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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희주 Sep 05. 2023

얼룩이 무늬가 되기 위하여

힉생-학교-학부모 사이에 있어야 할 것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학부모 총회에서 담임교사는 그림책 하나를 읽어 주셨다.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의 <문제가 생겼어요>라는 책이었다. 이 책에서 주인공은 엄마가 좋아하는 식탁보 다리미 자국을 남기게 된다. 그 식탁보는 할머니가 놓은 자수가 있는 엄마가 아끼는 물건이었다. 주인공은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고민한다. 핑계를 대볼까도 생각해 보지결국 엄마에게 솔직하게 잘못을 고백한다. 엄마는 아이가 만든 다리미 자국으로 예쁜 물고기 모양을 만들어 준다. 아이의 실수가 새로운 무늬로 재창조된 것이다.


담임교사는 학교와 가정이 ‘학생’를 위해 협력하는 관계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얼룩을 멋진 물고기로 변신시킨 엄마처럼 교사와 부모가 학생을 위해 문제를 같이 고민하는 관계이고 싶다고 하셨다. 처음에는 '옳은 말씀이구나'하고 머리로만 이해한 채 지나가 버렸다. 우리 가정에 그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 말이다.  



다리미 자국이 생겼어요. 아무리 힘쎈 사람이라도, 아무리 좋은 세제도 이 얼룩을 지울 수 없어요.




문제가 생겼다.


아이는 그날따라 유난히 짜증이 심했다. 억지를 부리기도 하며 이상하게 행동했다. 아이는 방으로 나를 불러서는 낮에 학교 근처 놀이터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어수선하게 말하기 시작했다. 다른 반 동급생이 자신에게 달려와 각목을 휘둘렀다는 것이다.


학교밖 사건이라 학교에 알려야 할지 고민하던 중에 다른 경로로 이 사실을 알게 된 담임선생님이 먼저 연락을 주셨다. 학교밖 문제도 학교폭력사례에 해당된다고 하셨다. 담임 선생님은 아이의 부상당한 부위를 확인했으며 함께 있던 친구들의 진술서도 받아두었다고 했다. 선생님은 속상해하시면서도 침착하게 증빙 자료들을 만들어 두었다.


선생님은 내게 학교폭력심의를 원하는지 확인했다. 나는 즉답하지 못했다. 평소 학폭위(학교폭력심의위원회)가 교육적인 해결기능하지 못한다고 생각해 왔다. 그런데 내 아이가 다쳤다. 무엇이 아이에게 최선일까? 다시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내 아이가 궁극적으로 안전해지길 원했다. '학폭위'의 결과가 아이의 안전을 담보해 줄 수 있을지 장담할 수가 없었다. 그 학생이 최고 징계인 '강제전학'을 간다고 해도 같은 동네에 살고 있다면 언젠가 다시 만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궁극적으로 내 아이가 안전하기 위해서는 그 학생 안전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학생 정서적으로 안전해져야 공격적인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고, 비로소 내 아이도 안전해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교한 아이와 학폭위에 대한 의견을 물어보았다. 아이는 학폭을 열기를 원했다. 지금은 사과받고 싶은 마음도 없으며 오직 그 학생이 마땅한 벌을 받기를 원한다고 했다. 아직 상처의 아픔과 공포가 생생한 아이에게 이해를 강요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그 와중에 몇 개의 사건들이 연속해서 일어났다.



문제는 또 다른 문제를 불러들였다.

           

가해 학생에 대한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개인신변, 가정사까지 이야기가 나돌았다. 그 학생은 저학년 때부터 크고 작은 문제를 일으키며 요주의 인물로 낙인이 찍혔고, 학부모는 담임교사의 전화를 피해 다니는 상황지 간 것 같았다.


나는 미술치료를 하면서 감정조절이 어려운 아이들을 만난다. 그중 공격성이 높은 경우도 있었다. 내가 치료실에서 만나는 아이들이 일상에서 겪는 어려움이라고 생각하니 그저 내 아이를 때린 나쁜 아이로만 보기는 어려웠다. 또한 전화를 피하는 그 부모가 그저 나쁜 부모로만 보기도 어려웠다. 상대편 아이와 보호자의 입장을 듣고 싶었다.  

 

그 사이 에 대 수군거림도 시작되었다. 학교에서도, 학원에서도, 아이들 단톡방에서도 일어났다. "아무개가 맞았대! 학폭을 열지도 모른대! 그거 사실이야?" 하면서 사실을 확인하려고 들었다. 2차 가해였다. 피해 사실도 문제지만 2차 가해는 그 피해를 더 가중시킨다. 사건을 흥밋거리로 소비하려고 하는 사람들의 관심은 독이 된다. 피해자의 수치심을 더욱 증폭시킨다.

