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마음공방 Jun 18. 2022

잘 보이고 싶을 땐, 실수를 하세요

실수 효과


운동을 한답시고 홈트레이닝을 검색하던 중이었다. 알 수 없는 알고리즘에 의해 한 유튜버를 알게 되었다. 그녀가 보여주는 몸짓은 운동이라기보다 흐느적거리는 춤에 불과했다. 저렇게 움직여서 과연 살이 빠질까, 의구심이 들었다.      


그녀의 몸짓은 보기에 심히 좋지 않았다. 패션쇼라도 연 듯 외모에만 신경을 쓰고 있었다. 눈빛과 표정은 누구 하나 잡아먹을 듯 유혹적이었다. 구독자 수는 어마어마했지만 그중 순수한 의도로 영상을 보는 이가 몇이나 있을까, 의심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나는 그녀를 TV를 통해 다시 만날 수 있었다. 방송의 광고에까지 진출한 것이었다. 모니터 속 그녀는 여전히 끈적한 눈빛으로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신랑과 함께 TV를 보던 나는 저 여자 좀 이상하다는 볼멘소리를 하며 채널을 돌렸다. 그렇게 나의 운동계획은 흐지부지되었다.     


몇 해 지나, 내 몸의 지방은 더욱더 지경을 넓혔다. 더는 이렇게 살 수 없었다. 다시 홈트레이닝 영상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한 유튜버를 알게 되었다. 그녀는 상당히 감정적인 글 하나를 올렸는데, 그 글이 나의 마음은 감동했다.     


꽤 오랜 기간 동안 영상 하나를 준비한 그녀는 실수로 그 영상을 날려버렸다. 그 사건 이후 그녀는 자신의 무능이 좌절하며 극도의 우울 증상을 보였다. 화면 속에서는 밝은 모습을 보이고 뒤에서는 절망하는 이중성이 그녀를 힘들게 만들었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의 속내를 고백하기로 용기 낸 것이다. 그녀의 진솔함이 내 마음에 와닿았고, 이런 사람이라면 믿고 따라도 될 거란 확신이 들었다.     


그날부터 나는 매일 그녀의 영상을 보고 땀을 뺐다. 최근 영상을 여러 번 보니 지루하기 시작해 과거에 올린 영상도 하나하나 따라 했다. 그러다 나는 적잖이 당황했다. 내가 믿고 따르던 그녀가 바로 그 ‘흐느적녀’였던 것이다. 나는 왜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을까? 심지어 어떻게 좋아하게 된 것일까?    

 



미국의 심리학자 에론슨은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유쾌한 실험을 진행했다. 먼저 퀴즈왕을 뽑으려는 데 도움을 달라며 퀴즈쇼 장면을 녹음한 음성파일을 들려주었다. 음성 속에는 네 명의 참가자가 등장했다. 첫 번째 참가자는 문제를 대부분 맞췄고, 두 번째 참가자는 반도 맞추지 못했다. 세 번째와 네 번째 참가자는 앞의 두 사람과 같은 정답률을 보였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퀴즈 도중에 옷에 커피를 쏟는 돌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에론슨은 학생들에게 물었다. 네 사람 중 가장 호감이 가는 사람은 누구인가요? 학생들은 입을 모아 세 번째 참가자를 지목했다. 왜? 첫 번째가 아니고? 객관적으로 따져보자. 못 하는 사람보다 잘하는 사람이 매력 있다. 당연히 문제를 많이 맞춘 사람이 더 근사할 것이다. 하지만 이왕이면 커피나 쏟는 멍청이보다 완벽한 사람이 더 훌륭해 보이지 않을까?     


흐트러지지 않는 모습을 보이는 사람과 실수를 해 당황하는 사람 중 누가 더 부족해 보일까? 당연히 후자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완벽한 사람보다 부족한 사람에게 호감을 느낀다.     


인간은 빈틈없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다. 나 자신은 빈틈이 있기 때문이다. 빈틈없는 사람 곁에 있다 보면 나의 빈틈이 드러나게 마련이다. 인간은 자신과 닮은 사람에게 호감을 느낀다. 그리고 자신의 부족함을 누구보다 잘 안다. 그러므로 나처럼 부족한 사람이 좋다. 지나치게 탁월한 사람은 불편하다.     


