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에게 말해 주고 싶은 것

빈곤이 널 고달프게 할 때

by 문 별

아이와 침대에 누워 잠들기 전 이런저런 이야기 나누는 것을 좋아한다. 대부분 오늘 있었던 일 들, 느낀 것들을 얘기하는데 어느 날은 나중에 커서 하고 싶은 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나는 커서 돈을 엄청 많이 벌고 싶어"


아이의 말에 조금 놀랐다. 나는 아마 아이가 "경찰이 되고 싶어", "여행을 많이 하고 싶어" 등 평범한 대답을 할 거라고 예상했던 것 같다. 이제 9살이 된 아이가 '돈'을 이야기할 줄은 몰랐다. 아이는 돈이 많으면 뭐든지 원하는 걸 살 수 있고 행복할 것 같다고 했다. 사실 어른인 나도 원하는 것이긴 하다. 하지만 좀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나의 아이가 어떤 소중한 무언가를 알기도 전에 돈을 최우선 순위에 둔 건 아닐까 하는 걱정도 들었다. '돈이 많다고 무조건 행복한 건 아니야'라는 진부하지만 진리인 이 말을 해줄 수도 있었지만 그 말을 쉽게 할 수가 없었다. 그러기에 나는 아주 오랫동안 돈 때문에 고생을 했고 고단했었다. 그 누구보다 많이 돈에 갈증이 있고 갈망했었다. 그랬던 내가 '돈이 전부는 아니야'라고 말하는 건 가식 같았다.


유년시절, 찢어지게 가난해서 밥을 못 먹을 정도는 아니었어도 절대 넉넉한 적이 없었던 아니 더 솔직히 말하면 매번 부족하고 모자람이 많았던 우리 집. 나는 우리 집이 가난하다는 사실을 친구들이 알까 봐 전전긍긍했다. 쉬는 시간에 매점 가자는 친구들에게 괜히 배부른 척, 간식 생각이 없는 척, 다이어트하는 척 온갖 핑계를 대며 피해 다녔고 학교에서 저소득층 가정에게 지원해 주는 급식비를 누구도 모르게 하려고 선생님께 말하지 말라며 부탁드렸다. 어린 나는 가난을 창피해하고 부끄러워했다.

대학을 다닐 때는 등록금을 마련하려고 주중, 주말 통틀어 쉬는 날 없이 아르바이트를 했고 악착같이 공부해서 장학금을 받았다. 그러고도 모자라 점심으로 김밥만 먹으며 겨우겨우 학교를 다녔다. 20대의 나는 멋지고 희망찬 미래를 꿈꾸는 것이 아니라 생활고에 허덕이며 악착같이 버티는 벅찬 시간을 보냈다.

가난은 단순히 돈이 없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나에게 주어진 빈약하고 부실한 환경은 내게 많은 제한을 주었고 그로 인해 스스로가 마음에 굴레를 만들어 벗어나지 못하는 속박을 만들었다. 언제쯤 나는 여기를 벗어날 수 있을까? 도대체 얼마가 있으면 행복한 걸까? 돈이 많으면 행복한 건 맞는 걸까? 살아가는 동안 내게 어떤 기회가 오긴 할까? 돈 없이 즐겁고 행복한 인생이 가능한 걸까? 고달픈 시간들을 보내면서 수없이 많은 물음에 대해 생각했다. 하지만 답을 알 수가 없었고 마음까지 빈곤하게 할 뿐이었다.

매 순간 지쳐서 나가떨어질 것 같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가난해서 빨리 꿈에 다다랐다. 언론영상을 복수전공으로 하면서 영상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주변 친구들은 ‘아나운서가 되고 싶다, PD가 되고 싶다, 작가가 되고 싶다’ 며 대학 4학년에 들어서자 하나같이 언론고시를 준비했다. 토익을 공부하고 방송사 시험을 준비하는 친구들 틈에서 나는 취업이 한시가 급했다. 이제 번듯한 돈벌이를 해야만 했다. 우여곡절 끝에 방송사에 FD로 입사했다. 말이 FD(보조 연출자)이지 방송사에서 온갖 잡일을 떠맡아하는 자리이다. 그럼에도 그 자리가 정말 간절했다. 일을 구한 지 한 달이 거의 다 되어갔고 일을 구하지 못하면 다음 달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했기 때문에 면접자리에서 나의 절실함은 극에 달아 있었다. 나중에 면접 보신 국장님께서 나를 보더니 절실하다 못해 절박해 보여 뽑았다고 하셨다. 그 절박함을 잊지 말고 끝까지 버텨보라고 덧붙이셨다. 그렇게 꿈꾸던 방송사에 입성할 수 있었다.

볼품없고 중요한 일도 아니지만 누군가는 꼭 해야 하는 일이라고 여겼고 내가 하는 허드렛일도 한 시간의 완성된 영상에 보탬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버텼다. 성실하고 열심히 하는 나를 어여삐 여기는 선배, PD 님들이 조금씩 생기면서 조연출로 승진도 하였다. 일하는 동안 영상 말미에 올라가는 엔딩 크레디트에 적힌 내 이름을 볼 때마다 뿌듯하고 기뻤다. 내가 만든 영상이 전국에 방송될 때는 가슴이 벅차고 설레서 이런 게 행복인가 싶었다. 절실함으로 무장된 나의 버팀이 시간이 지나자 내 능력이 되고, 나를 알아봐 주는 사람들도 만들었다. 학자금 대출을 갚느라 돈은 버는 족족 사라져 버렸지만 내가 스스로 만든 성실함, 능력, 인정 이런 것들이 나의 힘이 되고 진짜 자산이 되어 줄거라 믿으며 또 하루하루를 살아냈다.

