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난포의 공포

zero, 0%

by 해나엘

한동안 글을 쓰고 싶지 않았다.

두 번째 차수는 난자를 보지도 못하고 끝났다.

마취에서 깨어나니 선생님이 직접 내 회복실로 왔고,

난포를 채취했지만, 공난포라 난자를 채취할 수 없었다고 한다.


공난포는 난포가 정상적으로 자랐지만,

안에 난자가 제대로 들어있지 않은 걸 말한다.

속 빈 강정, 씨 없는 수박. 뭐 그런거다.


막 마취에 깨어 첫 번째로 들은 소식이 공난포였다.

얼떨떨했다. 내가 뭘 들은 거지?

마취가 제대로 깨지 않은 걸까?


현실을 부정하고 싶다가

눈물이 주르륵 났다.


오빠 앞에서는 울기 싫어서 차라리 계속 울었다.

사방이 막혀있는 이곳에서 그냥 다 울고 털어내고 싶었다.


마음이 잘 진정되지 않았다.

울만큼 다 울었다고 생각했는데,

간호사 선생님이 오니 또 눈물이 줄줄 났다.


선생님도 퍽 당황스러우셨을 거다.

아니, 나처럼 우는 사람이 적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선생님은 다음에는 더 잘 되거라고 다독여주었다.

원하면 더 추스리고 나와도 된다고 했다.


그치만 빨리 나가고 싶었다.

마취가 깨 말똥말똥한 상태로 옆 침대에서 들리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다.

내 옆 침대에서는 이번에 10개를 채취했고, 이온음료를 잘 챙겨마시라는 말이 들렸다.

난포를 많이 채취할 수록 복수찰 위험이 있어 이온음료를 필수로 마신다.


나는 직접 들어본 적 없는 말이었다.

많이 채취할 난포도 없을 뿐더러 이번에는 공난포였는걸.


현타맞은 기분으로 나왔다.

남편을 보니 또 눈물이 줄줄 난다.

그러다가 혼자 생각한다.

운다고 해결될 일은 없어.

운다고 없던 난자가 생기지도 않는다.


정신을 차리고 솥밥집으로 가서 배를 채웠다.

전날부터 아침까지 금식한 터라

그와중에 밥맛은 또 왜 이리 좋은지.


오후엔 부모님이 집에 왔다.

난 왜 지난번처럼 채취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는지.

그래도 혼자 있는 것보단 나을 듯해서 약속대로 집으로 오시라고 했다.

부모님 앞에서도 질질 짤까봐 걱정이었는데,

나는 생각보다 태연한 척을 잘했다.

그리고 실제로 엄마아빠를 보니 마음이 괜찮아졌다.

엄마아빠와 함께 차를 마시고, 같이 웃고 떠들고.

슬픔은 웃음으로 지워간다.


공난포여도 괜찮았다.

다음이 있으니까.

괜찮은 줄 알았다.


그런데 마음은 한없이 밑으로 굴을 파고 들어갔다.

채취 후에는 며칠간 수영도 못하니

스트레스를 풀 길도 없었다.


그 와중에 회사도 날 미치게 했다.

빨리 이곳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난 그거조차 내 맘대로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또 굴을 파고 들어간다.

내맘대로 할 수 있는게 하나도 없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건

내 마음 뿐이라는 생각에 도달하자

마음을 고쳐먹기로 한다.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줄 사람도 나.

나를 불행하게 만들 사람도 나.


울지말자.

스트레스 받지 말자.

나를 행복하게 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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