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당분간 시간을 좀 갖자

실패한 원고를 마주하는 방법

by 나른히
공모전에 또 떨어졌다.

몇 주 전, <작가가 되지 못한 작가의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밝힌 그 공모전이다.

이전에 써놨던 원고를 다듬어서 제출했는데, 심사위원 눈에는 아무리 다듬어도 쓸모없는 녀석이었나 보다(사실 나도 긴가민가했다).

이로써 올해도 꽝.

탈락에 놀란 마음이야 차차 가라앉히면 되겠지만, 그나저나 이 원고는 어쩌지?


1. 원고에 무슨 잘못이 있었는지 살펴보자.

대부분 자신의 원고에 어떤 한계가 있는지 대략 파악하고 있다. 한계를 알면서도 그것을 어찌하지 못할 뿐. 어떻게 손대야 할지 겁도 나고, 또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아 귀찮았다면 이참에 원고를 다시 읽어보자. 어색한 부분이나 설명이 부족한 부분이 잡힌다면 성공. 다음번에 이 부분을 수정해서 제출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나의 경우에는 마감일에 맞춰 급하게 내다보니, 설명이 부족한 부분이 꽤 많았다. 주인공이 갑자기 사랑에 빠지는 경우가 부지기수. 아니면 주인공의 심경이 며칠 사이에 들쭉날쭉 달라지기도 했다. 변덕이 심한 사람이 봤어도 절레절레할 정도로. 급하면 체하기 마련, 원고에도 분명 더부룩하게 얹힌 부분이 있을 것이다.


2. 한계는 보이지만 고칠 엄두가 나지 않을 때

나는 이런 경우가 많았다. 분명 재미도 없고 감동도 없고 한계가 명확히 보이지만, 도저히 고칠 엄두가 나지 않았다. 원고보다 나의 머릿속을 먼저 고쳐놔야 할 것 같았다.

이럴 때 나는 원고를 가만히 내버려 두었다. 원고와 거리를 둔 것이다. 원고를 잊고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이게 오히려 많은 도움이 되었다. 생각이 확장되고 내가 놓쳤던 부분을 다른 곳에서 어쩌다 발견할 수 있었다.

글은 쓰되 써놓았던 원고와 상관없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렇게 한참이 지난 후에 원고를 열었을 때, 원고는 나에게 꽤 많은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러면 글을 다듬을 용기가 생긴다.


3. 원고가 아무런 대답도 해주지 않을 때

아무리 노력해도 원고에서 도저히 해답이 보이지 않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러면 원고를 ‘잠시만’ 포기하자. 포기하되 지우지 말고 한쪽 폴더 내에 고이 간직하자. 중요한 것은 여기서 문서 파일에 암호를 ‘함부로’ 설정하지 않는 것이다. 설정하더라도 시간이 꽤 오래 지나도 금방 알아챌 수 있는 것으로 하자. 안 그러면 영원히 잊히다 결국 지워지고 말 것이다.

초창기 글은 어설프기 마련이다. 그래서 나도 처음에는 어설픈 글을 다시 마주하기 싫어 공모전에 떨어지기만 하면 무작정 지우기에 바빴다. 글이 너무 서툴러 도저히 쓸모가 없어 보여도 함부로 지우지 말 것. 언젠가 도움이 될 일이 생길 수 있고, ‘그때 나는 이런 생각을 했었구나’ 하고 자신을 돌아볼 기회를 마련해줄 수도 있다.


jamie-street--d6kTMGXV6E-unsplash.jpg 새해는 모두가 반짝반짝 빛나기를 바라며(Photo by Jamie Street on Unsplash)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하자.

실패한 글을 품에 안고 오랫동안 끙끙 앓지 말자. 차라리 ‘새 문서’를 켜고 새로운 이야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해보자. 여기서는 계속 실패했다고 말했지만, 사실 공모전에 떨어졌다고 해서 무조건 실패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저 공모전과 원고의 방향이 서로 맞지 않았을 수도 있다.

새로운 이야기는 다시 글쓰기를 시작할 용기를 준다. 당신이 원고를 지우지 않는 한, 새로운 이야기를 시작했다고 해서 써놓았던 글을 버리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건은 글쓰기 자체를 포기하지 않는 것. 앞서 원고와 시간을 두자고 말했지만, 그 시간에 글쓰기를 너무 버려두어서는 안 된다. 그에 도움에 될 만한 책을 읽거나 다른 글도 조금씩 써가며 글쓰기에 대한 흥미를 잃지 않아야 한다. 그것도 버겁다면 ‘언젠가 이런 글을 써야지’ 하고 머릿속에서 소재를 굴려보며 자신을 북돋아 주자.

글쓰기도 마음먹기에 따라 달라지는 일인지라, 내가 손을 놓아버리면 그뿐이다.



커버 사진: Photo by Arren Mills on Unsplash

매거진의 이전글쌓여가는 수첩, 늘어나는 아쉬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