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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맥스 Max Aug 13. 2020

대표님, 소풍갑시다.

이 수많은 문제들 역시 삶의 한 순간

소풍은 투자 후, 수개월간 매주 혹은 격주 단위로 액셀러레이팅을 진행한다. 그렇게 3개월이 지나면 또다시 5~6개월 동안은 월 단위로 온오프라인 미팅을 진행하며 팀의 성장을 돕는다. 그렇게 한 명의 창업자를 수시로, 긴 시간에 걸쳐서 만나다 보면 자연스럽게 알게 되는 것이 있다. 바로 그날의 기분이나 행복도와 같은 감정과 관련된 부분이다.



오늘 만난 창업자 역시 마찬가지였다. 세 번째로 얼굴을 마주하는 자리, 어쩐지 창업자의 낯 빛이 어둡고 유난히 피곤해 보였다. 어제 잠을 못 잔 건가? 무슨 걱정이 있나?라는 의문이 드는 찰나 창업자는 앉자마자 사업 이야기를 늘어놓기 시작한다.



이럴 때면, 브레이크를 잡는다.

'대표님, 마음이 많이 바쁘신가봐요. 앉자마자 사업 이야기를 바로 꺼내시네요. 숨 좀 돌리고 가시죠. '



잠시 사업 이야기를 미뤄두고 대표에게 이야기를 건넨다. 이어진 이야기들은 삶에 대한 이야기들이다. 비가 많이 왔는데 괜찮았는지, 식사는 뭘 했는지, 잠을 잘 못 주무시는지, 요새 즐거웠던 순간은 언제인지 등과 같이 사업과 전혀 관계가 없는 이야기들을 늘어놓는다 말이다. 마치 친한 친구나 가족과 수다를 떨듯이.



창업은 야구와 비슷한 점이 많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창업가는 마운드에 오를 때면, 홀로 상대팀 타선을 모두 상대해야 하는 투수가 된다. 동료들 모두가 창업가의 두 어깨를 주목한다. 그뿐인가 타석에도 들어서야 한다. 두 눈 말똥말똥하게 성과를 만들어오길 바라는 동료들의 피땀(때론 눈물)과 투자자, 가족들의 기대를 모두 짊어지고 홈런을 쳐야 하는 타자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창업자들을 만날 때면 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 전에 시시콜콜한 이야기로 미팅 시간을 내내 채우기도 하고, 아예 서울숲으로 산책을 나가기도 한다. 사업의 현황에 관심이 없다거나 당면한 과제들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사업 성과에 대한 압박, 투자를 유치해야 한다는 부담, 팀원들과의 불화, 그간 쏟아온 시간과 에너지들까지 창업자를 경직되게 하는 문제들로부터 조금은 떨어져서 여유를 찾길 바라기 때문이다. 오늘의 실패, 이번 주의 실패, 이달의 실패 등 전투에 지더라도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다는 여유를 가져야만 하기 때문이다.



회사 전체의 운명을 짊어져야하는 창업자도 한 명의 인간이다. 자식과 같은, 아니 더 나아가 나의 분신과 같은 회사의 오늘 매출, 고객 반응에 따라 감정은 희로애락의 롤러코스터를 탄다. 통장의 잔고는 빠르게 줄어가고, 믿고 의지하던 동료가 퇴사하겠다는 말을 전할 때는 걱정과 실망, 때로는 분노의 기색이 역력한 표정을 감출 수 없다. 마케팅의 성과로 목표로 한 매출을 달성한 기쁨도 잠시 비슷한 수준에 있던 경쟁사가 우리보다 한 발 앞서 간다 치면 가슴은 다시 타들어가기 시작한다. 창업자는 그렇게 몸속에 사리가 생길 것만 같았던 많은 순간들을 뒤로하고 투자자와 얼굴을 마주한 것이다.



그런 순간에 창업자들에게 밥은 먹었는지, 그간 어떻게 지냈는지를 묻는다. 지난 주말에 무슨 영화를 봤는지, 무얼 먹었는지, 휴가는 어디로 다녀왔는지도 단골 소재다. 그렇게 두런 두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기분 탓인지 창업자의 눈 빛이 조금은 부드러워지고 미간의 주름도 줄어든 것만 같다. 어쩐지 경직되어 있었던 두 어깨도 여유로워진 것만 같다. 이 질문들은 다분히 의도적이다. 창업자들이 산적한 문제들에서 벗어나 '이 수많은 문제들 역시 삶의 한 순간일 뿐'이라는 것을 떠올리게 되기를 바라는 장치다. 



창업도 삶의 한 순간이다. 삶을 이어가기 위해 사업을 하는 것이 창업가들이다. 그리고 사업의 성패와 관계없이 삶은 계속되어야 한다. 그렇게 힘을 빼고, 조금의 여유가 생기고 전체 상황을 관조하고 멀리 볼 수 있는 시야가 생겼을 때 성공 확률도 1%쯤은 더 높아진다고 생각한다.



경직될 수밖에 없는 창업자들에게 수시로 해주는 말이 있다.

"때론 다 먹고살자고 하는 일인데, 지나치게 스스로를 몰아붙이진 마세요. 식사도 제때에 챙겨 드시고, 휴가도 가셔야 해요. 운동도 꾸준히 하시고요. 대표님이 아무리 열심히, 그리고 잘한다고 하더라도 의도한 결과를 얻지 못할 수 있어요. 사업엔 운과 타이밍이라는 요소도 중요하거든요. 누구도 어떤 사업이 성공할 것인지 알 수는 없어요. 그저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는 겁니다. 그러다 실패하면, 까이꺼 다시 시작하면 돼요. 또 하면 돼요. 인생은 계속 이어지더라고요"



오늘 만난 창업자의 한 마디가 기억에 남는다.

"소풍이라는 이름이 참 좋은 거 같아요"



누가 지었는지는 이름 참 좋다. 오늘도 창업자와 이야기를 시작한다. '대표님, 소풍 가는 마음으로 사업을 해볼까요?!'라는 마음가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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