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엄마가 처음이라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야 진정한 성인이 된다고 한다. 출산으로 인한 고통도 느껴보고 엄마가 되어 부딪히고 깎이면서 다듬어져야 생각과 마음이 넓어지기 때문이다. 육아 10년 차, 아이를 대하는 내 마음이 어느 정도 넓어졌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김없이 드러나는 밑바닥을 보면 한없이 부끄럽다.
아이와 함께 고전 수업을 듣는다. 선정된 책을 한 달 동안 읽고 정한 시간에 모여 선생님이 준 질문으로 생각을 나눈다. 수업 마지막에는 주어진 주제로 간단한 글쓰기를 한다. 이번 달은 ‘플랜더스의 개’를 읽었다. 선생님은 책이 보여주는 결말과 다르게 이야기를 만들어보는 글쓰기를 안내했다. 아이는 넬로가 죽은 것이 아니라 실신한 것으로 풀어갔다. 넬로가 그토록 동경하던 루벤스의 그림을 보고 황홀한 나머지 실신했고, 파트라슈는 넬로가 죽은 줄 알고 같이 실신했다고 한다. 다시 일어난 넬로는 그림 대회에서 1등을 하게 되고 유명해져서 돈을 많이 벌었다고 썼다. 그 돈을 금고에 보관했는데, 파트라슈가 사료를 월급으로 받으며 금고를 지켰다고 한다. 넬로는 나이가 들어 작가 위다처럼 폐렴으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고 글을 마쳤다.
아이가 쓰는 글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지켜보았다. 이 책이 가난하기에 돈을 벌어야 한다는 걸 이야기하지 않는다. 도대체 아이는 무엇을 느낀 건지 의문이 생겼다. 다른 아이들은 나쁜 사람들이 사과하거나 따뜻하고 행복하게 결말을 지었다. 비교하는 마음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아이가 쓴 글을 바꿔주고 싶었다. '괜찮아, 아이가 쓴 거잖아. 그대로 인정해 줘.' '이걸 그대로 올리라고? 이상한데?' 불편한 마음은 담아두기만 하면 좋으련만 내 입으로 튀어나와 버렸다. “주하야, 이 책은 뭘 말하는 거 같아? 돈 이야기는 아닌 것 같은데.” 아이는 글을 고치려는 내 마음을 금세 알아차렸다. "괜찮아요. 이렇게 해도 괜찮아요." 눈물을 보이며 이야기하는 아이를 보니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몰려왔다. 아이가 쓴 글을 그대로 발행하겠다는 말에 몇 초간 내 마음을 헤집던 갈등도 멈췄다. 아이는 본인 생각대로 글을 마무리했다.
실랑이를 겪은 아이는 엄마가 주는 다독임이 필요했나 보다. 안기고 싶어 내 품에 다가왔지만 모른 척 이제 씻고 잘 시간이라고 말해버렸다. 머뭇거리던 아이는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씻으러 갔다. 아이가 자려고 준비하는 동안 나의 밑바닥이 보였다. 삶의 가치에 대해 아이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더라면 좋았을텐데. 아이가 책을 읽고 나면 책이 무엇을 말하는지, 인상 깊은 장면이 있는지 물어보고 대화한 적이 별로 없다. 바쁘다는 핑계가 다반사였다. 아이는 상상대로 솔직하게 썼는데 엄마인 나는 포장하기에 급급했다. "속상했니?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욕심을 부렸나 봐." 상처받은 아이 마음이 잘 아물도록 시간을 들여 꼭 안아주었다.
아이는 3년전부터 상상 이야기를 자주 썼다. 아이 글을 보며 간혹 내 마음에 들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러면 의도가 담긴 질문으로 글의 방향을 바꿔주려 했다. 오늘처럼 말이다. 그때도 아이는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그런 방법이 잘못되었음을 깨닫고 고쳐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또 실수하고 말았다. 있는 모습 그대로 아이를 인정해 주고 칭찬해 주는 훈련이 여전히 필요하다. 욕심을 내려놓고 아이가 진짜 필요한 것을 채워주는 지혜가 필요하다. 한 번 더 경험했으니 이제 아이가 쓰는 표현을 존중하리라. 유연한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