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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른히 Feb 07. 2022

우리에게 과연 기회가 없을까?

《요즘 애들》을 읽고

《요즘 애들》에 처음 등장하는 작가의 말의 부제는 다음과 같다. 우리에겐 기회가 없다. 한 저널리스트의 말을 인용한 부제는 절망감보다는 호기심을 안겨 준다. 우리는 왜 기회가 없는 것일까. 이 책은 서두에서 밀레니얼 세대의 불안정한 현실을 짚고 넘어간다. 이러한 불안감은 코로나19로 더욱 증폭된 듯하다.     


우리는 일자리가, 혹은 일자리를 제공하는 회사가, 오래갈 것이라 기대하지 않는다. 많은 사람이 언제든 빚더미의 폭풍에 집어삼켜질 거란 두려움 속에 산다. 우리는 출산과 육아에서, 사랑하는 이와의 관계에서, 삶의 재정 문제에서, 일종의 평형 상태를 유지하고자 고투하다가 결국 나가떨어지고 만다. 그렇게 우리는 불안정에 길들여졌다.
- <작가의 말>에서 발췌     


출처: 《요즘 애들》(RHK코리아, 2021년)


이 책은 출간 당시부터 나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선명한 빨간색의 유광 코팅이라니. 서점에서 종이책을 여러 번 펼쳐보고서는 정작 독서는 전자책으로 했다. 알라딘의 사은품이 눈앞에 아른거리는 바람에 그만. 다행히 일반적인 교양도서로 구성이 단순한 편이어서 별문제 없이 완독했다. 

도서명 그대로 이 책은 ‘요즘’의 이야기이지만, 결코 ‘애들’만의 이야기는 아니다. 밀레니얼 세대의 현실을 담아냈지만, 모든 세대가 그 현실을 알아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국 우리 모두는 요즘 시대를 지나가고 있으며, 더 이상 밀레니얼의 번아웃을 투정으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밀레니얼은 자신이 영원히 일하며 살 것이고, 죽을 때까지 학자금 부채를 갚지 못할 것이며, 아이를 키우느라 돈을 탕진해 물려줄 재산이 없는 채로, 세계적 대재앙에 휩쓸려 죽을 거라 예측되는 현실을 받아들이며 산다. 과장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게 ‘뉴 노멀(New Normal)’, 새로운 정상이며 이런 종류의 감정적·신체적·재정적 불안정의 한복판에서 개개인은 가히 압도적인 무게를 짊어지고 살아가야 한다.
- <머리말>에서 발췌


이 책을 읽으며 깨달은 사실은 번아웃은 곳곳에 만연하다는 점이다. 알다시피 베이비붐 세대가 직면했던 1980~1990년대와 달리, 지금은 사회구조적으로 직업과 계급의 안정성이 위협받고 있다. 불확실성 속에서 지위를 잃지 않고자 고군분투해야 한다. 이는 ‘요즘 애들’에 그대로 투영된다.

‘이력서를 위한 학창시절을 보내는’ 청소년부터 좋은 대학에 입학했지만 스펙이라는 또 다른 차별화를 마주한 대학생, 번듯한 직장을 찾으려다 낙담하고 어떻게든 생계를 꾸려 나가려는 사회 초년생, 그리고 ‘열정’이라는 명목으로 일상을 마구 침범하는 직장생활에서 시름하는 직장인까지. 어렸을 적부터 ‘성공’이라는 가치를 향해 달려가던 그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그대로인 평판에 무너진다.     


밀레니얼은 자신을 걸어 다니는 이력서로 완전히 개념화한 최초의 세대다. (중략) 이러한 압박은, 어떤 대가를 치르든 대학에 가기만 하면 번영과 안정을 누리는 중산층의 삶에 가까워질 수 있다는 인식 덕분에 존재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학자금 대출에 짓눌린 채 능력과 관련 없는 일을 하는 수백만 명의 밀레니얼들이 증언하듯, 주위 모두가 믿는 신조라고 해서 그게 반드시 사실인 것은 아니다.
- <3장 그래도 대학은 나와야지> 중에서    

 

또한 더 감시하고 보호하는 ‘집중 양육’의 환경에서 부모와 자녀는 번아웃에 시달린다. 자녀만 감시와 보호를 받는 것이 아니다. 부모도 사회의 여러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베이비붐 세대의 걱정을 물려받은 요즘 부모들은 ‘좋은 부모’라는 기준을 두고 자신을 계속 다그친다.  부모는 육아의 짐을 더욱 무겁게 짊어지고, 그러한 부모로부터 분에 넘치는 감독과 보호를 받은 자녀는 훨씬 일찍 어른이 된다. 


중산층 아이들은 점점 더 이른 시점에 작은 성인이 된다. 그러나 ‘어른 되기’라는 표현의 유행에서도 알 수 있듯, 그들은 어른이 되어 맞닥뜨릴 현실에 잘 대비되어 있진 않다. 그들은 어른들과 많은 시간을 보냈고, 어른이 수행하는 일의 외적 특징을 배웠으나, 덜 감시받고 덜 보호받은 유년기에서 얻을 수 있는 독립성과 강한 자아감을 가지지 못한다.
- <2장 가난부터 배우는 아이들>에서 발췌     




이 책은 주로 미국의 사례를 들어 주장을 이어가지만, 결코 우리와 무관하지 않다. 사회가 어떻게 사람들의 안정을 빼앗고 효율을 추구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이미 익숙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작가의 통찰력과 다양한 인용 및 일화로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다. 힘들어도 웃으면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강박으로 점철된 ‘좋아하는’ 일들에서 벗어나, ‘그럭저럭 괜찮은’ 삶으로 돌아간 사람들의 일화는 많은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 평생 단 하루도 일을 하지 않게 된다”라는 수사법은 번아웃으로 빠지는 덫과 같다. 노동을 열정의 언어로 은폐하며 우리는 우리가 하는 일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지 못한다. 그건 그냥 일이지, 우리의 인생 자체가 아닌데도 말이다.
- <4장 좋아하는 모든 게 일이 되는 기적>에서 발췌


판단하건대 이 책의 주장은 이렇다. 스스로 문제를 깨닫고 삶의 방식을 바꿔 나가야 한다. 물론 그런다고 해서 기회가 생길지는 알 수 없다. 온통 불확실한 세상이므로. 그러나 중요한 것은 삶을 재설정할 때 번아웃에서 그나마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다.



커버 사진: Photo by Anders Jildén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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