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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맥스 Max Aug 19. 2018

사회혁신수석실이 사라졌다.

사회혁신수석실을 위한 추도사

2017년 5월. 사회혁신생태계가 들썩였다. 청와대에 사회혁신수석이 신설된 것이다. 내가 일하고 있는 성수동 지역의 소셜벤처와 임팩트투자자들은 희망과 기대를 잔뜩 품었다. 사회혁신수석이 임기의 시작과 동시에 방문한 곳은 성수동 소셜밸리였고, 대통령은 일자리위원회 3차 회의를 체인지메이커들을 위한 성수동 공간 헤이그라운드에서 진행했다. 당시의 기대와 바람은 나 또한 인터뷰이로 참여했던 조선일보 더나은미래의 기사 <새 정부 출범, 전문가에게 묻는다… 향후 5년 '사회혁신의 길'>에 잘 드러나있다.


1년 여가 지난 2018년 6월의 풍경은 사뭇다르다. 사회혁신수석실이 사라지고, 다시 시민사회수석실이 되었다. 이름만 바뀐 것이 아니라 수석실의 구성원도 전원 바뀌었다. 이번 결정에도 정치적 배경과 의도들이 깔려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부자가 아닌 이상 그 의도를 모두 알기도 어렵고, 또 정치공학이라는 것에 익숙하지도 않은터라 시민사회수석이 사라질 때부터 시민사회의 반발과 서운함이 컸다는 류의 이야기에 관심을 쏟을 생각은 없다. 다만, 사회혁신수석실의 존재는 우리에게 사회혁신이 필요하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 여겼기에 아쉬움을 감출 길이 없다. 그리고 사회혁신 콘트롤 타워 역할을 어디서 할 수 있을지 고민이 될 뿐이다.


사실 사회혁신수석실이 사라진 것이 지난 6월이니 벌써 두달이나 지난 이야기고, 사회혁신수석실이 사라진다고해서 사회혁신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조용해도 너무 조용하다. 청와대의 사회혁신은 혁신 현장이나 사회혁신가들과는 유리되었던 것일까? 시민사회와 사회혁신은 차이가 없었던 것일까? 아니면 처음 사회혁신수석실을 만들었을 때의 의도가 달성된 것일까?


사실, 사회혁신이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것은 참 어렵다. 나는 사회혁신을 사회문제를 새로운 아이디어나 방법을 통해서 해결하는 활동이라 생각한다. 사회혁신이 다른 혁신과 다른 것은 그 목표와 방법이 사회적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목표란 ‘사회문제해결’을 의미하고, 방법이라 함은 ‘시민/시민사회’가 수혜의 대상을 넘어 혁신활동에 직접 참여하는 것을 의미한다. 즉, 사회혁신은 ‘사회’를 혁신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사회적인 방식’으로 혁신을 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사회적가치가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것도 어려운데, 사회적가치를 추구하는 활동을 설명하는 것은 오죽하랴. 수석실의 고민이 이만저만 아니었을 것이다.


짧은 시간 동안 존재했던 사회혁신수석실을 통해 우리사회는 다행히 사회혁신이 무엇인지 관심을 갖는 기회는 가질 수 있었던 것 같다. 사회혁신수석실의 주도로 정부가 액티브 X를 없앴을 때, 전 국민은 환호했다. 인수위가 없었던 현 정부가 국민의 목소리를 듣는 창구였던 광화문 1번가 역시 사회혁신수석실의 작품이었다. 신고리원전, 대입제도개편 공론화위원회라는 정책결정 과정의 숙의모델도 사회혁신수석실 주도로 만들었다.


이제는 어느 영역에서나 흔히 사용하는 '혁신'이라는 용어는 기술이나 비즈니스 혁신으로 한정되는 것이 아닌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담론으로 확장되었다. 기존의 사회적경제 조직들은 물론이고 소셜벤처와 같은 새로운 조직들이 사회혁신의 주체로 인정받을 수 있었고, 안전행정부산하에는 사회혁신추진단이 신설되어 지방정부까지 사회혁신을 전파하고 있다. 공무원들은 사회혁신과 소셜벤처등의 새로운 조직들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대기업과 공기업들도 사회혁신을 CSR/CSV의 주요 방향으로 잡고 있다. 서울시의 혁신파크를 모델로하여 춘천, 전주등을 필두로 전국에 혁신파크가 들어선다고 한다.


