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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얼굴

by 정희주


시간을 되돌아 걸어본다.

아이들과 함께 노을 바라보던 날 나의 마음도 붉게 타올랐지.

엄마가 돌아가신 날 하늘에서는 꽃비가 내렸지.

사랑하는 이와 함께 걷던 날 내 마음은 고장 난 기계가 되었지.

마음속 상처를 꺼내놓은 날 어두운 방에는 불이 들어왔지.

너무 소중한 것을 잃은 날 그것을 놓친 나를 용서할 수 없었지.

다시 사랑이 찾아온 날 메마른 땅은 촉촉하게 해를 기다렸지.


기쁨 슬픔 그리고 기쁨 또다시 슬픔일지라도.

어떤 마음도 버리고 싶지 않아.

어떤 마음도 외면하고 싶지 않아.

오는 마음 그대로 내게 깨우침을 주었지.

오는 마음 그대로 내게 기쁨이 되었지.


내 마음에는 모든 것이 들어 있어.

나의 과거가 있어.

과거 속에 과거, 과거 속에 과거

가장 밑바닥에는 그녀가 있어.

그녀가 살아온 시간이 있어

그녀의 기쁨과 슬픔이 있어

그녀가 바라본 노을, 꽃비, 고장 난 심장, 어두운 방 그리고 등불이 있어.

그리고 그녀의 밑바닥에는 또 다른 그녀가 있어.


내 안에는 수많은 그들이 살지

그들의 과거가 살지

나는 그들의 과거의 마음을 품고 있어.

그들의 기쁨과 슬픔을 품고 있어.

나는 그것들로 이루어져 있어.

기쁨과 슬픔 모두 나를 이루고 있어.



<시간의 얼굴>, 2025-03-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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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희주 인문・교양 분야 크리에이터 소속 미술치료사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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