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맥스 Max Feb 09. 2018

(사회적)기업가에게는 무엇이 필요한가?

기업가를 위한 무기들

씨드투자와 액셀러레이팅을 업으로 하다보니 갓 창업을 했거나 초기 단계에 있는 기업가들과 초기 단계를 넘어 규모화를 만들어내고 있는 기업가들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어림잡아 세어보니 2017년 한해만 150여 명 이상의 초기 단계의 기업가들과 미팅을 했습니다.


초기의 팀들은 데이터도, 검증된 내용도 없기 때문에 가능성을 판단할 수 있는 정보가 많이 부족합니다. 투자일을 시작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창업자와 팀'이라는 조언을 많이들었는데 역시나 가장 많이 보게 되는 것은 '창업자'와 '팀'의 역량입니다. '안될 사업도 될 팀이 하면 되고, 될 사업도 안될 팀이 하면 안된다'라는 이야기도 많이 들어왔습니다. 역시나 그런 것 같습니다. 좋은 팀은 어떤 상황에서도 문제해결을 해내더라고요.


올해에도 지난 달부터 이번 달 내내 100여 팀 이상을 검토하고 또 만나고 있습니다. 사회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선한의지를 갖춘 창업가들을 만나면 창업자와 팀의 역량, 즉 그들이 다음과 같은 무기와 필살기를 가졌는지를 살펴보게 됩니다.



1. 강한 믿음과 광기.

기업가들은 새로운 것에 대한 비전과 그것을 실현할 때까지 포기하지 않는 강한 믿음을 갖고 있습니다. 새로운 것에 대한 추구는 기본적으로 광적인 것이라 보입니다. 현실과는 동떨어져서 불가능해보이는, 현실에는 없는 어떤 것을 만들어내려는 기업가의 꿈은 때론 집념으로, 때론 고집으로, 때론 일종의 광기입니다.


2016년에 투자를 진행한 한 회사의 대표님도 그러했습니다. 지난 수 십년간 풀리지 않았던, 대기업들도 해내지 못했던 정책적 변화와 정부의 허가를 2년 여 동안의 끈질긴 노력과 대안제시를 통해서 풀어내었습니다. 한 기업가가 수십 년 간 대기업들도 해내지 못한(어쩌면 일부러 하지 않은) 변화를 단, 2년 만에 해낸 겁니다. 모두 어려울 거라고 했고, 대표님의 집념이 없었다면 현실로 만들어내지 못했을 겁니다.


심지어 여러 번의 시도에도 바뀌지 않는 현실과 부족한 자원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치열하게, 때로는 고통스럽게 문제의식을 부여잡는 모습은 대개의 사람들과는 다릅니다.



2. 아이디어.

기업을 이끌며 마주하는 현실은 잔인합니다. 매일, 매주, 매달 새로운 실패와 마주합니다. 창업을 실패에 익숙해지는 과정이라고 부를 수 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실패로부터 배우는 것입니다. 실패로부터 새로운 것을 계속 떠올려내는 능력입니다. 곧 다가올 봄에 땅에서 새순이 돋듯이, 기업가들은 창의적 긴장감 속에서도 새로운 아이디어를 분출해낼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새로운 실험, 도전을 기획해내지 못하는 순간 기업은 성장을 멈출 것입니다.


투자를 시작하고 처음으로 투자한 기업가는 매주 새로운 생각과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 분이었습니다. 그의 사업 아이디어는 그리 새로울 것도, 혁신적이라 부르기에는 부족한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액셀러레이팅이 진행되는 3개월 동안 매주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그 것을 실제로 실행하는 동안 이 회사는 독특함을 가진 회사로 거듭나고 꾸준히 성장하고 있습니다. 새로운 실험들이 계속 이어지니 동료들이 성장함은 물론이고, 고객들에게도 차별화된 경험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3. 매력.

새로운 비전,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 것을 현실로 만들어줄 동료들이 필요합니다. 아무래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있다고 해도 그것을 함께 현실로 만들어 갈 동료가 없으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동료는 첫번째 사업의 고객입니다. 이 사업에 자신의 가장 젊은 시간이자 소중한 인생을 갈아넣을 1~2명의 사람 조차 찾을 수 없다면 창업은 시작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만약 능력을 갖춘 동료이 곁에 있다면... 신께 감사드릴 일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동료들을 찾고 또 설득할 수 있는 매력이 기업가들에게는 필요합니다.


투자를 진행한 기업가들은 사업 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각자의 매력을 가진 분들이었습니다. 이분들과는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 즐겁고 시간이 가는 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이분들 주변에는 좋은 동료들도 많았습니다. 매력적인 기업가들은 주변에 조력자들도 많습니다. 이 기업가의 꿈에 나도 힘을 보태고 싶게 만드는, 지속적으로 관계를 유지하고 싶게 만드는,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게 만드는, 함께 일하고 싶게 만드는 매력이 필요합니다.



4. 병적인 낙천성.