 

아이가 감수해야 할 일들이 점점 커져가고 있었다. 상대 부모가 담임교사와 통화도 안 되는 그 상황에서 학폭위가 아닌 다른 화해의 길을 찾는 것은 어려워 보였다. 학교장 면담을 요청했다. 아이가 2차 가해를 입고 있는 상황에서 학교단위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담임선생님께서 온 마음을 다해 애써주고 있다는 것을 알지만, 학교장의 역할도 필요한 상황이라고 생각했다.



해결방법은 오직 그것뿐이 아니다.


면담에는 교장, 교감, 담임 그리고 나와 당사자인 아이가 함께 참석했다. 교장 선생님은 먼저 아이에게 괜찮은지 물으며 마음을 살펴주셨다. 나는 직접적 피해사실 외에도 3자에 의한 2차 가해가 일어나고 있음을 알렸다. 당시는 '2차 가해'라는 단어가 낯선 용어였음에도 불구하고 학교장은 최대한 신중하게 대처하겠다고 약속하셨다. 단순히 가해자-피해자 간의 문제로만 보지 않고 주변인들도 함께 신경 써야 하는 일로 이해해 주셨다. 동석하신 교감선생님과 담임선생님은 아이에게 위로와 격려를 보내주셨다. 학교장과의 면담 자리에 참여한 우리는 공감과 지지를 통해 이 문제를 다른 국면으로 만들어 갔다.


면담 당일, 공교롭게도 그날 아침에 학교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 학생이 전화 한 통 남기고 전학을 갔다고 했다. 사과 한마디 없이 가버린 것이다. 이제 서로의 사정을 듣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회는 끝나 버렸다. 다투는 것도, 대화를 시도하는 것도 무리한 일이 되어 버렸다. 그렇게 이 일은 미해결 된 채 결론을 지었다.


그일 이후 아이은 얼마간은 덩치가 큰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나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을 만나면 위축된 모습들을 보였다. 한동안은 부모와 외출을 함께 했고 학교에서도 담임선생님께서 각별히 신경 써 주셨다. 시간이 걸리기는 했지만 아이는 주변 어른들과 친구들의 관심과 돌봄으로 점차 회복되어 갔다.



얼룩이 무늬가 되는 시간을 보내며


나는 사건 전 까지는 학교를 신뢰하는 학부모는 아니었다. 좋은 선생들을 만나기는 했지만 선생님들을 전적으로 신뢰하지는 못했다. 어디서나 사람 나름인 것처럼, 학교도 마찬가지였다. 내 아이는 소위 모범생은 아니다. 에너지가 많고, 활발하지루한 것을 참지 못하는 개구쟁이이다. 이런 아이를 어떤 선생님은 장점을 찾아 끌어주셨고, 어떤 선생님은 가정과 함께 상의하려고 하셨다. 또어떤 선생님은 한 반에 학생이 30명이 넘는다며 단호하게 선을 긋기도 하셨다.


그런데 이번 일을 통해 난 학교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그동안 학교를 믿지 못했던 이유는 학교가 원인이 아니라 내 마음의 문제였는지도 모른다. 학교가 학생을 잘 돌보지 못할 것이라는 불신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선생님은 아이의 고난에 적극 참전해 주셨고 전폭적인 지지로 보여주셨다. 비록 가해학생과 그 부모로부터는 어떠한 사과의 표현을 듣지 못했지만 그것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또 다른 사랑을 통해 아이는 회복되어 갔다.


우리 가족은 이 일에서 큰 교훈을 얻었다. 상처를 치유하는 것은 꼭 상대편의 사과나 처벌을 통해 얻어지는 것은 아니란 것을 배우게 되었다. 담임선생님의 위로와 지지, 학교의 관심으로 아이는 치유되었고 회복되어 갔다. 그리고 학교에 대한 신뢰는 더 커져 갔다.


신뢰는 쉽게 만들어지지  않는다. 신뢰가 무너진 세상에서 '믿어줘'라는 말은 공허하다. 신뢰가 무너졌다면 쌓아 올려야 한다. 하나하나 견고하게 쌓아 올려가야 한다. 불편하더라도 시간을 내어주고, 들어주고, 만나면서 하나씩 쌓아 올려가야 한다. 누가 먼저 시작이 되어야 할까? 그것은 마음이 더 많은 쪽에서 시작될 수 밖에 없다. 말로만 외치지 말고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네가 먼저 하면, 내가 할 거야'. '내 마음을 알아줘'라고 하지 말고, 그냥 내가 시작하면 된다. 진정 '너'를 위한 마음으로 다가가면 된다. 마음은 마음을 알아본다.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제고 알아본다.


