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프티 데이 (Mufti Day)
영국에 처음 와서 아이들을 유치원에 보내며 영국 교육과 문화를 접할 때 낯설고 당황했던 기억이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머프티 데이(Mufti Day)'라는 행사였다.
학교에서 보내온 레터에 머프티 데이에는 교복 대신 자유 복장을 입고 아이 편으로 1파운드를 보내달라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또한, 아이들 손에 전달된 1파운드를 모아 다른 기관을 돕는다는 추가적인 설명도 있었다.
그러나 당시 영국 교육과 문화에 익숙하지 않았던 나는 그 내용을 한참을 바라보며 이해하기 어려워했다.
정보가 넘쳐나는 지금이었다면 아마 바로 ChatGPT 씨에게 물어봤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때는 한참을 들여다봤다.
내가 이해하지 못했던 이유는 단지 영국의 문화가 낯설었기 때문만은 아니었던 거 같다.
한국에서 자란 나는 기부라는 개념이 나와는 동떨어진, 기업가나 부유한 사람들이 거액의 돈을 통 크게 한 번에 내놓는 것으로만 인식하고 있었다. 아이의 작은 손에 들린 1파운드로 기부를 한다는 것이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다 왜 교복 대신 사복을 입으라고 하니 말이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깨달았다. 학교에서 정해진 규칙을 잠시 벗어나 아이들에게 자유로움을 주되, 그 자유의 대가를 다른 사람을 향한 작은 베풂과 선행으로 대신하라는 뜻이라는 것을.
영국에서는 기부라는 의미가 금액의 크기가 아니라 어릴 때부터 몸과 마음에 심어주는 '귀한 1파운드의 기부'였다.
지난주 금요일 둘째 학교에서도 푸드뱅크(Feltham Food Bank)를 위한 물품 기부를 진행한다고 했다.
특히 식용유, 커피, 설탕, 통조림 과일과 채소, 통조림 고기, 말린 렌틸콩과 병아리콩, 강낭콩, 채소 누들이 필요하며, 모든 물품은 견과류가 포함되지 않아야 한다고 추가설명이 덧붙었다.
더불어 교복 대신 자유 복장을 입고 오는 날이며, 기부금 2파운드 자동으로 학교 등록금 계정에 추가되어 자선단체에 전달된다고 한다. 당연 원하지 않을 경우 거부할 수 있는 옵션도 있다.
영국 모든 학교는 유치원부터 고등학생(Sixth form)까지 모든 학생이 함께하는 이 행사는, 일 년에
최소 3번 많게는 6번 정도 이루어진다. 학년이 올라가면 단순한 현금 기부뿐 아니라 음식이나 생필품을 가져오라는 레터를 받기도 한다. 아이들에게는 1파운드라는 작은 부분을 기부하지만 그들의 마음에는 기부라는 작은 씨앗이 심겨 어른이 되어서도 어려운 사람들을 돌볼 줄 아는 큰 나무로 자라게 된다. 나이가 들어 생애를 마감하는 시점에는 본인의 재산을 자식보다 사회에 기부하거나 환원하는 일을 쉽게 볼 수 있다.
마지막 학년인 13학년을 보내고 있는 둘째를 보며 깨닫는다.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나눔과 기부의 습관을 몸에 익히도록 돕는 소중하고 필요한 교육을 받고 있음을. 동시에 아이들을 통해서 배우게 되는 기부문화 교육을 어느새 나도 옆에서 가랑비에 옷 젖듯 배우고 있음을 깨닫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