끓여 놓으면 같은 라면인데 라는 생각이죠. 다른 것들을 같다고 하려는 마음이 지배했던 시기의 이야기 구조를 갖게 된 것이 아닌가 싶네요.


사실 되게 재밍있게 본 연극인데 지나치게 무거워진 감이 있습니다. ㅎㅎ 


그야말로 레트로감성으로 보면 유쾌하고 재미있는 작품일 수 있습니다. 대학로 로맨틱 코미디가 추구하는 방향도 진지함 보다는 가벼운 웃음과 잔잔한 감동이니까요^&^

한 가지, 정말 맛있는 라면 끓이는 방법을 알려드리겠습니다.  

라면은 어떻게 끓이던 결국은 같은 맛아 아닙니다. 절대로 아니죠. 

라면의 절대강자 후라이팬 라면을 소개합니다~~~~


후라이팬을 준비하시고 라면 하나당 500cc의 물을 넣습니다. 그리고 찬물일때 스프와 라면을 넣습니다.

인스턴트라면이 깊은 맛이 나지 않는 이유는 면발에 욱수가 배지 않기 때문입니다. 찬물일때 스프와 라면을 넣고 라면을 뒤집으며 스프를 적십니다. 물이 뜨거워지는 동안 계속해서 면발을 젓가락으로 들어올려 공기와 접촉시킵니다. 쫄깃함이 달라집니다. 면발이 흰색에서 노란색으로 바뀌면, 대개는 그 시점이 물이 팔팔 끓어오를 때쯤이긴 합니다. 그 때 바로  불을 끕니다. 잠깐 잔열에 뜸을 들이고 먹어보세요.


마지막 한 가닥까지 쫄깃쫄깃하고 면발에 국물이 끝내줍니다.

라면도 못 먹고 고생한 배우들에게 박수~~

오픈런이니 언제든지 먹을 수 있는 라면처럼 언제든지 볼 수 있슈~


출출할 때 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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