기업가들의 감정은 거의 매일 롤러코스터를 탑니다. 인생이 희노애락으로 정리될 수 있는 것처럼, 창업 역시 기쁨과 분노, 슬픔과 즐거움이 만들어내는 4중주입니다. 불안감과 좌절, 희망과 가능성이 교차하는 이 감정 롤러코스터의 결말은 늘 정해져있습니다. 바로 "불가능은 없다"라는 병적일 정도의 낙천성입니다. 얼핏보면 기업가들은 때에따라 조증이나 울증 환자처럼 보입니다. 늘 한계에 마주해야 하고, 이 한계를 넘기 위해서는 어찌보면 자연스러운 감정현상입니다. 어려움에 마주해서도, 좌절을 경험하면서도 늘 낙천적인 자세와 긍정적인 에너지를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다행인 것은 이 병적으로 보이는 낙천성이 어느 정도 훈련을 통해서 가다듬을 수 있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감정선이 섬세하고 자아가 강했던 한 대표님의 회사에 투자를 했습니다. 역량이 뛰어나지만 기본적인 태도나 대화방식이 방어적이고 유난히 걱정과 고민이 많은 분이었습니다. 그러다 늦은 밤이나 새벽이 되면 기분이 좋아지시곤 하는 분이었습니다. 감정의 기복과 방어적(때로는 부정적으로) 보이는 자세는 사업과 팀, 그리고 대표님 자신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 보여 조언을 하기를 여러 날. 몇 달이 지난 후, 자신의 섬세하고 강한 자아를 '낙천적 에너지'로 변화시킨 대표님 덕에 팀의 분위기도 좋아졌고, 자연히 사업 성과도 뒤따라 왔습니다.



5. 혁신에의 의지.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스타트업, 소셜벤처에만 투자를 하다보니 제가 만나는 기업가들은 대부분 사회를 변화시키겠다는 의지와 욕망을 갖고 있는 분들입니다. 저와 동료들은 이런 분들을 '사회적기업가'라고 부릅니다. 비즈니스를 단지 이익(Profit)만을 추구하는 수단이 아니라, 정치적/사회적 활동의 일환이자 사회 변화(Innovation & Benefit)의 수단으로 생각하고 이용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사회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문제로 남아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큰 문제일 수록 해결이 어렵고, 하나의 기업이 해결하는 것이 요원한 경우가 많습니다. 문제에 따라서 정부가 해결해야 하거나 시민사회가 해결해야 합니다. 하지만 어떤 사회문제는 시장 안에서 정보비대칭성이나 거래비용 문제를 해결하는 것만으로 해결의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따라서 비즈니스를 수단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인지를 잘 돌아보는 것이 필요하고, 기업을 운영해나가며 비즈니스가 수단에서 목적으로 바뀌지 않도록 사회 혁신에의 의지를 계속 유지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 의지로부터 기업가가 사업을 바라보는 자신만의 철학이 시작됩니다.


물론, 사회문제 해결에 크게 관심이 없는 기업가들을 만날 때도 사회 혁신의 의지를 발견합니다. 기업을 목적이 아니라 수단으로 바라보는 시선를 갖게되면, 무엇을 위해 창업을 하는지, 무슨 문제를 해결하는지, 이 기업으로 인해서 우리 사회의 무엇이 바뀌는지를 고민하기 시작하는 '사회 혁신 의지'를 갖게 됩니다.



6. 문제해결력

창업은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과정입니다. 아이러니한 것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실패를 기획해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전보다 더 빠른 실패를, 이번보다 더 나은 실패를 할 수록 성공에 가까워집니다. 실패가 의미하는 것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립한 가설을 하나씩 실행해보고 리스트에서 지워나간다는 의미입니다. 이를 가설검증이라 부를 수도 비즈니스 모델이 바뀌는 피봇(Pivot)이라 부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핵심 가설을 수립하고, 이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가장 최적으로 일하는 것은 린 스타트업이나 그로스해킹등과 같은 최신 창업방법론들과도 닿아 있습니다.


투자를 결정할 때, 매번 해당 사업의 명확한 방향이 보이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 팀이 가진 추진력과 문제해결력을 믿고 투자하기도 합니다. 시간을 버텨주면 팀이 최적지점, 답을 찾으리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최근의 실패에서 배운 것들을 현재의 서비스에 반영하고, 현재의 데이터를 기준으로 미래의 가설과 실험을 설계해내는 것은 대표의 외로운 싸움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최초 창업을 결심했을 때의 비전을 유지하면서 비즈니스 모델과 가치사슬(value chain)까지도 모두 바꿀 수 있다는 유연성이 문제해결력의 핵심인 것 같습니다.

틀린 가설들을 하나씩 지워나가는 것, 그 과정에서 지속적인 피봇을 해가는 역량이 창업의 성패를 좌우합니다.



7. 창의력과 인사이트.

충분하지 않은 자금과 인원, 부족한 경험과 네트워크, 새로 시도해보는 것들에 익숙하지 않은 구성원들까지 기업가가 마주하는 현실은 성공의 조건과는 거리가 멀어보입니다. 시장과 산업에 따라서는 기존 기업들, 플레이어들과의 치열한 경쟁도 해야 합니다. 돈이 많다고, 회사가 크다고 꼭 시장에서 살아남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market fit을 최대한 빨리 찾아내고, 문제해결에 적절한 solution을 제시하는 것일 겁니다.


