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은 황금을 가지고 있다. 황금은 다른 광석과 섞여 있어도 돌 자체에서 발광을 한다. 그 빛 때문에 비교적 쉽게 알아볼 수 있으며 가공을 하지 않아도 가치가 있다. 황금을 가진 사람들은 그 사람의 가치를 다른 사람들이 더 잘 알아주며 서로 그것을 가지고 싶어 하기도 한다. 그러나 황금을 가진 이들은 드물다. 보통은 가공하지 않은 원석을 지니고 있다. 원석 그 자체는 값어치가 크지 않다. 다이아몬드, 사파이어, 루비 같은 예쁜 발색을 하는 원석이 가공되지 않았을 때는 그저 돌이다. 그러나 그 원석에 모양을 잡고 각을 내었을 때 원석은 자신의 아름다움을 더 멋지게 드러내곤 한다.
아들은 개성이 강하다. 개성이 강하다는 말은 자유롭다는 말이다. 자기 멋대로, 자기 성대로 울퉁불퉁 각져있다. 사춘기 아들은 요즘에는 그런 자신이 개성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한다. 할 수만 있다면 약이라도 먹어서 이 개성이 모두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한다. 난 아들의 개성이 좋다. 제멋대로 삐죽삐죽 한 그런 모양이 좋다. 그런데 그 개성을 달고 사는 일은 매우 버겁고 힘든 일인가 보다. 작은 도움이라도 될까 싶어 아들에게 내 생각을 말해 주었다.
넌 지금은 돌이야. 보석이 되기 전의 모나고 울퉁불퉁한 원석이지. 하지만 너 스스로를 잘 다룰 수 있다면 멋진 보석이 될 거야. 너의 개성이 너를 더 빛나게 해 줄 거야.
아들은 자기 고민에 대한 집착에서 놓여 났는지 다시 나에게 묻는다.
엄마는 어떤 보석이야?
나? 갑자기 진주가 생각났다.
엄마는 진주야. 엄마는 이미 보석이야. 이미 매끈하게 잘 다듬어져 있고 영롱을 빛을 내고 있어. 그런데 말이야 엄마는 조개 속에 있어. 조개 속에 연금되어 있지. 너는 너 자신을 잘 다듬는 게 너의 일이라면 엄마는 조개껍질을 열고 나오는 것이 숙제인 것 같아.
진주 이야기를 하고 난 후 아들에게 한 말이 너무 동화 같은 말이란 것을 깨달았다. 진주가 조개껍질 밖으로 나오는 것이 너무나 어려운 일인 것처럼 원석이 자신을 다듬어 조절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느껴졌기 때문이다. 10대 아들이나 40대 중년의 엄마나 쉽지 않은 인생 과제 앞에 서 있었다.
< 나오기까지 > 도화지 등, 23-09-25
도화지를 태워보았다. 도화지가 질겨서인지 처음에는 불이 잘 붙지 않았다. 검게 그을음이 생기더니 순간 불길이 확 일어났다. 한 번은 겁이 나서 불을 빨리 꺼뜨리기도 하고, 한 번은 종이 한 장을 다 태워 구멍이 사라지기도 했다. 여러 장을 반복할수록 점점 요령이 생기면서 원하는 크기로 조절해 나갈 수 있었다.
가택에 연금된 진주가 조개의 입을 열고 밖으로 나가는 일은 이토록 어려운 일이었다. 처음에는 한 걸음씩 나가보기도 하지만 성이 차지 않는다. 좀 더 많이 나아가려고 시도했지만 즉시 바닷물을 잔뜩 먹고 좌초해버리고 만다. 조금씩 그러면서도 자신의 최대치까지 움직여야 한다. 그렇게 자기만의 거리와 자기만의 방법을 찾아가면서 조개입이 열리고 진주는 밖을 나선다.
작업을 하며 마치 불장난을 하는 기분이 들었다. 불장난은 금기된 행동이다. 기존의 질서에 어긋나는 행동이다. 들키면 혼나고 비난을 받기 때문에 몰래 흔적을 남기지 않고 해치워야 한다. 그러나 작은 불이라도 연기와 냄새가 지독하게 난다. 타고 난 재를 모두 치운다고 해도 연기와 재는 불장난의 흔적을 남긴다. 하지만 불장난을 해본 이들은 안다. 내 살에 밴 불 냄새를 맡으며 내가 어떤 짜릿한 경험 속에 있었는지, 내가 얼마나 해방감을 느꼈는지, 내가 얼마나 자유로웠는지를 안다. 아직도 몸에 연하게 배어 있는 그을음의 냄새가 좋다. 그을음 냄새까지 모두 태워질 때까지 놀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