완전무결한 사람은 부러울지언정 솔직히 말하면 재수 없다. 다가가기 어렵다. 하지만 완벽한 사람에게 허점이 보일 때 닫혀있던 마음 문이 열린다. 너도 별반 다를 게 없는 인간이구나, 하는 생각은 상대방의 인간미를 느끼게 한다. 동질감이 생기면 그를 받아들이기가 쉬워진다.    

 

행복한 사람에게 나의 불행을 고백하기 어려운 이유도 마찬가지다. 부족함을 드러내는 것을 즐기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대에게 사연이 있다는 사실을 알 때, 그의 결여와 나의 결여는 균형을 이룬다. 그래서 숨겨왔던 아픔을 서슴없이 공개하게 된다. 그래서 사람은 실수하는 사람을 좋아한다. 실수는 그 사람의 부족함을 증명하여, 우리를 하나 되게 한다.     


작품 속에서 완벽해 보이던 연기자가 사생활을 공개하며 허당끼를 보일 때 우리는 매력을 느낀다. 이슬만 먹을 것 같던 연예인이 나처럼 곱창을 먹고, 배가 아프다고 화장실을 가는 모습에 우리는 슬며시 미소를 짓는다. 말을 잘하는 줄 알았는데 더듬거리며 수상소감을 말할 때, 감격의 눈물을 흘리느라 못생긴 표정을 지을 때 우리는 환호한다. 연예인들의 실수 장면은 캡처되어 인터넷을 떠돌고, 우리는 유쾌해진다. 이때 느끼는 유쾌함은 비하의 감정이 아니다. 되려 인간미를 느끼고 사랑에 빠지는 것에 가깝다.     





2013년 나는 한 남자를 만났다. 이성적인 감정을 느끼는 사이는 아니었다. 하루는 그와 저녁 식사를 하게 되었다. 우리는 칼국수를 먹었다. 그는 자신이 계산할 테니 나가서 기다리라 했다. 가게 밖에서 나는 그를 기다렸다. 하염없이 기다렸다. 하지만 그는 나오지 않았다. 궁금한 마음에 가게로 들어간 나는 귀까지 벌게진 그를 볼 수 있었다. 택시에 지갑을 놓고 내렸던 모양이다. 그의 당황한 모습이 귀엽게 느껴졌고 없던 관심이 생겼다.      


결국 그날 계산은 내가 했고, 그 사건을 빌미로 그는 나와 다시 약속을 잡았다. 그가 한 번, 내가 한 번, 번갈아 가며 서로의 호의를 갚던 우리는 연인 사이로 발전했다. 그리고 지금 그는 안방에서 야구를 켜놓은 채 자고 있다.     


연애를 시작하고 그는 고백했다. 그날의 기억은 참으로 끔찍하다고. 멋지게 계산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었는데 꼴사나운 모습을 보였다고. 지갑이 없어 허둥대는 모습을 기억에서 지우고 싶다고. 하지만 나는 생각한다. 그날 그가 멋지게 계산을 했다면, 그다음은 없었을 거라고.     




우리는 완벽한 사람이 되길 바란다. 이상적인 모습으로 남들 앞에 서기를, 부족한 모습이 드러나지 않기를, 치부가 들통나지 않기를. 그 이유는 간단하다. 좋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가 완벽한 사람을 좋아하지 않듯 타인도 나의 완벽한 모습을 좋아하지 않는다. 인정받으려는 노력은 아이러니하게도 거부반응을 이끈다.     


사람들은 실수하는 사람을 사랑한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실수 효과라고 한다. 실수는 사람을 부족하게 만들고, 부족함은 그 사람을 매력적으로 만든다. 그러니 실수해도 괜찮다. 아니, 실수하는 것이 이득이다.      

선망의 대상이 되고 싶은가? 그러기에 우리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이다. 보통의 사람이 동경 받는 일은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아무리 노력해도 그 기회가 찾아오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사랑의 대상이 될 기회는 많다. 우리가 부족함을 드러낼 때, 그들은 우리를 자신의 삶에 스며들도록 허용할 것이다. 그렇게 사랑은, 우정은, 관계는 시작된다.          



신간 [내 마음 공부하는 법]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22523352

작가의 이전글 성공한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공통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