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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공방 Jul 29. 2024

[더위는 분노를 지배한다

온도와 감정의 심리학


출장차 들른 6월의 부산, 수면 위로 자욱하게 퍼진 해무를 만났다. 장관이었다. 물론 감동은 그리 길게 남지 않았다. 더워진 날씨, 꿉꿉한 공기. 찜통에 익어가는 만두가 된 기분. 시장에 들러 주전부리나 사서 숙소로 도망가자!


“닭꼬치 얼마예요?” “사천만 원!” “하하. 입금했어요.” “얼마?” “사천 원이요.” “에헤이~ 사천만 원이라니까.” 사장님의 시답지 않은 농담이 말꼬리를 잡았다. 좁은 골목에 인구밀도는 높아지고, 습기에 숯불 열기까지 더해지니 농담을 받아줄 여유라곤 없었다. 좀만 참자, 좀만 참으면 쾌적한 숙소가 기다린다. 이 마음으로 버티고, 버티고, 버텼다. 버티고, 버티고 버텼는데도 닭꼬치는 감감무소식이었다. 모여있던 손님들은 하나둘씩 봉투를 들고 떠났다. 그때 사장님이 물었다. “뭐 드릴까?” 닭꼬치 주문 누락 사건 발생! 설마 했던 불안은 현실이 되었구나. 농담 따먹기 할 시간에 정신이나 바짝 차릴 것이지! 화가 치밀어 올랐다.


높은 온도와 습도는 나쁜 감정의 트리거다. 짜증, 적대감이 드세지고 공격적 행동도 증가한다. 6월은 여름이 시작되는 시기다. 빵빵한 에어컨 덕분에 추울 지경인 7월과 달리 실내도 실외도 더운 순간이 많다. 그래서 불쾌 지수는 한여름보다 더 높다. 2022년 발표된 국토교통부 철도경찰 통계 연보에 따르면 바로 6월, 열차 안 폭행, 절도 등 범죄가 증가한다. 이뿐일까? 날씨가 더워질수록 범죄율이 증가한다는 연구 결과는 각국에서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 6월이라서 나는 고작 닭꼬치 때문에 내 안의 악한 존재를 소환하려 했다.


불쾌한 감정은 마냥 미워할 수 없다. 우리는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 행동하는데, 이 행동이 우리를 지키기 때문이다. 허준호 배우의 유명한 일화를 보면 분노가 어떻게 기능하는지 알게 된다. 그는 2009년 뮤지컬 홍보차 일본에 방문했다. 이때 한 일본인 기자가 행사의 취지와 관련 없는 무례한 질문으로 허준호 배우를 당황스럽게 만들려고 시도했다. ‘독도는 누구 땅이냐’ 이 질문을 받은 허준호 배우는 자리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기자 앞에 서서 그의 볼펜을 빼앗은 후 이렇게 물었다. “기분이 어떠세요?” 일본인 기자는 사과했고, 대한민국은 열광했다. 그의 분노로 우리 국민은 위로를 받고 힘을 얻었다.


분노는 나의 것을 빼앗길 때, 손해를 강요받을 때, 통제력을 잃을 때 나타난다. 선하지 않은 세상을 살아갈 때, 분노 없이는 약탈을 당하고 만다. 내 것을 지켜낼 수 없게 된다. 세상을 바꾸는 자들은 누구인지 살펴보자. 분노하는 자들이다. 불공평한 사회에 분노할 수 있기에 세상은 나아진다.


문제는 적절하지 않은 분노가 마음을 지배할 때 일어난다. 엉뚱한 상황에 분노하거나, 필요 이상의 분노를 표출하고, 분노를 제 역할에 맞지 않는 방식으로 드러내다 보면 감정에 잡아먹혀 실수하고, 자신을 망가뜨린 후 관계를 무너뜨린다. 이런 일이 잦기에 분노하는 사람은 감정 조절의 실패자 취급을 당하곤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분노를 어떻게 다스리고 활용해야 할까?


첫 번째 단계는 ‘정확한 인식’이다. 짜증이 치밀어 올라올 때 자신에게 질문한다. “화가 날 상황인가?” 감정은 상황을 왜곡한다. 한걸음 떨어져야 바르게 보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물론 화가 났다는 건, 화가 날 상황이라는 것이 맞다는 것이다. 기다려도 나오지 않는 닭꼬치처럼 짜증을 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에 우리는 화를 낸다. 그럼 다음 질문으로 넘어간다. “분노 점수를 0에서 10점으로 매긴다면, 지금 상황은 몇 점 정도가 적당할까? 그리고 나는 몇 점 정도로 화를 내고 있을까?” 객관적 분노와 주관적 분노 사이에 갭이 크면 클수록 별일 아닌 일에 긁힌 내 모습을 인식하게 된다. 감정을 객관화해야 한다.


이제 둘 사이의 갭이 생긴 원인을 찾는 질문을 던진다. “필요 이상으로 화를 돋운 또 다른 이유는 무엇인가?” 적절한 분노는 건강히 기능하지만, 필요 이상의 분노는 이성을 마비시킨다. 따라서 ‘필요 이상’의 분노를 일으키는 원인을 찾아야 하는데 보통은 정해져 있다.


심리학자 앤더슨과 앤더슨은 게임 실험을 진행했다. 게임은 전반전과 후반전으로 나눠서 진행되었는데, 전반전에서 승자는 패자에게 소음을 처벌로 내렸다. 그리고 후반전이 되면 역할이 바뀌어 전반전의 패자가 승자가 되었다. 그들은 소음으로 복수할 수 있었는데, 이때는 권한이 한층 업그레이드되어 소음의 강도까지 조절할 수 있었다.


