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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맥스 Max Aug 04. 2020

어디까지 성장해야 하는가 #1

유니콘, 그다음에 대하여

개인과 사회, 조직을 둘러싼 이 시대의 화두를 하나 잡으라면 단연코 '성장'이다. 개인들에게는 평생학습이라는 이름으로, 사회에서는 진보라는 이름으로, 조직에서는 성장률이라는 이름으로 조금은 다르게 보이지만 끊임없이 성장해야 한다는 성장론이 그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저성장'이란 위기를 의미할 정도로 '성장'은 필수 불가결한 것으로 여겨진다. 

성장은 시장 자본주의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됨에 따라 사회 곳곳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시장의 관점에서 성장은 끊임없는 소비시장의 창출과 같은 말이다. 전 세계 인구의 증가, 자유무역을 통한 시장 접근성 강화, 개방을 통한 여러 산업영역의 시장화 등은 끊임없는 성장 신화의 토대가 되었다. 더 이상 성장하지 않는 기업은 동력이나 혁신성을 잃어버린 존재로 묘사되며, 물가상승률이나 산업의 성장률을 하회하는 성장은 제자리걸음이 아닌 역성장으로 평가받는다. 



어디까지 성장해야 하는가?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성장에 대한 고민을 하기 마련이다. '어디까지 성장해야 하나?'라는 피할 수 있는 이 질문은 그리 성공적이지 않았던 나의 몇 차례 창업 경험 내내, 그리고 지금은 임팩트 투자자로서 투자와 액셀러레이팅을 하고 있는 요즈음까지도 나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고 있는 질문이다. 


성장은 '성공'의 불쏘시개다. 어디까지나 성공을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는 성장은 어느새 성공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되어버렸다. 문제는 성공의 기준이 계속 바뀐다는 것이다. 인간의 욕심이 끝이 없듯이, 성공 역시 그것의 달성 여부와 관계없이 상황과 조건에 따라 바뀐다. 월 매출 1억을 달성하면, 이젠 10억이 기준이 되고, 그다음에는 100억이 된다. 세상에 없던 하나의 제품을 출시하고 나면, 그 제품을 개선하고 확장하는 것이 된다. 그리고 세상에 없던 또 다른 제품을 만들어내는 것을 목표로 삼게 된다. 그러다 필연적으로 정체를 마주하게 되면, 도메인에 속해있는 경쟁사이거나, 규모가 비슷한 조직들 간의 비교가 성공의 기준이 된다.(한국이라는 국가로 따지면 30-50 클럽에서의 순위가 될 거다.) 


사실 성공이나 성장은 어떤 혁신을 만들어낼 것인지, 어디까지 만들어낼 것인지를 결정하는 것에서 결정되어야 한다. 성공을 정의해야만, 성장에 대한 나침반이 생기는 것이다. 따라서 앞선 질문의 답은 의외로 쉽다. 어디까지 성장하면 되냐고? 성공할 때까지 성장하면 된다. 그리고 성장의 방향은 변하지 않는 성공의 기준을 잡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러나 통상 이 고민의 끝은 성장하면 성공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 개인들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나 기업은 변화무쌍한 시장, 부족한 자원, 구성원들의 부침 등 여러 요인으로 인해 성공이 아니라 생존에 집중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기도 한다. 성공하기 위해 성장을 도구로 삼아왔지만 어느 순간 성장하고 있는 것이야말로 성공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하게 되는 상황이 연출되는 것이다.   


물론 큰 꿈을 가진 창업자가 큰 혁신을 만들어내고, 그 혁신의 열매를 창업팀과, 고객, 투자자, 사회 등 여러 이해관계인들이 나누어 가진다는 건 멋진 일이다. 혁신을 만들어내는 것 자체가 어려운데, 여러 사람들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규모까지 큰 기업/혁신을 만들어냈다는 것은 더욱 멋진 일이다. 그러나 작은 꿈을 가진 창업가들도 있고, 또 현상 유지를 해나가며 혁신을 만들어내는 곳들도 있다. 



성장의 종착은 유니콘 역?

얼마 전, 정부에서  '아기 유니콘' 40개소를 발표했다. 기업가치 1조 원 이상인 기업을 의미하는 유니콘을 2022년까지 20개 육성하겠다는 중기부 K-유니콘 사업계획의 첫 단계다. 