물론 사회혁신수석실이 사회혁신을 주도할 수도, 주도해서도 안된다. 1년 만에 사라진 사회혁신수석실이 못내 아쉬운 것은 사회를 혁신하는 것도, 사회적인 방식으로 혁신하는 것도 모두 단기간 안에 할 수 있는일이 아니라는 점 때문이다. 청와대의 수석, 비서관등의 임기가 그리 길지 않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시작부터 끝이 정해져있는 길이었다. 시간이 짧았던 만큼 사회혁신수석실은 공공행정과 민간에 사회혁신의 문화를 확실하게 자리잡게 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어야했다. 가장 중요하게는 민간에서 사회혁신을 지속적으로 이끌어나갈 주요 파트너들을 발굴하고 또 이들이 지속가능한 구조를 설계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어야했다. 미국의 대형 민간 재단들이나 유럽의 영파운데이션, SIX, NESTA등 사회혁신의 담론을 주도하는 민간 기구들의 토대가 비교적 약한 한국에서는 사회혁신 민간 주체들을 발굴하고 육성해내는 것이 사회혁신의 생태계를 만드는 첫 걸음이어야했다.


현 정부는 그 태동에서부터 사회혁신을 경험했다. 촛불혁명이라는 시민 참여와 열망이 표출되는 과정은 그 어떤 것보다도 사회적인 것이었고, 그 결과 또한 사회혁신이었다. 사회혁신수석실은 촛불의 결과로 만들어졌다고해도 과언이 아니라 생각한다. 그래서일까? 사회혁신수석실이 전국에 사회혁신의 민간 주체들이 충분히 뿌리내리도록하는 일을 하지 못하고 사라지는 것이 더욱 안타깝다. 이제는 그 역할을 안전행정부의 사회혁신추진단에만 기대하게 되었다.


시민사회수석실이 사회혁신수석실로 바뀌었다가 다시 시민사회수석실로 돌아간 것 뿐이라 할 수 있다. 새로 시작하는 시민사회수석실의 수장은 정치인이 맡았다. 나는 그가 경실련 등 시민사회운동가 출신으로 정치에 투신하여 민주통합당 공동대표를 지냈다는 것을 제외하곤 그를 모른다. 청와대는 고위관계자는 사회혁신수석실을 시민사회수석실로 개편한 배경에 대해 “종교·직능·노동·정치권 등으로 소통을 확대하자는 의미가 있다”며 “시민사회수석실은 대통령이 사회와 만나는 창인데, 그런 의미에서 보폭 넓은 활동을 새 수석께 기대한다”고 했다 한다.(출처: 한겨레 신문: 청와대 경제, 일자리, 시민사회 수석비서관 교체) 말 장난을 할 생각은 없지만, 풀어서 이야기하자면 사회혁신은 소통을 하지 못했고, 좁은 보폭을 보여주었을 뿐이라는 의미다. 사회혁신수석실의 무능이라기보다는 사회혁신에 대한 담론을 끌어가고 있는 우리 모두의 무능에 가깝다.


사회혁신수석실 산하의 비서관들은 이전에 존재하던 시민사회수석실과 상당히 다르다. 다시 시민사회수석실로 돌아간 수석실은 어떤 역할을 해낼까



공은 시민사회수석실로 넘겨졌다. 사회혁신은 이미 추구할 것이냐 말 것이냐의 선택의 문제가 아니다. 사회혁신수석실이 생기기 전부터 그래왔듯이 사회혁신은 계속될 것이다. 진정한 문제는 사회혁신을 얼마나 잘 해내느냐에 있다.


요새 정부에서는 '혁신'이라는 키워드가 유행이다. 혁신성장본부도 생겼다. 이 혁신들이 꾸준히 이어지길 바란다. 실패는 피할 수 없다. 다만, 지속되는 실패가 있어야만, 우리는 진정한 사회혁신에 도달할 수 있다. 새로이 출범한 시민사회수석실의 실험은 가급적이면 장기적으로 진행되길 바란다.



참고문헌

정미나. 2016. 사회혁신이란 무엇인가 : 사회혁신의 특성과 사회변화. 월간 사회혁신의 시선 5호. 서울혁신센터 사회혁신리서치랩 팀장.

2017/10/19. [런치리포트]청와대 사용설명서-사회혁신수석실. 머니투데이 the 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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