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건 구겨서 버려

감정 예보

by 김소브

행복은 순간에 머물고, 슬픔은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사방에서 나를 공격한다. 이 끈질긴 슬픔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반복하지 않는 것이다.


반복의 힘

어제 있었던 그 일이 나를 괴롭힌다. 생각하지 않으려 하지만 그럴수록 선명해진다. 큰 숨을 입으로 들이마시고 그대로 내쉰다. 호흡이 불편하면 코로 숨이 들어가지 않는다. 수조 밖으로 튕겨 나온 물고기처럼 숨길이 닫힌 느낌이다. 벗어나고 싶다고 생각할수록 빠져든다. 이럴 때 이미지를 떠올리는 건 아무 때고 나를 침범하는 고통 속에서 발견한 효과적인 방법이다. 잊고 싶은 장면을 휴지처럼 한 손으로 구긴다. 쓰레기통에 던져버린다. 다시 떠오르는 장면을 구긴다. 버린다. 수없이 떠오르는 그 장면을 구긴다. 버린다. 반복한다.


나만의 작은 의식

행복했던 기억이 나에게 있을까. 과거에서 행복을 찾는 순간, 불행에 발목이 잡힌다. 내 경험이 늘 그렇다고 말한다. 회상하고 싶지 않은 장면 속에 들어가 서성이는 꼴이다. 미래는? 뜨거운 여름 아스팔트 지열로 인한 아지랑이만큼 어지럽고 비현실적이다. 지금 나는 뭐가 행복하지? 내 상태에 집중한다. 팔다리의 감각, 온도, 공기. 커튼을 걷어 빛이 들게 한다. 창문을 열어 공기를 바꾼다. 제습기나 가습기를 틀어 적당한 습도를 찾는다. 에어컨을 틀어 온도를 내리거나 찜질기를 켜고 몸을 데운다. 더 기운이 있다면 샤워를 하는 게 좋다. 그보다 더 할 수 있다면 설거지통에 있는 컵을 씻고, 이불을 털거나 걸레질을 한다. 우습게도 이런 일들에서 행복 같은 것을 느낀다. 몸과 마음을 닦고 주변을 정리하는 일, 수신제가는 나의 세상을 무사하게 만든다.


이런 일조차 불가능 한 날이 있다. 그런 날은 더러운 채로 벽에 비스듬히 기대 넷플릭스를 켠다. 아무거나 본다. 문을 열고 들어간다. 등뒤에서 현실의 문이 쾅 소리를 내며 닫힌다. 이야기가 있는 세계로 걸어 들어가는 것이다. 보다 지치면 잠들고, 깨어나면 또 본다. 잠에서 깼을 때 사방이 어두워도 시간은 확인하지 않는다. 순식간에 현실을 마주하는 기적을 원하는 게 아니라면.


나는 이런 방법들을 명상이라고 부른다. 누군가에겐 반려동물의 털을 빗기는 순간일 수 있고, 커피를 내리기 위해 물을 붓는 순간일 수도 있다. 단 1분일 수 있고, 반나절이 될 수도 있다. 명상은 나의 바다를 잔잔하게 하는 시간이다.


그게 바로 보통의 날

괴롭고 불행한 시기를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 있을지 고민하고 많이 찾아봤지만, 다른 사람의 방법이 그대로 적용되는 것은 없었다. 행복은 눈앞에 두고도 김 서린 창 앞에 서 있는 듯하다. 나쁜 기억은 끝없이 문을 두드리지만, 조금 흔들려도 넘어지지 않고 보낼 수 있다면 그것으로 보통의 날은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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