중소벤처기업부의 '유니콘 기업' 창출 계획의 일부


유니콘은 전설 속 동물이다. 전설에 비유될 만큼 기업가치 1조 원 이상인 기업은 현실에서 보기 드문 기업이라는 것이다. 현재 한국에는 11개의 유니콘 기업이 있을 뿐이다. 작년 12월, 11번째 유니콘 기업이 탄생했을 때는 이례적으로 중기부 박영선 장관이 브리핑을 하기도 했다. 

국내 유니콘 기업 현황. 유니콘이 되는데 짧게는 2년, 길게는 20년이 걸렸다. (2020년 5월 기준)


유니콘에 대한 담론은 창업 생태계에 광범위하게 퍼져있는 로망이다. 창업의 성공, 성장의 끝은 유니콘이라는 상징으로 설명된다. 창업과 벤처 투자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유니콘 탄생의 주역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있다. 


유니콘으로 성장한 기업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각각의 산업에서 경쟁력을 갖고 있는 곳들이다. 커머스, 뷰티, 게임, 패션, 헬스케어 등 그 분야에서는 국내 최고를 달리는 곳들이기도 하다. 쏘카나, 마켓컬리, 하이퍼커넥트 등과 같이 곧 유니콘이 될 후보 기업들도 대기 중이다.  



유니콘이라는 나침반과 규격화의 압력

유니콘은 곧 하나는 성공모델이다. 누구나가 부러워할 성공 모델이 많아지면 또 다른 혁신을 만들기 위해 창업하려는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기대가 반영되어 있다. 그런 의미에서 유니콘은 많은 창업 예비군을 위한 나침반과 같은 역할을 수행한다. 


문제는 그 유니콘이 전설에 비견될 만큼 희귀하다는 데에 있다. 유니콘이 탄생할 확률은 그 해 벤처기업 인증을 받은 기업들의 숫자를 바탕으로 하면 약 0.003%다. 대략 30,000개의 벤처기업 중에서 1개가 유니콘으로 성장했다. (유니콘이라는 말을 처음 이야기했다는 에일린 리는 유니콘이 될 확률이 1% 미만이라고 했다고 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0.1% 혹은 0.01% 미만이라고 이야기했어야 한다.)


그해 벤처투자를 유치한 기업 중 매년 1개의 유니콘이 탄생한다고 해도, 그 확률은 0.1% 미만이다.


롤 모델이 현실에서 모델로서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현실성이 수반되어야 한다. 도무지 모방하기 어려운 롤 모델은 역설적으로 좌절과 포기를 가져온다. 도무지 도달하기 유니콘이 하나의 표준이 되는 순간, 그 규격에 맞지 않는 많은 창업자들이 그 상태로 성공이나 완성이 아니라 끊임없는 도전자 아니면 루저가 되어버릴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유니콘의 다음은? 

나의 우려는 유니콘 담론이 자칫 허망하게 끝날 지도 모르겠다는 고민에 있다. '유니콘이 된 다음에는?' 그다음에는 기업가치 10조 원 이상을 의미하는 '데카콘' 이 목표이자 지향점이어야 하나?라는 질문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유니콘에 투자하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다. 소풍에서 투자한 곳 중에서 유니콘으로 성장하는 소셜벤처가 나오길 간절히 바라고 또 고민하고 있다. 규모가 커진다는 것은 그만큼 많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유니콘이 의미가 없거나 나쁘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투자자로서 나 개인은 물론이고, 투자사로서 소풍 역시 기업가치와 이로 인해 창출되는 사회적가치의 총합이 1조 원을 넘는 '임팩트 유니콘'의 탄생을 희망하고 있다. 규모에서 설명되는 것들이 있기 때문이다. 규모는 통상 '영향력'과 '효율'을 의미한다. 작은 규모에서는 해낼 수 없는 혁신을 해내 주길 바라는 희망과 기대가 포함되어 있다. 


유니콘 담론은 의미 있는 혁신을 만들어내면 시장에서의 뜨거운 반응이 오기 때문에 돈과 규모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는 논리로서 의미가 있다. 따라서 유니콘에 대한 다음 담론은 유니콘이 만들어낸 혁신이 어떤 혁신인지, 그 의미와 가치에 대한 것으로 이어져야 한다. 


규모가 크면 무조건 좋다는 논리야말로 옐로모바일 등의 사례에서 보듯이 건강하지 못한 결과로 이어진다는 것을 우리는 목격하지 않았던가? 얼마 전 타다와 배달의민족을 둘러싼 사회적 논쟁 역시 마찬가지였다. 타다가 정치권으로부터, 배달의민족이 자영업자 등 시민들로부터의 지지를 받지 못한 것은 의미와 가치 중심적인 설득을 충분히 해내지 못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기본적으로 규모가 커지면 영향력이 커지게 되고, 그 규모에 상응하는 책임을 져야 한다.