문제는 마주하는 다양한 상황, 문제들에 늘 '답'을 갖고 있을 수는 없다는 겁니다. 익숙하지 않은 문제나 한계에 봉착했을 때, 기업가에게 필요한 것은 기존의 경험이나 지식이 아니라 완전 새로운 것을 떠올려내는 능력입니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없다지만, 기존의 것을 다른 맥락에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재창조가 가능합니다. 모든 문제를 예상하고 모든 방법을 준비하는 것이 얼마나 비효율적인지를 아는 기업가는 대화, 독서, 토론, 강의, 만남, 관찰, 영상, 질문 등 자신의 영감과 인사이트를 채우고 유지해줄 것들을 만듭니다. 준비합니다. 어쩌면 기업가라는 존재들은 계획과는 거리가 먼 존재일지도 모릅니다. 순간의 인사이트와 창의력을 행동으로 연결하는 사람들이야말로 기업가라 불러야 할지도 모릅니다.


 

8. 체력

창업이 엄청난 체력을 필요로하는 일이라는 걸 해보기 전엔 알기가 어렵습니다. 눈 앞에 해결해야 할 일이 산떠미처럼 쌓여있는 상황에서 운동을 하느라 1시간의 시간을 만들어내는 것은 참 힘든 일입니다. 동료들의 잦은 야근과 박봉을 지켜보면서도 30분 간의 산책 시간을 만들어내는 것은 때론 고통스러운 일입니다. 창업이 장기 마라톤이라는 것을 모두 알지만 마라톤을 위한 체력 관리를 실제로 하는 기업가는 드뭅니다. 이 차이는 당장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알게 됩니다. 중요한 것에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은 체력에서 기인한다는 것을요.


자기관리 능력은 기업가에게 있어서 지속성과 미래를 가져다줍니다. 체력이 부족하면 생기는 여러 증상들이 있습니다. 불안감과 패배감, 동료들에 대한 불만족에 휩쌓이기 쉽고,중요한 일에 집중하기 어렵습니다. 중요한 일일 수록 어렵거나 힘듭니다. 어느 순간부터 어렵고 힘든 일들을 번번히 외면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면, 필시 지친 겁니다.


달도 차면 기울고, 꽃도 날이 다하면 떨어지듯이 매출곡선도 그 기울기가 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때 필요한 것은 꾸준함입니다. 꾸준히 관리된 체력은 마음과 정신의 항상성을, 성과의 꾸준함을 가져다줍니다. 지쳐도 많이 지치는 법이 없습니다.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 '체력이 국력이다'와 같은 말은 적어도 창업에서는 맞는 말입니다. 체력도 능력입니다.



9. 커뮤니케이션

기업가의 일은 '설득'을 바탕으로 '신뢰'를 만들어내는 일입니다. 먼저 자신을 설득하고, 동료들과 투자자를 설득하고, 시장과 고객을 설득하고, 결국 우리의 제품/서비스를 신뢰하도록 하는 일입니다. 기업가들은 선동가이기도하고, 이야기꾼이기도 합니다.


아무리 작은 사업이라도 이해관계자는 여럿입니다. 동료 3명만 모여도 사내정치가 시작됩니다. 말과 글은 이들을 묶어낼 훌룡한 수단입니다. 기업가는 조직 내에서는 물론이고, 밖에서도 기업가/리더로 인정받아야 합니다.


말하거나 글쓰는 것을 즐기지 않아도 됩니다. 언변이나 필력이 화려하고 뛰어나면 좋겠지만 중요한 것은 이심전심, 즉 마음과 마음의 뜻이 통하는 것입니다. 소수든지 다수든지, 글이든지 말이든지, 무대든지 술자리든지와 관계없이 의도한 바를 TPO(Time, Place, Occasion)에 맞게 전달할 수 있어야 합니다.



10. 이러한 모든 특성을 결합할 수 있는 있는 능력.

어떤 일에 비전을 갖는 다는 것은 정신병의 일종인 집념과 닮아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기업가와 미치광이를 백지 한 장 차이로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기업가를 미치광이와 구분해주는 것은 앞서 언급한 것들을 필요한 순간에 잘 엮어내어 실제로 문제를 해결해내는 역량입니다. 그것이 사회문제라면 더욱 좋겠지요.




기업가가 되기 위해서 굳이 대학/MBA에 갈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물론, 한국적 맥락에서 MBA(때론 대학)이 동료를 찾거나 창업 지원금을 받기위한 전략적 수단으로 활용될 수는 있지만, 제가 만나고 또 관찰한 바로는 기업가는 교실에서 탄생하는 존재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보다는 자신과 사회에 끊임없이 '왜'라는 질문을 던지고, 이를 바탕으로 스스로의 비전을 찾아내고, 가능한 많은 변화를 만들어내기 위해 끊임없이 시도하는 과정에서 탄생하는 것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그리고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고독을 밑천으로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과정에서 자신만의 철학을 갖게 되는 것이 기업가인 것 같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