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코의 작품 중 가장 비극적 찬란함을 보여주는 작품은 1970년에 그린 새빨간 색의 <Untitled>입니다. 이 작품은 로스코가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에 그린 마지막 작품입니다. 그림의 사연을 들은 어떤 이는 이 작품에서 피가 튄 것 같다며 끔찍해하기도 하며, 선명한 붉은색이 살아 있는 것 같다면서 다시 삶을 불태우고 싶은 열망처럼 느껴진다고도 말하기도 합니다.
빨강은 로스코의 그림에서 중요한 색입니다. 신화를 주제로 했던 그림에서 색을 중심으로 한 추상표현주의 화풍이 나타났던 계기가 바로 마티스의 <붉은 작업실>을 본 이후였습니다. 로스코는 마티스의 빨강에 매료되었습니다. 그리고 색채에는 인간의 보편적 감정을 건드리는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했죠. 색면이 칠해진 캔버스의 빨강을 포함한 밝은 계열색은 초기 작품에 주로 등장했던 색채였습니다. 그리고 이후 후반기의 빨강은 암갈색으로 변했으며 점차 어두워지면서 검정이 모든 색을 집어삼킨 듯 변해갑니다. 그리고 마지막 작품은 다시 빨강입니다. 마티스로부터 영감을 받았던 이 붉은색이 품은 감정은 무엇이었을까요? 정말 자살을 예고하는 색이었을까요? 아니면 다시 도약을 시도하려 한 의미였을까요? 대체 색은 어떤 감정을 품고 있길래 우리는 색이 가진 비극성에 초대되어 마음의 동요를 느끼는 것일까요?
빨강, 근원의 색
빨강은 인류의 역사에서 처음 이름이 붙여진 색이자 가장 오랫동안 색을 대표해 왔습니다. 에스파냐어에서 ‘콜로라도(colorado)’는 색(color)이라는 뜻과 빨강(red)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색은 곧 빨강이며, 빨강은 유일하게 '색'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이 붉은색과 관련된 경험은 '피'와 관련이 있습니다. 그러기에 몸에 피가 흐를 때 체온은 따뜻해지며 무언가 신나는 일을 할 때 체온이 올라가며 피부색이 붉게 상기되곤 합니다. 적당히 흥분한 상태에서는 '열정'으로 이해하고, 과도하게 흥분했을 때 '격정'의 감정으로 받아들여집니다. 그리고 부정적 감정에 휩싸였을 때도 체온이 상승대며 몸이 뜨겁게 달아오르며 '분노'를 느끼기도 하죠. 정육점의 붉은 고기는 죽었어도 '신선'해 보이며, 그 고기를 먹으면 '에너지'가 생기고 '피가 다시 돌기' 시작합니다. 피가 몸속에 있을 때는 '생명'을 살리는 일이지만 피가 밖으로 빠져나올 때는 '살인', '죽음', '파괴'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또한 빨강은 하나를 둘로 파괴시키는 색이기도 하며 둘을 하나로 합치는 강렬한 색이기도 합니다. 고대 그리스 로마 사람들은 사랑의 여신 비너스와 전쟁의 신 아레스 둘 다 빨강과 관련지어 생각했습니다. 모든 상징에는 양 극단의 측면을 모두 가지고 있는데, 빨강의 상징은 삶과 죽음, 생성과 파괴라는 대극을 이루고 있습니다.
마티스의 빨강
마티스 <붉은 작업실> 1911년, 캔버스에 유채, 181 X 219.1cm, 뉴욕현대미술관
로스코는 뉴욕 현대 미술관에 마스트의 <붉은 작업실>이 전시되자 이를 보러 수십 차례 방문했다고 합니다. 로스코는 마티스의 무엇에 매료되었던 것일까요?
