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나 비전공자다!

어느 2세대 빅데이터 분석가가 던지는 조언

by Maven

나는 무스펙에 비전공자인 빅데이터 분석가다.


지금이야 오랜 기간 쌓아 올린 '경력'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곱디 곱게 포장된 채로 안락을 누리고 있지만

요즘 회자되는 기준을 적용하면 유려한 학벌도, 꽉꽉 채워진 스펙도 없는,

(그저 "빅데이터 분석가"라는 고명한 타이틀로 연명하고 있는) 한낱 직장인일 뿐이다.


이런 나도 시류를 잘 탔는지, 이런 저런 강연 자리에 불려 다니는 경우가 많은데

그럴 때마다 반복적으로 듣게 되는 질문이 있다.


"비전공자도 빅데이터 분석가가 될 수 있나요?"


그럴 때의 내 대답은 한결같다.

"네, 그럼요. 얼마든지 할 수 있죠."


듣고 싶었던 말을 듣게 된 상대방은 그제서야 안도의 표정을 짓고,

그렇게 서로 좋은 분위기로 끝나면 될 것을 나는 결국 또 참지 못하고 괴팍하게 이런 질문을 덧붙인다.


"그런데 '비전공자'는 어떤 (학)과를 말하는 건가요?"


내 질문이 (너무 당연해서) 어이없었는지, 잠시 멈칫하다가 그들이 내놓은 대답은 거의 이렇다.


“국문과, 영문과 같은
(혹은 사학과, 철학과, 사회학과, 심리학과, 경제학과, 경영학과, 수학과 등등 같은)

그런 학과들 있잖아요.”


그런 학과들이라... 이쯤 되면 그런 학과들보다 차라리 ‘그렇지 않은 학과’를 찾는 게 더 빠르겠다.

아마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들은 ‘그렇지 않은 학과’가 컴퓨터 관련 학과라는 것쯤은 눈치 채셨을 것이다.


그러니까 많은 분들이 나에게 답해주는 “그런 학과들”의 공통점은 ‘코딩을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는 학과’라는 것이고, 즉 컴퓨터 관련 학과 계열이 아닌 거의 모든 학과의 학생들이, 스스로에게 '비전공자'라는 칭호를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는 비단 학생들에게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다.

기업 강의에서도 비슷한 질문을 받을 때가 있다.


“저는 데이터 관련 전공을 하지 않아서 요즘 변하는 시대를 못 따라잡겠더라고요.”


물론 거기다 대고 감히 어떤 전공을 하셨나요? 라는 질문을 던지지는 않는다.

이 외에도 고등학생 자녀를 둔 부모님들과 현직 교사분들이 모인 자리에서도 비슷한 질문이 나온다.


“아이가 빅데이터 분야로 진로를 희망하는데 저희 때는 그런 게 없었어서..”

“요즘 아이들이 빅데이터 관련된 일을 하려면 어떤 학과를 가야하냐고 상담하면 난감해요”


서로 각자의 표현들은 다르지만 스스로를 ‘비전공자’로 분류하는 사람들은 너무나도 많다.


그렇다면, 소위 “전공자”로서 부러움을 사고 있는 컴퓨터 관련 학과생들의 입장은 어떨까?

여러 기회를 통해 만나본 경험에 따르면 그들의 입장은 이렇게 압축된다.

“코딩을 배우는 속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코딩만 안다고 데이터 분석을 잘하는 건 아니니까..”


여기서 재미있는 점은,

비전공자들은 ‘빅데이터=코딩’으로 인지하고 있는데 비해,

전공자들은 오히려 ‘빅데이터=코딩+@’라고 인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비교해 보면,비전공자들의 이러한 우려는 어쩌면

최근에 불어닥친 ‘코딩 열풍’에 기인한 게 아닐까 하는 추정을 하게 된다.


코딩과 무관했던 사람들이 부랴부랴 바라보게 된 ‘코딩 열풍’과

코딩을 하고 있던 사람들이 바라보는 ‘코딩 열풍’ 사이에는

아마 그 너머를 볼 수 없을 정도로 높은 벽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여기서 잠깐 내 얘기를 해보면,


나는 지난 16년 동안 직무가 바뀌었을 뿐 꾸준히 데이터 분석을 하고 있다. 내 경력은 딱 두가지 직무로 나뉘는데 사회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 6~7년은 브랜드 전략 컨설팅이라는 직무를 하면서 소비자 조사 데이터를 분석했고, 나머지 8~9년은 빅데이터 분석 직무를 하면서 SNS에 올라온 게시물들을 분석했다.