먹고사는 것이 바빠 언감생심 연애는 꿈도 못 꿨다. 누군가 호감을 보여도 나는 연애를 할 상황이 못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 시기에 그를 만났다. 어느 모임에서 만난 그는 취준생이었고 나에게 이것저것 방송사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하는 것이 그도 나처럼 절실해서 일거라고 생각이 들어 귀찮지만 대답을 곧잘 해줬다. 어느 날 그는 공짜표가 생겼다며 영화를 보자고 했다. 그렇게 나의 연애가 시작되었다. 우리는 둘 다 가난했다. 공짜표로 영화를 보고 커피 값도 아까워 매번 공원을 걸었다. 그와 데이트를 한 날은 다리가 후 달거릴 정도로 아팠고 시간이 지나자 이제 더 이상 우리 주변에 걸어 볼 공원도 남아 있지 않았다. 영화감독이 꿈이었던 그는 방송 관련 일로 취직하긴 했지만 그 시절 세상은 우리에게 경험과 배움을 베풀었다는 명목 하에 열정 페이를 강요하였고 그 일에 우리의 젊음을 갈아 넣었음에도 한없이 부족하고 쪼들리는 생활을 결코 벗어나지 못했다. 위태롭게 이어지던 연애는 그가 백기를 들면서 끝날 뻔했다. 자신에게 연애는 사치인 것 같다며 헤어지자고 했다. 돌아선 나는 백번 동감했으나 이렇게 헤어지긴 싫었다.

그는 내게 처음 사랑을 말해준 사람이었다. 돈이 없는 와중에도 장미 한 송이를 사서 내게 주는 사람이었다. 사는 것보다 맛있지도 멋있지도 않지만 내게 주려고 오븐도 없으면서 프라이 팬에 쿠키를 만드는 사람이었다. 무엇을 하는 것보다 누구와 있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알려준 사람이었다. 나 역시 연애를 하면서도 비참하고 힘들고 버거웠던 순간들이 많았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그 사람으로 인해 따뜻하고 행복했던 순간들이 있었다. 그 순간들은 돈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그저 함께 함으로 인해 이루어진 시간들이었다. 이후로도 빈곤한 현실에 연애가 가당키나 한지 고민하며 계속할지 늘 시험에 들었지만 그래도 함께 있으면서 서로 힘든 마음을 조금씩 기대고 위로받았다. 사람은 힘들고 지칠 때일수록 마음을 나누는 이와 함께 해야 한다. 홀로 서있기에도 위태로운 현실에 누군가가 더해진다는 것이 짐처럼 여겨진다 하더라도 외롭고 고달픈 마음을 혼자 견디지 않고 누군가와 나눌 때 고약한 현실을 좀 더 잘 견딜 수 있다는 것을 그와의 연애를 통해 알게 되었다.

우리는 결혼을 했다. 아이도 둘이나 낳았다. 요새 사람들은 혼자 벌어먹고 살기에도 벅차 결혼을 하지도 아이를 낳지도 않는다고 뉴스에서 가끔 듣는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다 하더라도 굳이 아이를 낳아 자신의 삶의 질을 떨어뜨리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말도 여러 번 들었다. 그 마음을 십분 이해한다. 내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들었던 과거의 나도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으니까. 누가 누구의 삶을 책임질 수 있을까. 가난하면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은 모두 죄짓는 일이라고 여긴 적이 있었다.

사실 그 생각은 지금도 남아있다. 우리 아이가 나처럼 주어진 환경의 빈곤함과 열악함으로 인생의 고됨을 너무 빨리 알고 스스로가 미리부터 자신에게 제약을 두고 움츠러들까 봐 두렵다. 답도 없는 많은 질문 속에 잠식되어 날개를 피기도 전에 주저앉을까 봐 걱정이 된다.

아이가 바라는 꿈처럼 부자가 되어 원하는 것을 마음껏 사고 행복까지 한다면야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말해주고 싶다. 그 꿈을 설사 이루지 못한다 해도 괜찮다. 분명 괜찮을 것이다.

돈이 없어서 많이 힘들고 고단했던 시절을 겪었지만 그랬다고 해서 인생 전체가 불행하지 않았다. 가난하다고 해서 중요한 기회가 오지 않는 것도 아니고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인생의 가치 있고 좋은 어떤 순간들은 돈이랑 상관없는 것들도 많이 있다.

경제적으로 힘들다는 것은 인생의 많은 제약과 고난을 주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마음까지 빈곤할 필요는 없다. 힘든 순간을 버틴 후에 얻는 값진 것들에 더 주목했으면 좋겠다. 스스로 만든 가치 있는 것들로 자신이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40대인 나는 지금도 넉넉하고 넘쳐나는 것들과는 거리가 멀다. 그래도 때때로 행복하면서 인생을 즐기며 잘 살고 있다. 결코 만만치 않았던 지난 삶을 어떻게든 버티고 견딘 내가 앞으로의 인생도 그렇게 잘 걸어갈 수 있지 않을까? 그러니까 돈이 없어서 좀 고달픈 인생을 살게 된다 하더라도 가치 있는 순간을 위해 부딪치고 넘어지고 깨지고 좌절하면서 어떻게든 살아보라고 아이에게 얘기해주고 싶다. 그리고 네가 외롭고 힘들 때 그 마음을 나눌 수 있도록 내가 기꺼이 너의 옆에서 함께 할 것이라고 꼭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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