마티스는 "현대미술이란 색채로 마음을 가라앉히고 즐거움을 펼쳐 보이는 것"이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이 작품에서 마티스는 자신의 작업실을 모두 붉은색으로 칠했습니다. 붉은 벽면과 액자 사이의 테두리로 보이는 틈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 틈에서 파란색이나 노란색 빛이 보입니다. 마티스의 작업실은 원래 흰색이었지만. 그 위에 파란, 노란색을 칠하는 등 마음에 들 때까지 계속 색을 바꾸어 쌓아 올린 것이죠. <붉은 작업실>은 질서 없이 산만하고 어지럽게 보이지만 그 속에서는 들뜨지 않는 유희가 느껴지며 질서가 없지만 혼란스럽지 않습니다. 그림 중앙에 있는 괘종시계에는 시계 바늘이 없습니다. <붉은 작업실>은 정지된 시간 속에 있습니다. 마티스의 작품에서 발견되는 색채와 빛, 생명, 반복, 그리고 멈춘 시간등은 로스코의 작품에서 계속 연장됩니다.
밝은 색조의 시기 (1949-1955년)
<United> 1954, 캔버스에 오일, 197.5x166.4cm / <Orange and Yellow> 1956, 231x180.3 cm
이 시기에는 밝게 빛나는 붉은색과 황색 계열을 주로 사용했습니다. 다른 색들을 다채롭게 사용하기는 했지만 50년대 중반 이전 까지는 파랑이나 녹색 계열보다는 밝게 빛나는 색들을 선호했습니다. 빛나는 색들은 겹쳐지고 경계가 없이 모호하면서 살아있는 듯한 움직임을 전달합니다.
로스코 이 시기에 개인적으로 여러 변화를 겪게 됩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남겨주신 얼마간의 유산으로 재혼한 아내 멜과 함께 유럽 여행을 간 후 좋은 영감을 얻게 됩니다. 특히 이탈리아 피렌체의 산마르코 수도원에 있는 프라 안젤리코의 프레스코에서 천상의 빛과 함께하는 명상적 고요함에 감동합니다. 그리고 그해 딸 케이트가 태어나게 되며 1949년도 베티 파슨스 화랑에서 색면회화의 양식을 처음으로 선보이게 되었으며 대중의 관심을 받습니다.
로스코는 뉴욕뿐 아니라 베를린, 암스테르담, 도쿄 등 여러 나라에 전시회에 출품하는 등 인정을 받게 되고경제적으로도 안정되어 갔습니다. 그러나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 볼 수록 진짜 자신의 의도에 대해서는 이해받지 못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평론가들이 자신을 추상화가 이거나 색면화가로 불리는 것도 거부습니다. 자신의 그림을 대상을 단순화시킨 추상도 아니며 색채 그 자체의 관계에서 자신의 작품이 해석되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로스코는 '색'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생각했던 예술가였습니다."신이 없으니 무엇을 가지고 그릴 것인가? 아마도 색이 유일한 도구가 되겠지"라고 말한 정도로 색에는 신화적 힘을 가지고 있어 감상자에게 초월적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매개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침묵이야 말로 가장 정확'하다고 하면서 작품에 대해 설명하지 않으며 그저 감상자의 경험에 의지할 뿐이었습니다.
어두운 색조의 시기 (1957-1970)
1957년 이후 점점 어두운 색조를 사용하고 단순화되어 갑니다. 이전에 사용하던 빨강, 노랑, 오렌지 계열보다는 갈색과 회색, 짙은 파랑을 주로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로스코의 작품은 점점 더 암울하면서도 심오하고 신비스러운 색채를 나타내게 됩니다.
<Untitled Mural for End Wall> 1959
1958년 중반에 뉴욕의 시그램 빌딩의 포시즌즈 식당 실내를 장식할 벽화 제작을 주문을 받았습니다. 자본주의의 상징과 같은 호화로운 고급 식당에 신화적 비극성을 담으려 한 자신의 작품을 작업해 달라는 요구에 승낙한 것이죠. 사실 이 작품의 의뢰를 수락한 이유는 식당에서 밥을 먹는 사람들이 입맛이 떨어지는 그림을 그리고 싶은 속내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로스코의 이런 생각과 달리 사람들은 밥을 먹고 떠드느라 벽에 걸린 작품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다는 사실을 관찰하게 됩니다. 이러한 분위기에 화가 난 로스코는 계약을 파기해 버립니다. 자신의 작품으로 식당을 '장식'하려고 했던 불편감을 참지 못한 결정이었던 것이죠.