그리고 내가 빅데이터 분야로 이직을 했을 때는 지금만큼 빅데이터니 4차 산업혁명이니 하는 말들이 대중적으로 회자되지 않았었기 때문에, 나에게는 그저 분석하는 대상, 그러니까 데이터의 종류가 바뀐 것 뿐이었다. 데이터의 종류만 바뀌었기 때문에 데이터를 분석하는 기술이나 데이터를 대하는 태도, 데이터를 통해 얻어지는 결과들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고, 그 생각은 여전히 유효하다.


두 데이터의 차이라면, 빅데이터는 데이터의 양이 많아졌기 때문에 코딩 작업이 새롭게 추가되었다는 것과 기존의 데이터는 전문가들의 ‘비밀스러운’ 영역이었던데 비해 빅데이터는 대중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는 것 정도랄까.


빅데이터가 대중적으로 회자되지 않던 시절에 여론조사 같은 소비자 데이터 분석을 직업으로 삼고자 했을 때는 전공자 비전공자의 개념이 거의 없었다. 데이터 분석을 한다고 해서 꼭 통계학과나 수학과 같은 숫자를 접하는 학과를 나와야 한다는 인식도 없었으며 오히려 경영학과나 광고학과, 그리고 사회학과, 심리학과까지 다양한 계열 출신들이 데이터 분석이라는 직무를 선택하는 경우도 꽤 많았다.


이유야 여러 가지겠지만 아마도 데이터를 기술적으로만 분석하는 것을 넘어서 소비자를 이해하는 측면에서의 해석 영역이 중요하다는 판단이 한 몫 했을 것이다.


데이터를 분석하는데 있어 분석 기술은 필요 조건이지 충분 조건은 아니다. 빅데이터에 있어서 코딩이라는 스킬 역시 마찬가지다. 몇 가지 스킬만으로 원하는 답을 얻을 수 있는 데이터는 이 세상에 어디에도 없다.

물론, 빅데이터 분야에 대한 전공자들의 ‘심리적 거리’가 가깝다는 것은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차이다. 심리적 거리가 가깝다는 것은 당장 그 분야에 익숙하거나 능숙할 정도는 아니라도, 거부감이 들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일테니까. 게임을 예로 들자면, 치트키(Cheat-Key)까지는 아니더라도, (카트라이더에서의) 물폭탄 같은 역할은 충분히 해줄 수 있는 자산이 될 것이다.


영문학과를 졸업한 나 역시 영어신문을 술술 읽을 정도의 실력은 안되지만 일단 영자 신문이 옆에 있다고 해서 거부감이 들지는 않는다. 내가 마음만 먹으면 속도가 느릴 뿐이지 결국 대강의 내용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는 되도 않는 자신감이 드는 경우도 적지 않다. 심지어 “뭐 안되면 검색하면 되지”라거나, “이제부터라도 마음먹고 공부하면 간단한 대화 정도는 할 수 있을 걸”이라는 거만을 떨지도 모르겠다. 정말로 내가 그것을 할 수 있고 없고를 떠나서 말이다.


이 글들을 통해 비전공자가 전공자보다 낫다거나, 훨씬 잘할 수 있다는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니다.


서두에서도 이미 밝혔지만, 새로운 시대로 진입하는 시점에서 어차피 우리는 모두 비전공자일 뿐이니까.

내가 당부 드리고 싶은 얘기는 지금 우리를 불안하게 만드는 “코딩 열풍”은 잠시 뒤로하고 빅데이터를 데이터 관점에서 바라보면서 어떻게 접근하고 학습할 것인지 다른 각도에서 고민해 보자는 것이다.



자, 이제부터 우리가 얘기하고자 하는 분야는 ‘개발자’나 ‘데이터 엔지니어’로 명명되는, 코딩 관련 전문 직무가 아니라 ‘빅데이터 분석’이라는 직무다. 알고리즘을 설계하고 데이터를 추출하는 과정이 아닌, 가설을 세우고 데이터를 해석하고 누군가에게 전달하는 업무까지를 맡아서 하는 직무 말이다.


부디 이 편협하고 어쩌면 편향되어 있을지 모르는 작은 생각들이 불편하지 않게 읽히기를 바라며, 작금의 시장 상황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랄 뿐이다.


더불어 이후부터 서술될 다양한 ‘정의’나, 역사적인 사실들은 부지불식간에 포함된 개인의 관점이 반영되어 있을 수 있어 독자 스스로 여러가지 견해를 접하고 그를 통해 본인의 관점을 키우려는 용도 정도로만 가볍게 참고하시기를 바란다.


나는 어떠한 지식을 본격적으로 접하려면 최소한 두 세 권 이상의 책을 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가 정리한 이 내용들도 여러분이 읽게 될 수 많은 책들 중에 하나의 관점일 뿐이라고 생각되기에 조금 모르더라도 조금 틀렸더라도 자신감 있게 정리해 볼 생각이다. 그게 나의 면피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