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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대한 Feb 02. 2023

당신에겐 고향집이 있습니까?

아파트 공화국에서의 고향집의 의미

아파트 시대에 태어난 나는 감사하게도 고향집 다운 고향집을 갖고 있다.


나의 고향은 강원도 태백, 나에게는 팔순이 넘은 외할머니께서 아직도 살고 계시는 나의 고향집이 있다. 그 집은 외할아버지께서 광부로 일하면서 진폐증에 걸리기 직전 장만하셨던 집이다. 엄마가 고등학생 즈음 외할아버지께서 돌아가셨으니 그곳에서 외할머니는 40년을 넘게 살고 계시는 거다. 대충 어림잡아 보아도 실 평수가 10평도 안 되는 곳에서 외할머니는 5남매를 키워 내셨다. 그마저도 생활비에 보태기 위해 방 한 칸은 세를 주셨다고 한단다. 광부로써의 외할아버지의 삶, 연탄공장에 다니며 홀로 자식들을 키운 외할머니의 삶이 전부 녹아있기에 더더욱 외할머니는 그 집을 놓지 못하시는 것 같다.


첫 째 딸을 먼저 하늘로 보내고 마음의 병을 얻으신 외할머니는 3년 전 건강이 급작스럽게 안 좋아지셔서 외삼촌들이 있는 경기도의 요양병원에서 2년을 넘게 계셨다. 자식들 사는 도시에 가끔 놀러 오실 때면 아파트는 답답해서 오래 못 있겠다며 일주일을 못 버티고 다시 태백으로 쫓기듯 돌아가셨던 외할머니는 병원이 많이 답답하셨을 것이다. 몇 개월만 회복해서 다시 모시고 오겠다며 외삼촌들이 겨우 설득해서 병원으로 모신 후 얼마 안 가 코로나 팬데믹이 터지면서 계획보다 길어진 병원생활을 버텨내시고 작년 초에 다시 집으로 돌아오셨다.


외할머니의 손자들 중 맏이인 나는 동생과 더불어 유일하게 그 집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좁은 마당 건너에 단칸방이 하나 딸려 있는데, 아무것도 없이 결혼한 엄마 아빠는 짧은 신혼생활 후에 내가 태어날 때 즈음 그곳으로 살림살이를 옮겼다. 내가 7살이 되던 해에 충청도로 이사를 나오기 전까지 거기에서 살았으니 나에게도 추억이 참 많은 곳이다. 해마다 여름이면 우리 집 휴가지는 항상 태백이었기 때문에 더욱더 그렇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난 후로 가끔 외갓집 모임에서 큰외삼촌은 태백이 나의 고향임을 가끔 상기시켜 주시곤 한다. 엄마가 태어난 곳은 어디며 이 집의 역사는 어떻고 외할머니가 어떻게 이 집을 지켜내셨는지, 또 그분이 나를 얼마나 아끼셨는지 등등.. 굳이 그 말씀이 아니어도 난 누군가 고향이 어디냐 물으면 강원도 태백이라고 말한다. 비록 학창 시절 전부를 충청도에서 살았지만 누가 뭐라 해도 내 고향은 태백이다.




고향집에 다녀오면 과거로 여행을 다녀온 느낌이다.


인구 4만 남짓의 소도시, 태백은 내가 살았던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다. 지역적인 특성상 인구 유입이 거의 없고, 개발도 이루어지지 않는 곳이다. 특별히 관광지로도 유명한 곳이 아니기 때문에 더욱 변할 이유가 없는 것 같다. 내 머릿속 30년 전 기억과 지금을 비교하면 엄마 손 잡고 가끔 탔던 스텔라 택시가 전기차 택시로 바뀐 거 말고는 달라진 게 없다. (스텔라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을 거다.)


달라진 게 있다면 집도 동네도 거리도 모두 작아졌다는 것. 세 발 자전거 타고 하루 종일 이곳저곳을 휘젓고 다녔던 동네가 주차할 곳도 마땅히 찾기 힘든 좁은 동네로 변해있다. 시내는 또 왜 이렇게 작아졌는지, 볼일을 보러 나가는 엄마를 따라 시내에 나갈 때면 돌아올 때 항상 힘들어서 택시 타자고 칭얼거렸던 기억이 난다. 지금 걸어보면 10분이면 가는 그 거리가 그땐 왜 그렇게 멀게 느껴졌는지 모르겠다. 우스개 소리로 우리 외갓집은 역세권이라 말하기도 한다. (실제로 태백역까지 걸어서 5분이면 간다.)

저 골목에서 뛰어가는 1호, 2호를 보면 내 어린 모습이 보이는 것만 같다.

여전히 연탄보일러를 쓰는 외갓집 역시 변함이 없다. 물론 세월이 지나며 낡아서 고장 난 곳은 적당히 수리하며 사셨기 때문에 소소한 변화는 있지만 푸세식 화장실이 현대식 화장실로 바뀐 것 말고는 크게 변한 게 없다.


그래서 나는 태백에 다녀오면 30년 전을 과거 여행을 하고 온 기분이 든다.





이러한 시대적, 공간적 배경에서 우리에게 고향집이라는 게 존재할까?


대한민국은 아파트 공화국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이 땅에서 가장 인기 있고 대표적인 주거 형태는 누가 뭐라 해도 아파트다. 한국인들은 평생에 걸쳐 아파트 하나 장만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노력에 노력을 더해 '대출 없는' 아파트 한 채를 겨우 완성하여 정년이 다가오면 아파트 한 채 마련했음에 안도하는 이들이 내 주변 대부분의 케이스이다. 안타깝지만 어떤 이는 그 마저도 갖지 못해 몇 년마다 도래하는 전월세 갱신을 위해 집주인과 다투기도 하고 또 다른 전월세를 찾아 방랑하는 삶을 살기도 한다. 반면에 어떤 이는 '레버리지'를 활용해 수십 채의 아파트 투자로 큰돈을 벌어들이기도 한다.


내가 생각하는 고향집이란 팍팍한 도시에서의 삶을 살아내는 와중에  이따금씩 마음의 안정과 회복을 위해 찾는 엄마집이다. 그곳에 가면 여름에는 시끌벅적 벌레 소리와 함께 코끝을 정화해 주는 풀냄새가 가득하며 겨울에는 장작에 불 피우는 구수한 연기가 피어나는, 그런 집이 고향집의 정의라 할 수 있겠다. 풀냄새는커녕 사람 사는 냄새도 나지 않는 삭막한 아파트가, 혹시라도 재건축/재개발이라도 하게 되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바뀌기도 하는 이 주거형태가 우리의 고향집이 될 수 있을까?


그런데 21세기 현재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아파트에서 시작해 어쩌면 죽을 때까지 아파트에서 살 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아파트에서 태어난 우리의 고향집은 아파트인가? 아파트에서 태어난 우리가 낳은 아이들은 고향집이라는 게 존재하긴 하는 건지 모르겠다. 심지어 우리 양가 부모님들도 모두 아파트에 살고 계시니 아이들에겐 할머니, 할아버지집 마저 아파트인 현실에서 고향집이라는 단어가 무색하게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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