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출발했다
내 집 마련이 꿈이라는 말이 의아했던 20대 초반의 나. 그리고 지금, 내 집 마련이 간절한 꿈이 되어버린 40대의 내가 있다.
가진 게 없어도 자신감 넘치던 때가 있었다. '젊음이 깡패’라는 말을 지나고 나서야 이해할 수 있음이 아쉬울 뿐이다. ‘늙고 보니 어른들 말이 다 맞더라.’는 말을 내뱉고 사는 나이가 되었다.
아빠는 없었고, 엄마는 연약했다. 동생은 어렸다. 나에게 집은 지붕 없이 벽만 세워진 공간처럼 느껴졌다. 지붕이 없으니 비바람을 피할 수 없다. 보호색을 잃은 동물처럼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것 같았다. 불안이 갈비뼈 사이로 스며드는 서늘함을 느끼며 잠에 들었다.
구성원 하나를 잃은 완전하지 않은 집. 엄마는 아빠의 빈자리를 대신하느라 힘들었다. 아이들은 방치될 수밖에 없었다. 이런 사정은 나를 한층 인간답게 만드는 결핍이 되었다.
집은 누구에게나 단순한 공간 이상의 장소일지 모른다.
20대의 나에게 집은 물리적인 공간보다 가족의 의미로써 크게 작용했다. 집이 채워주지 못한 정서를 스스로 메우기 위해 애썼다. 사회생활을 일찍 시작해서 돈이 있었기에 책을 읽고 여행하고 배우려고 노력했다. 집은 늘 내가 부족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나는 뒤처지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저축을 못한 게 조금 후회되지만, 40대가 된 지금 돌이켜보면 그 시간들은 제 역할을 하고 있다. 나는 어떤 보호 없이도 혼자 시간을 잘 보낼 수 있었다.
20대 후반에 접어들면서 나는 내가 어쩔 수 없는 큰 벽이 존재함을 알았다. 일과 학업을 병행하고, 할 수 있는 배움을 이어나갔지만 보통에는 한없이 부족했다. 주변에서 결혼 소식이 많이 들려올 때만 해도 큰 벽에 좌절했을지언정 나의 속도를 의심하지 않았다.
‘결혼?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지.’
'아이? 있으면 좋고, 없어도 괜찮아.'
사는데 있어서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많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들의 메신저 사진이 차츰 아이사진으로 바뀌던 시기에 나는 생각했다. '다른 건 몰라도, 나도 집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때 나는 깨달았던 것 같다. 인간의 삶을 지탱하는 조건이 있음을. 얕은 뿌리로 버티느라 나의 삶이 흔들리고 있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