이쯤 로스코는 화려한 전성기를 맞이했습니다. 전시는 대 성공했으며 전 세계를 순회하는 전시에 작품을 출품했으며 대중은 그의 작품을 소유하고 싶어 했습니다. 이러한 성공은 기쁨을 가져다주기도 했지만 동시에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하기도 했습니다. 로스코는 가까운 동료 화가들로부터 '부르주아적 성공'이라는 비난을 듣기 시작한 것입니다. 로스코가 한때 가난한 화가로써 기득권에 대한 저항정신을 발판으로 성공하게 되었으나 로스코 역시 결국 기득권자라는 비난을 받게 된 것이지요.
1960년대가 되면서 앤디 워홀과 같은 젊은 작가들이 팝아트라는 새로운 미술 형식을 창안해 내기 시작합니다. 젊은 미술가들에게는 뉴욕의 추상표현주의 화가들이 진부한 엘리트 미술로 느껴졌으며 로스코와 같은 뉴욕화파 출신들은 신진 미술가들의 작품이 매스미디어를 활용한 속되고 도발적인 예술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평론가나 미술사가들은 팝아트가 미술계의 새로운 흐름이라 칭송했으며 추상표현주의는 시대에 종말을 맞이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로스코 역시 자본주의의 영향을 피할 수는 없었습니다.
휴스턴 예배당 벽화
전성기의 로스코는 공공장소의 벽화를 작업했습니다. 하버드 홀리요크센터의 펜트 하우스를 장식할 벽화를 제작하였으며 이후에는 휴스턴 예배당에 걸릴 그림을 주문받게 됩니다. 휴스턴 예배당의 작품의 절반은 단색으로 처리되었습니다. 여기 그림은 세속과 단절되어 보이면서 심연의 명상을 할 수 있는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짙은 검은색은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것 같이 두렵지만 모든 것으로 향할 수 있다는 무한한 확장을 느끼게 합니다.
Untitled, 1969/70, acrylic, canvas, 233.7 x 200.3 cm
로스코의 말년의 작품에는 무채색이 주로 등장하게 되는데요 이를 우울증의 반영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1968년 대동맥에 심각한 동맥류 발생하였고 지나친 음주와 담배, 약물 남용 등으로 건강이 쇠약해졌으며 우울 증세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1969년에는 마리 앨리스와 별거에 들어가면서 심리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겪은 것이 사실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시기에 무채색과 동시에 색이 흐릿한 파스텔 색조의 그림을 그렸다는 것을 보면 단순한 우울감이라고만 보기는 어려운 것 같습니다.
1969-70년에 작업한 무채색의 <Untitled>을 보면 심리적 갈등보다는 깊은 평온함이 느껴집니다. 긴장과 이완, 수직과 수평이라는 대립을 끝내고 깊은 적막으로 가는 듯합니다. 로스코 자신이 그토록 보여주고 싶었던 보편의 세계에 깊게 들어가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붉은색의 마지막 작품을 남기고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다른 세계로 들어갑니다. 로스코에게 영감을 주었던 마티스의 붉은 방과 같은 빨강, 고전회화의 시대를 열었던 빨강, 살아 있는 색 빨강, 색, 그 자체의 이름을 가진 빨강을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선물하고 갑니다.
인간이 빨강을 경험하는 것은 '피'말고도 다른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 그것은 '불'입니다. 불이 붙은 나무는 시뻘겋게 자신을 태우고 난 후 검은 숯이 되고, 검은 숯이 모두 타고나면 흰 재가 됩니다. 나무는 불이 되고 그 불은 재로 남아 무거운 것은 흙이 되고 가벼운 것은 공기가 됩니다. 나무는 태어나기 이전의 시작으로 돌아갑니다. 죽음은 끝나는 것일까요? 아니면 가능성이 창조되는 시작일까요?
