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팔아 물감을 사는 화가
나는 화가다.
본업은, 말 그대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다.
그런데
어느 날 물감이 떨어졌다.
물감은 비싸다.
그림도 안 팔린다.
전시도 없었다.
갤러리에서 연락도 없었다.
그래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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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단순했다.
어차피 혼잣말처럼 써온 메모들,
살짝 손 보고 온라인에 올렸다.
반응은 기대도 안 했다.
그런데 좋아요가 붙었다.
스크랩이 되고
댓글이 달렸다.
“작가님, 다음 편 기다릴게요.”
“이거 그림 같아요.”
“문장이 붓터치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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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나는 글을 팔아서
물감을 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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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웃기지 않나?
글을 쓰기 시작한 건 물감 살 돈이 필요해서였는데,
글이 팔리니까 이제는
고급 수동 타자기를 살 여유까지 생긴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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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색 클래식 수동 타자기.
반짝이는 키캡,
지문이 남지 않는 단단한 테두리,
종이 밀어 넣는 고무 롤러.
나는 글을 한 자 한 자 타이핑했다.
오타가 나면 화이트로 지웠다.
한 문장을 치고, 손을 멈추고, 숨을 들이마셨다.
이건 그냥 글이 아니었다.
회화였다.
나는 여전히 화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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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글을 수제 종이에 타이핑해서,
하단에 내 이니셜과 날짜를 적었다.
액자에 넣고 벽에 걸었다.
그리고 그걸 본 누군가가 말했다.
“이거, 그림인가요?”
“아니요,” 내가 대답했다.
“이건 글이에요. 그런데 난 화가거든요.”
“그러니까 이건 그림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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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요즘 타자기로 글을 치고,
그걸 그림처럼 프레이밍 하고,
가끔은 판매도 한다.
이건 미친 루틴이다.
글을 써서 물감을 사고,
타자기를 사고,
그 타자기로 그림 같은 글을 만들고,
그걸 팔아서 또 물감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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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화가다.
지금도 그렇다.
붓을 쥐든,
타자기를 두드리든,
나는 여전히 회화하는 사람이다.
물감 살 돈이 필요해서 시작한 글쓰기였지만,
이제는 이 활자가
내 화폭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