다리미 얼룩은 예쁜 물고기 무늬가 되었어요.






몇 년 만의 응답


몇 년 후 아이는 중학생이 되었다. 입학식이 있고 얼마 뒤 전학 갔던 그 학생을 중학교에서 만나게 되었다고 했다. 나는 놀라고 걱정스러운 마음을 숨긴 채 아이의 이야기를 들었다.

"엄마, 대박사건이야. 그 애가 날 부르더라. 그리고 미안하다고 하더라."
"넌 어때? 괜찮니? "
"난 괜찮아. 그 애 진짜 변했어. 중학교에서는 잘해 보고 싶은 것 같아"
 

우리 가족은 아이의 이야기를 들으며 놀라워했다. 다시 만나게 될 줄은, 더욱이 사과를 받게 될 줄은 상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아이가 잘 지낸다는 소식을 들으니 안심이 되었다. 마치 선물을 받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지난날 고생에 대한 응답을 받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많은 시간이 흘렀고 그 사이 많은 것들이 변했다. 그리고 아이들도 자랐다. 아이들은 자기만의 나이테를 그리며 자라났다.



더 많은 세상이 응답할 수 있기를


그림책 <문제가 생겼어요>에서 주인공의 엄마는 문제를 잘못으로만 보지 않았다. 잘못을 지워야 할 얼룩이 아닌 무언가가 될 수 있는 가능성으로 보았다. 다리미 자국이 생겼다고 해서, 다리미 자국을 없애는 것에만 온 정신을 집중할 필요는 없다. 흔히 문제를 제거하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그러나 제거되지 못하는 문제더라도 다른 것들이 덧대어지면서 해결될 수 있다. 사랑, 관심, 배려, 신뢰, 이해 같은 미덕이 문제의 성질을 바꾸어 놓을 수도 있는 것이었다.


<문제가 생겼어요>는 그저 아름답기만 한 동화가 아니다. 문제가 생기기 전에는 동화 속 이야기와 같은 해결이 얼마나 어려운지 알지 못한다. 내 의견을 표현하고 상대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고,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고 책임지는 것은 어렵고 불편하고 고된 일이다. 흔히 쉽고 빠른 해결을 원한다. 그래서 회피하거나 돈과 권력 아니면 무력과 같은 과도한 방책을 쓰기도 한다. 우리는 쉽고 빠름에서 벗어나야 한다. 사람을 키우는 일에서 만큼은 효율성과 합리성을 따지지 말아야 한다. 책임질 일은 책임지고, 감수할 일은 감수하며 견뎌내었으면 좋겠다. 잘못을 처벌하는 것에서 끝나지 말고 상처를 치유하고 회복될 수 있도록 어른들이 도와주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그들의 성장을 도왔으면 좋겠다.

 

이 사건은 다행히도 악순환의 고리를 만들지 않은 것에서 끝이 났다. 매우 협조적이고 지지적인 선생님들을 만났다는 행운이 작용했다. 그리고 아이가 당한 일이 은밀하거나 만성적이지 않았다. 또한 부모문제 상황에 어느 정도 훈련된 심리치료사라는 특수성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를 개인기나 운에 맡길 수는 없다.


'학교폭력'이라는 말은 이제 일상어가 되었다. 학생들 간의 갈등이 교사의 지도 없이 경찰신고를 통해 이루어지기도 한다. 아이 싸움은 어른 싸움으로 번지면서 크게 타오른다. 생각지도 못한 것들까지 태울 수 있다. 잘못을 어떻게 처벌하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먼저 상처를 돌보는 것이다. 그리고 문제 해결 과정에서 더 큰 상처, 또 다른 상처를 만들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이런 고된 노력을 지지하는 장이 더욱 견고해졌으면 좋겠다. 처벌이 두려워 도망가지 않고 무겁게 책임지고 부드럽게 용서받을 수 있는 장, 상처받은 마음과 끊어진 관계를 회복할 수 있는 장, 모두가 같이 협력할 수 있는 장, 그런 곳에서 우리가 둥글게 모여 앉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렇게 서로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으면 좋겠다. 공교육 안에서 이것을 끝까지 지켜냈으면 좋겠다. 내가 만난 좋은 선생님을 다른 학부모도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내 아이뿐 아니라 이웃의 낯선 아이도 살펴주는 어른이 많아지면 좋겠다. 더 많은 학생이 상처로부터 회복될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다. 그렇게 우리가 큰 원안에서 만날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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