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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공방 Jun 10. 2022

성공한 수밖에 없는 사람들의 공통점

아이유, 이지은이 잘 될 수밖에 없는 이유

 


남이 해준 밥은 다 맛있다. 배달 음식도 아닌 식당 밥은 더더욱. 차려주고 가져다주고 치워주기까지 하니 오랜만에 받는 대접이 황홀하다. 하지만 늘 그런 것은 아니다. 얼마 전 나는 한 식당에 들렀다 눈칫밥을 먹고 돌아왔다.     


강아지를 새 가족으로 맞이하면서 외식이 줄었다. 그러다 보니 애견동반 식당을 발견하면 부리나케 달려간다. 그날도 그런 날이었다. 일본식 요리를 파는 애견동반 식당이었다. 고즈넉한 인테리어부터 멋스러운 플레이팅까지 이미 핫플레이스가 된 지 오래인 곳. 가격대가 제법 있었으나 오랜만에 기분도 낼 겸 한걸음에 찾아갔다.     


식당에는 테이블이 많지 않았다. 점심시간이 미처 되기도 전이었는데 이미 요리를 기다리고 있는 손님이 차지한 테이블, 그리고 정돈되지 않은 채 떠나간 손님의 흔적을 남긴 테이블뿐이었다. 정돈되지 않은 테이블에 앉으려 하자 주인이 우리를 저지했다. 자리를 치울 때까지 기다리라는 말이었다.    

 

주인은 자신이 만들던 요리가 마무리될 때까지 우리를 가만히 서 있게 두었다. 작은 공간의 중앙에 우뚝 서 있는 우리는 장면에 어울리지 않았다. 앉아있던 손님과 서서 기다리던 우리 모두 어색한 눈빛을 애써 엇갈려가며 그 시간을 버텨냈다. 십 분이 넘게 서 있던 우리는 모든 요리가 마무리되고 나서야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음식을 주문하는 과정에서 주인은 이유 모를 한숨을 여러 번 내뱉었다. 우리는 뭐라도 잘못한 진상 손님이 된 양 눈치를 봤다. 메뉴에 대해 물었다 짜증 섞인 답변이 돌아와 더 묻지도 못하고 주문을 했다. 우동과 카레를 주문했다. 가격은 듣던 대로 비쌌다. 이 가격에 받을 대우인가 아리송했다. 나가는 순간까지 주인의 표정은 일그러져있었고 말투는 끝까지 서늘했다.     


오랜만의 외식이었고 비싼 돈을 치른 상황이었다. 기분이 상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고작 카레와 우동에 이 돈을 내고 이런 대우를 받는다고? 인지부조화가 왔다. 애써 이 상황을 외면하며 음식의 장점을 찾아내고 가게의 세련됨을 탐색했다. 그렇게 식사는 끝나갔다.     


그날 밤 나는 가게의 SNS를 들어가 봤다. 매일 친절해 보이던 SNS 속 모습과 내가 만난 실제 모습은 너무나도 달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날 주인이 올린 글 하나를 발견했다. “오늘 지친 제 모습에 기분 상한 분이 없길 바랍니다. 손님이 많아서 너무 힘들었어요.” 그 글을 본 순간이었다. 꾹 누르고 있던 감정의 스위치가 켜졌다. 짜증의 원인이 손님의 방문이라니, 다시는 그곳에 갈 이유가 없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존재한다. 자신을 탓하는 사람과 남을 탓하는 사람. 행동의 원인을 따지는 마음을 귀인이라 부를 때, 전자를 내부 귀인, 후자를 외부 귀인이라 한다. 내부 귀인, 그러니까 자신을 탓하는 사람은 행동의 원인을 스스로에게서 찾는다. 그러면 변화의 필요성이 생긴다. 나 때문이라면, 내 노력으로 바꿀 수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문제의 원인을 외부에서 찾는 사람은 늘 억울하다. 상황이 이래서, 저 사람이 저래서, 어쩌고저쩌고, 어쩔 수 없었어요. 저는 억울합니다! 변명이 마음이 가득 찬다. 그들은 자신이 최선을 다했다고 믿는다. 그럼에도 그럴 만한 사정이 있다고 여긴다. 그러므로 나아지지 못한다. 그들이 기대하는 삶은 아무런 변수도 존재하지 않는 완벽한 세상이다. 그러기만 한다면 자기는 잘 해낼 것이라고 믿는다. 하지만 그런 환경은 없기에 늘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세상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상황은 자주 꼬이고, 기대는 어긋난다. 원치 않는 일은 으레 벌어진다. 결국 상황을 탓하는 사람은 ‘언제나’ 상황을 탓하는 사람이 된다. 그들의 태도는 변하지 않기 때문에 불편함은 벗어날 수 없는 디폴트 값으로 고정된다. 변명을 일삼는 이는 불편한 존재가 되고 다가가기 어려운 대상이 된다. 반가운 존재가 되지 못하는 것이다.     