연구진은 후반전이 시작된 후 의도적으로 실험실 온도를 조절했다. 13도부터 35도까지 온도를 랜덤으로 조절했을 때, 참여자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몇 도에서 참여자는 가장 공격성을 보였을까? 역시나 가장 높은 온도인 35도일 때 소음의 강도를 가장 세게 높인 것으로 나타났다. 더위는 필요 이상으로 분노를 유발하고 공격성을 증가시킨다.


이 실험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부분은 전반전의 존재다. 전반전의 패자는 이미 불쾌해질 대로 불쾌해진 상태였다. 공격의 기회가 주어지니 분노가 행동으로 표출되었고, 온도는 이미 생긴 공격성에 기름을 부었다. 만약 전반전이 없었다면 덥다는 이유만으로 공격 행동이 강해졌을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화가 나 있었기 때문에 온도는 자기의 역할을 다했다. 정리하자면, 일단 기분이 상한 상태에서 높은 온도는 공격성을 더욱 키운다. 다시 말해, 필요 이상으로 화나게 만든다.


분노 상황과 실제로 느낀 분노 사이에 갭이 크다면, 그 갭을 만들어내는 요인을 인지해야 한다. 더운 날씨, 높은 습도, 피로나 나쁜 컨디션 등 나쁜 감정을 고조시키는 다른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필요 이상의 분노는 가라앉는다.


다음 단계는 ‘분노 행동 파악’이다. 감정은 행동을 이끈다. 좋은 감정은 유지하기 위해, 나쁜 감정은 없애기 위해 행동이 동기화된다. 분노에 불을 끄기 위해 사람들은 세 가지 중 하나의 행동을 한다. 상대를 공격하거나, 자기를 비난하거나, 무조건 참거나. 어떤 행동이든 그것이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감정 조절의 실패자가 된다. 그러니 행동이 분노의 기능을 잘 활용하는지 살펴야 한다.


분노의 기능은 이익을 침해받거나, 손해를 강요받거나, 통제권을 잃을 때 자신을 지키는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다음의 질문에 답을 해보자.


이 행동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건 무엇인가?

이 행동으로 어떤 손해를 지켜낼 수 있는가?

이 행동은 지금의 상황을 바꿀 수 있는가?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답을 내놓지 못한다면, 그건 분노가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분노에 삼켜지는 행동이다. 올바르지 않은 행동을 파악했다면 마지막으로 분노를 통제하여 ‘효능감’을 느껴야 한다. 마음이 이끄는 대로 행동한 뒤 후회한 순간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그렇게까지 화를 낼 필요가 있었나? 돌이켜보면, 자신이 후진 사람처럼 느껴져 민망해진다. 이런 경험은 자존감을 낮추고 관계에도 흠집을 남긴다.


어떤 사람은 화를 내는 것 자체를 목적으로 삼는다. 지금 화가 나 있다는 사실을 타인이 알게 하는 것, 그렇게 타인을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 분노 행동의 목표가 된다. 따라서 무례한 표정과 말투, 거친 행동으로 자신의 상태를 드러낸다. 사과도 받아주지 않고, 상황이 해결되어도 씩씩거리며 상태를 유지한다. 이겨도 이긴 것 같은 느낌이 들지 않는다. 아무것도 얻을 수 없고, 어느 것도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결국 감정에 지는 것이다.


반면에 문제를 건강하게 해소하면 효능감이 생긴다. 내가 잘 조절했구나, 분노라는 감정의 주인은 나로구나. 앞으로 화가 날 때도 마음을 잘 다스릴 수 있겠구나. 이런 경험이 쌓일 때 이 사람은 건강한 분노로 자신을 지키고 나아가 세상을 바꾸는 사람으로 성장하게 된다.


해운대 시장에서 나는 분노에 사로잡힐 뻔했다. 못해도 나보다 이십 년은 더 사셨을 어른에게 시건방진 말투로 대하고, 이 상황이 고객인 나를 감히 얼마나 화나게 했는지 알려줄 뻔했다. 그에 대한 응징으로 됐으니까 환불이나 해달라며 상황을 뒤엎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내가 얻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지킬 것도 없었고 바뀌는 것도 없었다. 그는 충분히 사과했고, 잘못에는 의도가 없었고, 고작 몇 분 기다렸을 뿐이다. 그 몇 분에 비해 지나친 짜증이었다. 더웠으니까.


결국 몇 분을 더 기다려 닭꼬치 봉투를 들고 덜레덜레 돌아온 숙소에서, 찝찝한 몸과 마음을 씻어냈다. 한결 개운해진 기분으로 에어컨 아래 앉아 힘겹게 얻은 닭꼬치를 한입 물었다. 입가에 미소가 가득 번졌다. 먹어본 닭꼬치 중 손가락 안에 꼽히는 맛이었다. 나는 결국 원하는 모든 것을 얻었다. 에어컨과 닭꼬치. 분노에 휩싸였다면 느낄 수 없던 행복이었다.


‘쇄락’이라는 단어가 있다. 뿌릴 쇄晒 혹은 (햇볕에) 쬘 쇄洒에 떨어질 락落으로, 뜨거운 여름날 마당에 뿌린 물로 열기를 시키는 것처럼, 몸과 마음이 상쾌한 상태가 된다는 뜻이다. 더운 날이 다가오면, 펄펄 끓는 아스팔트처럼 마음이 끓는다. 그때, 미련한 사람은 불을 더 지피고,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끼얹는다. 누구의 마당에 머물고 싶은지, 고민할 필요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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