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무늬 잠옷
학교 다닐 때 맞췄던 반 티셔츠? 작년 여름에 입었던 목 늘어난 반팔 티셔츠? 아니면 샤넬 넘버 파이브?
뭐 입고 주무세요?
내가 잠옷에 관심을 갖게 된 건 3년 전쯤이다. 나처럼 홈웨어가 곧 잠옷인 사람이 대다수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집 안에서 생활할 때 입는 옷 따로, 잠잘 때 입는 옷이 따로 있다면 당신은 대단한 사람이다. 늘어나는 빨래와 귀찮음을 기꺼이 감수하다니!
계절마다 마음먹고 옷 정리를 하면 버려야 할 옷이 산더미처럼 쌓인다. 예전의 나는 쌓인 옷 중에서 후줄근한 티셔츠가 나오면 ‘잠옷으로 입지 뭐’ 하고 다시 저 깊은 장롱 속으로 넣어 두는 게 습관이었다. 그렇게 잠옷으로 입겠다고 해 놓고 쳐박아 둔 옷이 위아래로 수십 벌은 되지 않을까 싶다. 옷장에는 영영 안 입을 옷, 한 번쯤은 입을 옷, 새 옷이 점차 쌓여 갔다.
그러다 어느 날은 옷장 중간에 걸쳐 있는 칸막이가 쌓인 옷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한쪽이 무너졌다. 그러는 바람에 바로 눈앞에서 옷들이 옷장 문을 열고 우르르 쏟아졌는데, 순간 ‘왜 진작 내다버리지 못했을까!’ 온갖 짜증이 몰려 와 소리까지 질렀다. 넋놓고 주저앉아 있다가 모두 처분해 버려야겠다는 생각이 확실해졌다. 오후 내내 헌옷수거함에 넣어야 할 옷, 버려야 할 옷 등을 분류해서 싹 없앴다. 옷장도, 내 마음도 후련해졌다. 그리고 잘 때 입어야 했을 옷도 모두 없어졌다.
남은 옷 중에 잠옷으로 입을 만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그리고 후줄근한 옷이 모두 없어지자 잠옷을 사야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아무것도 안 입고 자는 것이 건강에 좋다길래 마릴린먼로처럼 맨 몸에 향수만 뿌리고 자 보기도 했다. 하지만 가족이 내 방에 들어오기도 하고, 또 방 밖으로 나가려면 옷을 입어야 하는 게 번거로웠다. 사계절 내내 맨 몸으로 자는 것도 어려웠다. 나는 인터넷에서 잠옷을 수십 가지 살펴보고 구매하는 데 몇 가지 기준을 세웠다.
첫 번째, 재질은 내가 좋아하는 면이되
부드럽고 가벼워야 할 것.
두 번째, 홈웨어로도 입을 수 있는 무늬여야 할 것.
세 번째, 가격은 10만 원 이하.
이 기준으로 며칠 동안 고민해 산 잠옷 이후로 여름용, 원피스 잠옷 등 여러 벌을 샀다. 나는 가을부터 봄까지 입을 수 있는 잠옷과 여름 반팔 반바지 잠옷이 있다. 원피스는 자면서 옷이 말려 올라가는 바람에 몸이 베기거나 하는 등의 불편함이 있고 폴리가 많이 함유돼 있는 재질은 입었을 때 기분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구매에 실패했지만 몇 번 입고 버릴 수는 없어서 계속 입는 잠옷들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괜찮은 잠옷은 가격이 꽤 나가는데도 내가 계속 잠옷을 사는 이유는 집에서도 내 마음에 드는 옷을 입는다는 점, 옷장 정리를 할 때 더 입지 않는 옷을 쌓아 두지 않아도 된다는 점, 분명히 기분이 좋다는 점이다.
‘이 옷은 버려야 하나 잠옷으로 입어야 하나’ 생각이 든다면 과감하게 버리시라. 그리고 마음에 드는 취향의 잠옷을 새로 사 들이시라. 아마 기분 좋은 저녁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