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세안에서 만난 소셜벤처와 임팩트투자에 대한 단상
좋은 기회가 주어져서 sopoong가 지금까지 해온 것들과 제 개인적인 경험을 소개하러 쿠알라룸푸르, 말레이시아에 와있습니다. 사실, sop를 소개하는 건 핑계고, 아세안 국가들에서의 사회적기업 현황과 임팩트 투자등에 대해 공부하는 좋은 계기로 삼을 수 있을 것 같아서 덜컥 연사 초청을 승낙했습니다.
2018년 10월 15~18일까지 개최된 AYSBS(ASEAN Youth Social Business Summit)라는 행사인데, 아세안 전역에서 60여 명의 사회적기업가와 소셜벤처들, 그리고 임팩트 투자자들이 모이니 에너지가 대단합니다. 한국에서는 제가 스피커로, 그리고 캄보디아에서 가죽공예 중심의 사회적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분. 이렇게 2명이 대표로 참여했습니다. 고작 3일 동안 머물며 보고 느낀거지만 인상적인 것들을 기록 차원에서 공유합니다.
대졸자 및 대도시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언어적 장벽이 상대적으로 낮은 것 같습니다. 다수가 영어와 말레이어, 만다린을 구사합니다. 심지어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브루나이 등은 말레이어로 대략 소통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물론 도시와 시골의 격차 등이 커서 시골로 가는 순간 언어적 장벽이 정말 크다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기업가, 국제활동가, 사회운동가들은 서로의 나라를 방문해 본 비율도 높고, 경제적 격차나 사회 인프라의 부족 등 각나라가 마주하고 있는 사회문제가 심각하고 또 유사해서 그런지 서로의 모델에 대해서 이해도도 높고 관심도 큰 모습입니다.
더불어서, 지리적 근접성 및 정치/외교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ASEAN이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입니다. 이 행사도 청년들에 대한 아세안워크플랜(ASEAN Work Plan Youth)의 3개년 계획의 일환입니다. 싱가폴을 제외하고는 아직 선진국 반열에 오르지 못했지만, 브루나이, 말레이시아 등의 소득 수준은 상당하며 공통적으로 급격한 고령화를 겪고 있습니다. 나라 전체의 평균 연령은 낮지만, 고령인구의 비율이 6%~10%에 달합니다. 아직은 젊은데, 고령화가 급격히 진행되고 있으나 사회 안전망이 부족하고, 소득격차가 심하고, 산업 기반이 약해 여러모로 고심하는 모습입니다. 말레이시아만해도 15~25세 청년 실업률이 10%에 육박해, 전체 실업률의 3배에 달한다고 합니다. (대학진학률이 30% 내외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청년들이 중등 교육 이수 후 직업시장으로 대거 진출합니다.)
이 행사의 메인 스폰서는 문화청년체육부입니다. 그런데 이 장관이 25살입니다. 임명당시 37살이었던 전임장관은 자신 보다 더 젊은 사람이 장관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해왔는데, 결론적으로 내각 경험이 없는 25살의 청년이 장관으로 임명되는 엄청난 결과를 보여줍니다. 아세안 국가들의 평균 연령은 2017년 기준 28.8세 평균로 연령이 대단히 낮은, 소위 젊은 국가들입니다.(참고로, 2017년 한국의 평균 연령이 42세입니다). 이 장관이 부임하자마자 전격적으로 추진한 것이 현행 21세의 선거연령을 18살로 낮추는 일이었습니다. 경험부족을 우려하지만, 기대와 응원의 목소리가 더 큰 것 같습니다.
(참고기사: Syed Saddiq is Malaysia's new Youth and Sports Minister and youngest-ever Cabinet member at 25)
대다수가 다국적기업이나 컨설팅펌, 해외 대학 출신입니다. 저와 함께 패널토론을 한 4명의 백그라운드는 화려합니다. 20년 간 PWC, Ernst&Young 등에서 경험을 쌓고 비영리 재단을 설립한 컨설턴트, 역시 PWC에서 중국, 런던, 싱가폴 등에서 일하다가 사회적기업을 설립한 컨설턴트, 옥스포드를 졸업하고 12년 간 은행에서 일하다가 사회적기업을 설립한 뱅커입니다. 저를 포함한 8명의 스피커가 스피치를 하고, 두번의 패널 토론을 했는데, 연사들이 모두 고학력자 및 전문직 출신입니다. (참고로 성비는 완벽하게 5:5로 맞추어져 있어, 주최측의 젠더 감수성 수준이 높다는 것을 간접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역시 무함마드 유누스가 사회적기업의 모델로 제시됩니다. 그가 제시한 개념들이 방향이 되고, 또 모델이 되는 것 같습니다. 한국에는 최근에 오지않고 계시지만, 동남아는 자주와서 강연 등을 왕성하게 한다고 합니다. 이날 언급된 것은 유누스의 3가지 없는 세상(A world of Three Zero)이었습니다. 3가지는 Zero poverty, Zero Unemployment and Zero net carbon emmissions 입니다.
