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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날, 분노를 다스리는 방법

[6월의 심리학: 분노의 주인은 누구인가]

by 마음공방

출간된 『이달의 심리학』은 매달 누구나 느낄 수 있는 고민을 심리학으로 답한 심리 에세이 입니다. 매달 세 가지 질문에 답을 내리고, 그 달의 단어, 그 달의 할 일과 함께, 마키토이 작가님의 멋진 일러스트가 수록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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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6월에 수록된 이야기,

분노 조절에 대한 글을 맛보기로 공유합니다.

도움이 되셨다면, 많이 구입해주시고 선물해주시고,

도서관에 신청해주시고 애정과 관심 부탁 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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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꼬치 얼마예요?” “사천만 원!” “하. 하. 입금했어요.” “얼마?” “사천 원이요.” “에헤이~ 사천만 원이라니까.” 사장님의 시덥지 않은 농담이 말꼬리를 잡았다. 더위에 좁아터진 시장골목의 열기까지 더해져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기다림의 시간은 점점 늘어나고, 모여 있던 손님들은 하나둘씩 봉투를 들고 떠났다. 하지만 내 사천만 원짜리 닭꼬치는 감감무소식이었다. 사장님이 날 보더니 물었다. “뭐 드릴까?”

수면 위로 해무가 자욱한 부산은 진심으로 아름다웠다. 아주 잠시 동안만. 꿉꿉한 공기가 온몸을 감쌌고, 찜통 같은 공기에 불쾌지수가 치솟았다. 맛있는 거 사서 빨리 숙소로 들어가자, 이 희망으로 버텼는데 주문이 누락되었다니. 화가 치밀어올랐다.

높은 온도와 습도는 나쁜 감정의 트리거다. 짜증, 적대감이 드세지고 공격적 행동도 증가한다. 본격적인 여름은 7월부터라지만, 나에게 가장 최악의 더위는 지금부터다. 빵빵한 에어컨 덕분에 추울 지경인 7월과 달리 실내도 실외도 더우니까. 여름인데 여름이라 부르지 못하는, 6월이야말로 힘든 여름이다. 그런 6월이라서 고작 닭꼬치 때문에 내 안에 악한 존재가 깨어났다.


감정은 감정마다 나름의 기능이 있다. 어떤 감정이든 나타나면 우리는 그 감정을 유지하거나 해소하기 위해 행동하는데, 그 행동이 우리를 이롭게 하기 때문이다. 특히 화나는 감정은 우리를 지킬 때도 있다. 허준호 배우의 유명한 일화가 있다. 그는 2009년 뮤지컬 홍보차 일본에 방문했다. 이때 한 일본인 기자가 행사의 취지와 관련 없는 무례한 질문을 던졌다. 독도는 누구 땅이냐. 이 질문을 받은 허준호 배우는 자리에서 내려왔다. 그리고 기자의 볼펜을 빼앗았다. 기분이 어떠세요? 허준호의 역질문에 기자는 사과했다. 그가 보여준 분노로 우리 국민은 위로를 받았다.

분노는 나의 것을 빼앗기거나, 손해를 강요받을 때, 통제 불가능한 상황에서 나타난다. 선하지 않은 세상에서 어떤 사람들은 분노를 참다가 손해를 본다. 제대로 말하지 않으면 내 것을 지킬 수 없게 된다. 가장 앞장 서서 세상을 바꾸는 자가 누구인지 살펴보자. 분노하는 자들이다. 때로는 분노가 불공평한 세상을 살만한 곳으로 바꾼다.

분노가 문제가 되는 이유는 분노가 적절하게 기능하지 않고 마음을 지배하기 때문이다. 도구가 아닌 결과가 될 때 분노는 쓸모없는 감정이 된다. 필요 이상으로 화를 내거나 짜증을 부리는 것처럼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방식으로 드러나면 감정에 잡아먹혀 자신을 망가뜨리고 관계를 무너뜨린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분노를 다스려야 할까.



분노 정도 인식

참거나 표출하지 않고 쓸모 있게 분노하려면 몇 가지 질문을 던져야 한다. 첫 번째 질문은 이렇다. 화가 날 만한 상황인가? 감정은 상황을 왜곡한다. 한걸음 떨어져야 바르게 보이는 법이다. 그러나 대부분은 화가 날 만한 상황이니 화를 낸다. 기다려도 나오지 않는 닭꼬치는 분노 유발의 자격이 있다.

그럼 다음 질문으로 넘어간다. ‘이만큼’ 화가 날 만한 상황인가? 분노 점수를 0에서 10점까지 범위로 정하자.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이를테면 아이를 잔인하게 학대한 양부모의 범죄사실을 알거나, 끔찍한 연쇄 살인범에 대한 분노를 10점이라 한다면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은 몇 점 정도인지 따져본다. 그리고 나는 몇 점 정도로 화를 내고 있는지 비교해본다.

감정을 객관화해야 한다. 상황에 대한 객관적 분노와 내가 반응하는 주관적 분노 사이에 차이가 크면, 별일 아닌 상황에 긁힌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적절한 분노는 건강히 기능하지만, 필요 이상의 분노는 이성을 마비시킨다. 이때 세 번째 질문을 던진다. 이렇게 화가 나는 다른 이유가 있나?


심리학자 앤더슨과 앤더슨은 게임을 가지고 흥미로운 실험을 진행했다. 먼저 전반전 게임이 끝난 후, 승자가 패자에게 소음 벌칙으로 짜증을 유발했다. 그리고 후반전에서 두 사람의 역할을 바꾸었다. 패자였던 참가자는 승자가 되어 똑같이 복수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이때 권한이 한층 업그레이드되어 소음의 강도까지 조절할 수 있었다. 연구진은 후반전이 시작되자 실험실 온도를 조절했다. 그러자 예상대로 더울수록 소음의 강도가 더 세졌다. 더위는 필요 이상에 분노를 유발해 공격성까지 일으킨다.21 실험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점은 전반전이다. 전반전의 패자는 이미 불쾌할 대로 불쾌해진 상태였다.