로스코의 마지막 작품을 보며 보후밀 흐라발의 <너무 시끄러운 고독>에 나오는 주인공 한탸가 떠올랐습니다. 한탸는 쓰레기 장에서 폐지를 압축하는 일을 하며 살아갑니다. 폐지를 압축하며 쓰레기장에 버려진 철학, 문학, 예술, 역사 등의 텍스트를 온몸으로 읽어내는 것이 그의 행복이었습니다. 그러나 산업의 발달로 대량 폐기가 가능한 기계가 생겨나면서 한탸에게 폐지 압축하는 일은 그저 돈을 버는 것 외에는 의미가 없게 됩니다. 한탸에게는 돈을 더 벌고 싶은 마음도, 남은 시간에 여가를 즐길 마음도 없습니다. 한탸에게는 오직 자신이 좋아하는 일, 즐겨하는 그 일, 자신이 소중이 여기는 그 일이 뿐이었습니다. 폐지를 압축하며 예술과 철학이 담긴 책을 읽는 일뿐이었습니다. 한탸는 결단을 내립니다. 자신의 소중히 여기는 것과 영원한 함께할 작정 말입니다.
로스코는 앤디 워홀의 작품이 인기를 끌게 되고 예술 시장은 점점 자본의 영향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것을 짐작합니다. 자신도 씨그램 빌딩의 그림을 그리면서 심리적 분열을 겪기도 했으니까요. 자신의 시대가 끝나간다는 것도 알아갔던 것 같습니다. 로스코는 채플의 그림을 그린 이후, 이전만큼의 색이 표현성을 가지지 못하는 것에 괴로워하였으며 그전에 그린 빨강만큼의 색을 발현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주변의 가까운 동료, 가족들이 자신과 멀어졌으며, 신체적 기능에도 문제가 생겨버리게 됩니다. 로스코는 자본의 거센 폭우 앞에서 더는 자신이 소중히 여기던 것을 계속 지켜낼 힘이 없다고 좌절한 것일까요? 아니면 <너무 씨끄러운 고독>의 한탸처럼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것을 지켜내기 위한 결단이었을까요?
모든 것은 죽습니다. 이전 세대는 사라지고 새로운 세대 역시 결국 종말을 맞이하게 됩니다. 새로운 것, 좋은 것, 옳은 것, 더 나은 것도 낡은 것이 되어 쇠태하고 맙니다. 죽음과 생성, 소멸과 창조는 영원 속에서 무한히 반복됩니다. 새로운 세계가 영원한 것이 아니라 새로움은 영원 속에 존재하는 일부가 되고 맙니다.
저는 여기서 모든 것은 죽는다는 허무를 이야기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은 죽기에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해야 합니다. 불은 자신을 태웁니다. 나무가 클수록 더 큰 불을 냅니다. 바람이 불수록 불은 몸집이 더욱 커집니다. 자신이 가진 열정과 고난이라는 환경을 맞으며 불은 더욱 크게 불탑니다. 불은 꺼지기 직전까지, 아니 꺼지기 직전에 가장 강한 불길을 만들어 냅니다.
중요한 것은 과연 그 불길을 만들어 낼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온몸을 다하여 지키고 싶은 것이 내게 있는가? 소중한 것을 향해 자신을 다 태울 수 있는가? 검은 재가 될 때까지 완전 소진을 향해 갈 수 있는가? 세계의 종말 앞에서, 삶의 끝 앞에서 그 불길을 로스코처럼, 한탸처럼 끝까지 불태워버릴 수 있는가? 하는 물음에 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질문은 피할 수 없는 죽음의 운명이 제게 물어올 말과도 같은 것입니다. "너는 삶을 다 태웠는가?"
로스코의 마지막 작품의 빨강은 찬란한 불꽃입니다. 소진에 앞서 가장 강력히 불타는 찬란한 불꽃입니다. 두려운 경외심이 드는 숭고한 불꽃입니다. 두려움에 압도되지 않고 그 숭고함 앞에 마주 서려합니다. 운명이 내게 묻는 엄숙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정진하려 합니다. 진실하고 정직하고 성실하게 나아가려 합니다.
자신의 그림앞에서 선 로스코. 큰 그림이 위협적이지도 압도적이지도 않다. 그림은 그저 그를 감싸안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