무엇보다 그들에게 다가가고 싶지 않아지는 이유는, 그에게는 나 또한 ‘외부’이기 때문이다. 언제든 나는 그들이 탓하려는 목표물이 될 수 있다. 식당 주인에게 손님이 된 내가 짜증의 원인이 된 것처럼 말이다.


      



닮고 싶은 사람이 있다. 늘 보고 감탄하는 사람, 바로 가수 아이유다. 어린 나이에 댄스 가수로 데뷔하여 각종 예능에서 활발한 캐릭터로 소비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만의 음악을 하기 시작하는 아티스트로 성장하기 시작한다. 독보적인 음색과 음악적 색깔로 자신만의 매력을 뽐낸다.      


그녀의 행보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이지은이라는 이름으로 연기를 시작하고, 베테랑 연기자 선배와 시청자에게도 인정을 받는 연기자로 또 한걸음 성장한다. 그녀가 끝없는 성장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건 자신을 돌아보는 능력 때문 아닐까?     


얼마 전 영화 <브로커>로 칸에 방문한 그녀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레드카펫을 밟아 우리의 자랑거리가 되었다. 그리고 다른 장면으로도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바로 영화제에서 보여준 귀여운 모습이었다. 영화제가 시작되고 갑작스럽게 다가온 카메라에 그녀는 다소 어색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소심하게 손으로 하트를 만들어보았다. 하지만 그 앙증맞은 손에는 수줍음이 가득 묻어있었다. 민망하다는 듯 눈빛이 흔들렸고, 그 어색한 모습은 고스란히 전파를 탔다. 그 장면을 본 대중은 그마저 사랑스럽게 느꼈다.  

   




하지만 그녀는 아니었다. 한 인터뷰 장면에서 그때 그 순간을 가장 별로였던 상황으로 지목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뭐든 하려면 자신 있게 해야지, 그렇게 하는 것은 안 하니만 못하다, 다음에 다시 하면 자신 있게 해야지, 다 적어놓았다. 죽기 전에 한 번만 더 해보고 싶다.”     


그녀의 반응은 나에게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나라면 어땠을까? 아마도 카메라를 그렇게 들이대면 누구라도 그러했을 거라고 합리화했을 것이다. 너무 창피한 나머지 기억에서 모든 장면을 지우려고 노력했을 것이다. 다시는 그런 곳에 갈 수 없을 것 같다며 부끄러움에 자존감을 바닥 아래로 내려놓았을 수도.     

하지만 그녀는 달랐다. 자신의 부족함을 직면하고, 당당히 ‘별로’였다고 고백했다. 그리고 이에 멈추지 않고 다음에는 더 잘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심지어 이 다짐을 잊지 않겠다며 적어놓기까지 했다. 다시 기회가 오길, 실수를 만회할 수 있길 기대하는 도전 의식까지 보였다. 이번에는 못 했지만, 다음에는 더 잘할 수 있을 거라는 걸 그녀는 알고 있던 것이다. 왜? 원인을 자신의 미숙함에서 찾았으니까.     


남들이 보기에는 귀여운 실수, 아니 실수라고 말하기에도 애매한 사랑스러운 모습마저 성장의 기회로 삼는 그녀, 지금 이 자리까지 올라서지 못하는 것이 더 어려울 테다. 내가, 아니 우리가 그녀를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오늘 나는 또 한 번의 다짐을 한다. 언젠가 나의 공간을 마련할 때, 들이닥치는 손님에 지칠 때,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지를. “기분 나쁘지 않기를 바랍니다. 너무 바빴어요.”라고 말하는 사람이 될지, “지친 모습은 별로였어요. 더 나은 제가 되겠습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될지.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품어야 할 마음은, 이해받기를 바라는 욕심보다, 성숙할 나를 믿고 기대하는 마음 아닐까?          




심리학 에세이 [내 마음 공부하는 법]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https://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22523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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