화가 날 만한 상황이었, 화를 낼 권리를 얻었다만약 화가 나지 않는 상태에서 공격권을 주었다면 더위 때문에 더 강하게 공격했을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화가 난 상태에서 온도는 자기 역할을 분명히 한다.

분노 원인과 실제 감정 사이에 차이가 크다면, 그 차이를 만든 요인을 인지해야 한다. 더운 날씨나 높은 습도, 피로나 나쁜 컨디션은 나쁜 감정을 고조시킨다. 그 사실을 깨닫기만 해도 필요 이상의 분노는 가라앉는다.


분노 행동 파악

나쁜 감정은 문제가 없지만 나쁜 행동은 문제가 된다. 질문으로 분노를 정확히 인식했다면, 다음은 어떤 행동으로 대응하는지를 봐야 한다. 분노가 존재하는 이유는 문제 해결에 있다. 이익을 침해받거나, 손해를 강요당하거나, 통제권을 잃을 때 자신의 권리를 지켜야만 분노가 역할을 다한다. 만약 분노 행동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그 행동은 틀린 행동이다. 분노에 불을 끄기 위해 우리는 세 가지 방식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참거나, 상대를 공격하거나, 자기를 비난하거나. 이 행동이 다음 세 가지 답을 주는지 보자. 그렇지 않다면, 분노가 기능하는 대신 분노에 삼켜진 것이다.


이 행동으로 무언가 얻을 수 있다.

이 행동으로 손해를 피할 수 있다.

이 행동이 상황을 바꿀 수 있다.


분노 조절

어떤 사람은 화를 내기 위해 화를 낸다. 지금 화가 얼마나 났는지를 타인에게 알리고 싶고, 모두가 불편해지길 원한다. 부러 무례한 표정을 하고, 쌀쌀맞은 말투를 쓴다. 사과를 해도 받지 않고, 상황이 해결되어도 씩씩거린다. 화를 내는 목적이 화내기 그 자체가 되면 이겨도 이긴 느낌이 들지 않는다. 얻는것도, 지키는 것도 없는 행동이다.


반면에 문제를 건강하게 해소하면 효능감이 생긴다. 소리를 지르기 전 깊게 심호흡을 하고 이성적으로 생각하거나, 상대에게 양해를 구하고 잠시 자리를 비운 뒤 화가 난 부분에 대해 솔직히 말하거나, 때로는 중요하지 않은 문제에서 빠르게 눈을 돌려 다른 상황에 몰두할 수도 있다. 성숙한 태도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때, 분노의 주인이 나라는 확신이 든다. 앞으로 화가 나도 잘 조절하겠다는 자신에 대한 믿음, 효능감이 생긴다. 이 패턴이 익숙해질 때 우리는 능숙하게 분노를 조절할 수 있다.


갑오징어는 평소 표면이 매끄러운 갈색이었다가, 화가 나면 얼룩무늬로 바뀐다. 암컷 갑오징어는 화가 많은 오징어를 싫어하기 때문에 수컷 갑오징어는 구애할 때만큼은 최대한 침착한 상태를 유지한다. 하지만 이런 상태는 만만해 보여서 경쟁자를 끌어들이고 결국 공격 모드에 들어가 암컷을 실망시킨다. 그런데 바로 이때! 암컷이 화가 난 수컷 오징어에게 돌아설 때 놀라운 장면이 펼쳐진다. 갑오징어가 아수라 백작처럼 반으로 나뉘기 시작하는 것이다. 정확히 반으로 갈려서 암컷에게 보이는 쪽은 갈색, 경쟁자가 보고 있는 반대쪽은 얼룩무늬가 된다. 그래서 암컷은 온화한 수컷을, 경쟁자는 분노하는 수컷을 보게 된다. 이게 바로 분노 조절이구나, 표면이 반으로 나뉜 오징어를 보고 깨달았다. 나를 지키면서도 소중함을 잃지 않는 균형. 우리에게는 오징어만도 못한 순간이 얼마나 많은가.


해운대 시장에서 나는 화가 났다. 화가 날 만한 상황이었다. 아, 됐으니까 그냥 환불해줘요, 소리치고 싶었다. 하지만 사장님은 진심으로 사과를 건넸다. 누구나 실수는 하는 법. 그냥 몇 분만 기다리면 해결되는 일이었다. 돈을 잃는 것도 아니고 닭꼬치를 잃는 것도 아니고 별일 아니었다. 숙소로 돌아왔다. 샤워를 개운히 마치고 에어컨 아래 앉아 닭꼬치를 한입 물었다.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먹어본 닭꼬치 중 손에 꼽히는 맛이었다. 나는 결국 원하는 모두를 얻었다. 에어컨 그리고 닭꼬치. 분노가 나를 삼켰다면 느끼지 못할 행복이었다.


‘쇄락’이라는 단어가 있다. 뿌릴 쇄晒 혹은 (햇볕에) 쬘 쇄洒에 떨어질 락落으로, 뜨거운 여름날 마당에 뿌린 물로 열기를 식히듯, 몸과 마음이 상쾌한 상태가 된다는 뜻이다. 더운 날이 다가오면, 펄펄 끓는 아스팔트처럼 마음이 끓는다. 그때 미련한 사람은 불을 더 지피고,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끼얹는다. 누구의 마당에 머물고 싶은지, 고민할 필요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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