그래서 정부가 강조하는 유니콘에 대한 이야기가 규모로만 정의되는 것이 우려된다. 최근 임팩트 투자 생태계에서 확산되고 있는 임팩트 유니콘에 대한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끊임없이 성장만을 논하며, 유니콘을 강조하는 것이 마치 내신 및 수능성적 상위 1%로 국내-외 명문대에 입학하는 것을 목표로 공부해야 한다는 것과 같은 논리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상위 1%가 어떤 혁신에 기여하는지, 그래서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져야 한다. 또 상위 1%를 강조하면서 해야 할 것은 나머지 99% 역시 다양한 스펙트럼과 규모, 혁신성을 기준으로 강조해야 하는 일이 아닐까? 그리고 그래야 창업의 허들이 더 낮아지는 것은 아닐까? 



성공과 임팩트에 대한 빈약한 담론

우리 사회는 이미 저성장이 뉴 노멀인 시대로 접어들었다. 성장을 매출이나 밸류에이션으로 정의하는 순간 혁신의 목표나 방향은 끊임없는 성장을 향하게 된다. 그리고 대개의 경우, 끊임없는 성장이란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목격하게 된다. 심지어 인터넷 시대도 저물고 있다는 일성이 미국에서도 나오지 않는가? 


따라서 유니콘에 대한 논의라든지 성장에 대한 논의는 우리는 어디까지 성장해야 하는 가에 대한 논의와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 유니콘이 왜 필요하고 어떤 성장이 의미 있는지에 생각의 깊이나 높이가 곧 창업과 투자를 통해서 만들어나갈 수 있는 혁신의 기초이기 때문이다. 더불어 유니콘에 못지않게, 규모는 작지만 지속 가능한 기업들, 강소기업들에 대한 담론과 함께 만들어져야 한다. 또 네이버나 카카오를 제외하고는 새로운 대기업이 나오지 않는 한국의 기업 환경과 산업 구조에 대한 논의 또한 이어져야 한다. 


얼마 전 나와 소풍에 있었던 일이다. 소풍의 포트폴리오 중 한 곳인 A사의 exit을 경험했다. 서로 fit이 잘 맞는 B사와 M&A를 한 A사에 대한 투자자로서의 최종 멀티플은 18배. 소풍은 A사의 첫 투자사로서는 높은 멀티플로 적지 않은 금액을 회수했지만, 여러 질문들이 떠나지 않는다. 이 것은 성공인가 그렇지 않은가? 


현재까지 이 질문에 대한 나의 답은 '모른다'이다. 


사실 이 고민은 작년에 11배의 멀티플로 exit을 경험하면서부터 가져온 고민이었다. 투자사에겐 exit 경험이 있다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출자자 및 주주의 자본을 잘 지키고 또 극대화할 수 있다는 능력의 척도와도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공이라는 생각이 선 듯 들지 않는 것을 보니, 더 성장할 수 있었다거나, 성장을 위해 좋은 선택인지 모르겠다거나 하는 미련이 남나 보다. 어쩌면 유니콘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A사가 스스로의 힘으로는 임팩트 유니콘이 되지 못해 아쉬움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임팩트 투자자로서 내가 가진 언어나 기준이 얼마나 빈곤한지... 성공에 대해 나와 동료들이 갖고 있는 생각이 얼마나 얕은 것인지... 결국 이 빈약한 토대를 단단하게 만드는 것이야 말로, 유니콘이나 임팩트 유니콘의 의미를 찾아가는 일이 아닐가 한다. 


짧은 경험으로 미루어봐도 창업자들이 만들어내는 혁신이야 말로 우리 사회의 미래인 것 같다. 하지만 그전에 이 모든 것들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야기하는 임팩트 담론이 필요하다. 매출 규모로만 이야기하는 유니콘이 아니라 여러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유니콘, 많은 사람의 삶에 혁신적 변화를 줄 수 있는 유니콘, 우리 사회의 지속가능성을 더 높여주는 유니콘, 지구적 관점을 보유하는 유니콘. 생각만해도 가슴이 떨리는 이런 유니콘들에 대한 이야기들이 이어져야 한다. 이런 유니콘이 왜 나오지 않는지, 왜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는지에 대한 고민을 나누고 싶다. 우리의 성장이 방향을 잃지 않고 최적 지점에 도달할 수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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