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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마왕 Oct 02. 2019

후회 소비의 아이콘, 운동기구

트램펄린 세트, 6만 9천원

충동구매는 높은 확률로 후회하게 된다는 뻔한 노선을 가급적 피하려고 했지만


수많은 충동구매를 해 본 결과 후회를 느끼는 대략의 수치는 약 60%이상인 것 같다. 충동구매를 하려는 찰나 곁에 누군가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도 약간의 차이가 있다. 사실 요즘은 클릭 몇 번이면 조용히 결제가 진행되어버리는 편리함 탓에 누군가와 상의하기 전에 이 모든 과정은 끝이나있기도 하다.


2018년 가을, 체중조절의 압박과 근력이 곧 재산이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는데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달리기와 줄넘기였다. 쌀쌀해져가는 날씨를 핑계로 밖에서 운동하기 더없이 좋은 계절을 몽땅 보내버리고 어쩔 수 없이 실내에서 할 수 있는 운동을 물색해야 했다. 춥다고 밖에서 운동을 못하는 것도 아닌데 그저 시간을 더 벌어보려는 혼자만의 합리화였다. 사실 스스로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이런 마음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천고마비의 계절 가을, 말도 살찌고 나도...


죄책감이 조금씩 불어나고 있을 무렵 잠들기 전 눈에 들어온 모바일 광고창 하나를 홀린 듯이 누르고 말았다. 나에게는 최적의 조건을 가진 운동기구였다. 실내에서 할 수 있었고 유튜브 영상을 띄워놓고 할 수 있어서 재미있어보였고 큰 공간을 차지하지 않았고 어려워보이지도 않았고 무엇보다 가격이 만만했고 덤으로 층간소음을 방지하는 패드를 함께 끼워주었다. 바로 1인용 트램펄린! 이 모든 구성이 6만 9천원이라니... 구매를 결심하기까지 상품페이지를 대강 훑는 20초정도가 소요되었다.(사실 더 짧았을 것이다) 이것은 정확히 내가 찾던 운동기구였다. 이틀 뒤 트램펄린이 도착할 때까지 죄책감 없이 군것질을 했다.




우선 배송과 동시에 간단한 조립을 시작하였는데 조립만으로 꽤 운동이 되었다. 반으로 접힌 모양의 트램펄린을 활짝 펴서 고정하는 것만으로 큰 운동이 된다고 느껴졌다. 하하. 생각보다 트램펄린은 매우 쫀쫀해서 그것을 펼치는 과정은 내 온몸을 스트레칭하게 했다. 안 쓰던 근육을 사용하는 쾌감이 느껴졌다. 시작부터 느낌이 좋았다! 여덟 개의 다리를 나사처럼 돌려 끼우고 고정한 다음 손잡이 부분을 연결하고 나니 왠지 내가 생각하는 정도의 하루치 운동이 이것으로 충분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오 씐나! 이렇게 마당이 있었다면 더 좋았을텐데!

다음날부터 안락한 집안에서 재미있게 운동할 내 모습을 상상하니 사람들이 왜 이 좋은걸 다 사지 않는 것일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다음날 나는 함께 배송되어온 층간소음 방지용 패드가 제 구실을 못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것이 신경 쓰여서 그 날은 운동을 그만하였다. 그 다음날 퇴근길에 다이소에 들러 부착용 패드를 구입했다. 가구의 다리에 부착하면 충격과 소음을 줄여주는 패드가 크기별로 다양하게 진열되어있었다. 이 패드는 트램펄린 다리에 기분 좋게 딱 들어맞았다. 이제 드디어 제대로 트램펄린 운동을 시작 할 수 있다! 여덟 개의 트램펄린 다리는 정확하게 고정했음에도 그 길이가 제각각인지 다리길이가 맞지 않는 의자처럼 삐걱거리고 흔들렸다. 왼쪽을 맞추면 오른쪽이 안 맞고 좀 뛰다보면 다시 느슨해지는지 한쪽이 기울어져서 신경이 쓰였다. 


신나는 유튜브 채널을 보면서 하다가 어지럽고 토할 것 같아서 영상의 도움 없이 혼자 뛰어보았다. 이번에는 너무나 지루해 20분을 뛰기 힘들었다. 신나고 재미있을 것 같았는데 어느새 트램펄린 뛰기 전에 그 운동기구를 바라보는 것만으로 큰 부담이 되었다. 손잡이부분 때문에 보관에 애를 먹어 손잡이를 분리하였다. 뛸 때만 다시 부착해서 뛰고 다시 빼서 보관하는 일도 두어 번 하고 관두었다. 한동안 손잡이도 없고 다리 길이가 제각각인 이 애물단지 위에서 십 여분을 뛰다 내려오는 일을 반복했고 겨울동안 거실 소파 옆에 모셔두었다가 올해 초 재활용 쓰레기 버리는 어떤 날 우리집에서 더 이상 볼 수 없는 물건이 되었다. 


어떤 물건을 사고 후회하지 않으려면 어느 정도의 시간을 들여 얼마큼을 고민해야 하는 것일까.


분명 충동구매로 산 물건을 후회 없이 잘 쓰기도 하고 고민 끝에 물건을 사고 후회하기도 한다.

한때 나는 유난히 저축을 잘 하지 못해서 가지고 싶은 물건을 장바구니에 넣어둔 채로 일주일을 보내고 일주일 뒤에도 그 장바구니에 담긴 물건들을 사고 싶으면 그때서야 결제를 하는 방법으로 낭비를 약간 줄여보기도 했다. 대부분 일주일이 지나면 내가 왜 이걸 장바구니에 담았을까 싶다가도 눈에 아른거릴 만큼 가지고 싶은데 일주일 뒤에 그만 품절되어 구매하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물건을 사기 전에 하는 고민의 시간과 무게는 가격과 비례할까.

만약 비운의 1인용 트램펄린이 6만 9천원이 아닌 69만원이었어도 내가 20초 만에 그것을 결제하고 2주도 안 쓰다가 재활용 쓰레기로 내버렸을까.




내 첫 번째 글의 재료인 트램펄린은 완벽하게 실패한 충동구매였지만 뒤이어 소개할 몇 가지 충동구매는 꼭 그렇지만은 않다는 걸 증명하려 한다. 덧붙여 트램펄린은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다이어트 운동기구이고 유튜브에는 많은 사람들이 효과적으로 이 운동기구를 사용하는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이 참담한 결과는 애초에 운동에 대한 의지와 정보 없이 군것질을 일삼던 내가 죄책감을 털고 스스로를 안심시키기 위해 벌인 것으로 게으르고 나쁜 주인을 만나 훌륭한 운동기구인 트램펄린이 안타깝게 희생 된 거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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