제가 편견을 갖고 있거나, 한국에 소개된 아세안의 사회적기업들이 편향적이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아는 선에서 아세안의 사회적기업들이 주로 집중하는 것은 수공예품, 현지 교육격차 해소, 농업 기술보급, 커피 등 공정무역 등과 같은 것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행사를 통해서 헬스케어, IT를 활용한 접근 등 다양한 모델을 볼 수 있었습니다. 두가지 기억에 남는 모델을 소개하자면, 1) 의료진 네트워크를 형성해서 수준높은 치매예방 관리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인도네시아의 플랫폼과 2) 점점 심각해지는 고령화의 흐름 속에서 액티브 시니어들을 대상으로 IT교육과 커뮤니티, 케어서비스를 제공하는 플랫폼이 기억에 남습니다. 그 밖에도 블록체인, 모빌리티, 코워킹스페이스 등도 종종 언급됩니다. 유선전화 - 삐삐 - 피처폰 -스마트폰으로의 진화를 경험하며 인프라투자도 많이해야했고, 또 그에 따르는 매몰비용을 많이 고려하게 되는 우리와는 달리, 유선전화 - 스마트폰 혹은 그냥 바로 스마트폰으로 세상을 경험하고 있는 나라들의 잠재력을 생각하게 됩니다.
말레이시아만해도 이제 사회적기업이 200개, 싱가폴은 600개로 추산한다고 합니다. 한국의 (등록)사회적기업이 2,000개 정도라는 걸 비추어 보았을 때, 이제 태동기로 역시 잠재력이 커 보입니다. 실제 이들 나라에서도 최근 사회적기업들이 늘고 있다며 고무적으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다만, 싱가폴의 경우 약 70%의 사회적기업들이 5인 이하의 영세한 규모라며,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고 합니다.
한국과는 달리, 아세안 국가들 전반적으로 자국 제품, 농산물을 더 소비해야한다는 생각이 별로 없다고 합니다. 산업기반이 약해서, 애초부터 해외 상품, 해외 자본, 해외 기업들이 많이 들어와서 그런지, 아니면 식민지의 경험을 하며 외국인들을 좀 더 스스럼 없이 받아들이게 된 건지 아직은 모르겠습니다. 다만, 그래서 한국을 포함한 외국인들 입장에서는 동남아에서 사업을 하는 것이 한결 수월하다고 합니다.
무대에서 발표한 사회적기업들은 우리가 이름을 들으면 알만한 글로벌 다국적 기업들로부터 지원을 많이 받고 있습니다. P&G, Facebook, HSBC, VISA, Barclays 등은 거의 모든 아세안 국가의 사회적기업가 및 비영리재단들에서 언급됩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이 유사한 사업들에 중복 지원을 하는 경우를 발견하게 되는데요. 몇 몇 전문가들에게 물어보니, 아세안을 하나 하나의 나라로 보기도 하지만 또 한 나라로 보기도 한다고 합니다. 각 나라에서 개별적 CSR을 하기보다는 아세안을 관통할 수 있는 사회적기업이나 비영리재단을 만나면, 효율성과 효과성 측면에서 여러 나라의 CSR을 동시에 맡기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국가간 사업을 플랫폼적으로 접근한다니... 부러울 따름입니다.
끝으로, 말레이시아 정부에서 정말 섬세하게 의전을 해주어 황송할 따름입니다. 픽업과 샌딩은 당연하고, 공항에서 발권부터 출입국수속을 밟기 직전까지, 두 명의 문화청년체육부 직원들이 동행하며 말도 걸어주고, 약 1km 정도 되는 거리를 함께 걸으며 기념품 추천부터 여러 이슈들에 대한 말 벗까지 되어줍니다. 익숙치않은 의전이라 어색합니다. 편의점에 음료와 간식을 사러 들어갔더니 끝까지 함께하며 이것저것 추천해줍니다. 물어보니 문화청년체육부에서 매우 엄청 비중있는 행사로 생각한다며, 연신 와주어 고맙다고 인사합니다. 이정도까지해야하나 싶지만, 그래서인지 마지막까지 말래이시아에 대한 따뜻함을 간직하게 됩니다.
다음 포스팅은 아세안의 임팩트투자 현황을 정리한 리포트를 요약해서 공유하겠습니다.
덤으로, 요새 쏘카(socar)가 말레이시아에서 약진 중입니다. 곧 1,000대를 돌파할 거라고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