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으로 쓰는 독후감, 꽃후감_목로주점

제르베즈의 비극으로 엿본 서늘한 인생의 경고장

by 문혜정 maya





꽃으로 쓰는 독후감, 꽃후감은 매월 한권의 책을 읽고 떠오른 심상, 느낌, 주제, 캐릭터 등을 꽃으로 표현합니다. 글로 쓰는 독후감은 브런치에, 영상으로 쓰는 꽃후감은 유튜브 채널에 업로드 됩니다.




2022년 1월, 첫번째 꽃후감의 주제는 에밀졸라의 목로주점입니다.

루공마카르 총서 시리즈(연대기) 중 하나인 목로주점은 오랫동안 저의 책장에 꽂혀져 선택받지 못한 책 중 하나였습니다. 왠지 지루할 것 같다는 느낌, 왠지 이해 못할 것 같다는 느낌 때문에 오래 전 사두고서 손이 잘 가지 않더라구요.

2022년 책을 한권이라도 더 읽어보자는 새해 결심과 함께 시작한 꽃후감 프로젝트이다보니 새로운 책을 사기보단 읽기 싫다 생각하고 묵혀 둔 책부터 해치우자는 생각으로 억지로 억지로 읽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요.

지금과는 다른 시대, 문화에, 우리 말과는 다른 번역체까지 더해져서 처음엔 한 페이지 넘기기 쉽지 않았지만 인간 군상과 그들의 삶은 시대와 나라와 문화를 관통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지금과 다른 19세기 프랑스 하층민의 삶은 21세기 한국 서민들의 삶에 겹쳐지고, 그들이 살고자했던 삶, 피하고 싶었던 삶, 피할 수 없었던 운명도 지금 우리가 겪는 것과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느꼈던 것들을 글과 사진, 영상으로 남겨둡니다.

아직 읽지 않은 책이라면 좋은 책소개가, 이미 읽은 책이라면 잊고 지냈던 좋은 책을 다시 떠올리게 하는 글이 되었으면 합니다.

















2022년 첫번째 영상으로 보는 꽃후감: 목로주점 바로가기



목로주점은 그 자체로 하나의 이야기를 가진 소설이면서 에밀졸라가 평생동안 썼던 루공마카르 총서 시리즈 중 하나이다. 루공마카르 총서는 루공가문과 마카르가문의 얽히고 설킨 이야기를 대를 이은 연대기로 쓴 각각의 소설들 전체를 가리키며 목로주점의 주인공인 제르베즈는 마카르 가문사람이다. 제르베즈는 소설 속에서 총 네명의 자녀를 낳는데 그 아이들 역시 마카르집안의 피를 물려받았으므로 루공마카르총서의 또 다른 시리즈에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목로주점'은 루공마카르총서의 시리즈 중 하나임과 동시에 에밀졸라를 경제적으로 자유롭게 만들어준 베스트셀러이면서 당시 시대적으로 흔히 다루지 않았던 서민의 삶을 아주 리얼하게 다룬것으로 유명하다고 한다. 19세기 파리 외곽에 살아본 적은 없지만 읽는 내내 시끌벅적한 거리의 분위기와 악취, 사람들의 때묻은 옷과 술에 찌든 노동자의 숨결이 곁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으니 그 시대 사람들은 어땠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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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


책에서는 제르베즈라는 여인의 일생을 그리고 있는데, 제르베즈는 알콜중독자인 아버지에게서 벗어나 랑티에라는 젊은 남성과 함께 고향에서 도망친다. 둘은 살림을 차리고 아이를 셋이나 낳았지만 랑티에는 성실한 제르베즈와는 다르게 가족들을 먹여살릴 의지도, 능력도 없었다. 제르베즈는 아이들을 키우며 세탁소의 세탁부로 하루 하루 입에 풀칠을 하고 사는데, 와중에 랑티에는 바람이 나서 자신과 함께 야반도주를 했던 것처럼 자신의 짐만 들고 사라져버린다.

어린 아이들과 덩그러니 남겨진 제르베즈는 그를 잊고 다시 치열하게 살아가는데 아름다운 얼굴덕에 자신을 열렬히 사모하는 청년 쿠포에게서 청혼을 받고 결혼을 하게된다. 쿠포는 다행이 랑티에와는 다르게 성실하고 착한 남자였다. 함석공으로 일하며 제르베즈를 사랑하고 근면하게 돈을 모아가고 있었는데 어느 불의의 사고로 지붕에서 떨어져 크게 다친다.

그동안 쿠포와 함께 모은 돈으로 자신의 가게를 단꿈에 빠져있던 제르베즈는 돈으로 쿠포를 치료하고, 같은 건물에 세들어 살고 있던 구제라는 대장장이 청년은 근면성실하고 남편을 살뜰히 챙기는 제르베즈에게 반해 자신의 결혼 자금을 그녀의 가게를 얻는데 빌려준다.

제르베즈는 몸에 성실함으로 동네의 세탁물을 꼼꼼히 처리하는 세탁소를 운영해 나가지만 가게를 얻느라 빌린 돈에, 가게에 들어가는 임대료에, 다섯가족의 생활비에, 부상이 나은 후에도 일할 생각은 않고 술독에 빠져버린 쿠포까지 부양하느라 사정은 도무지 나아지질 않는다.

제르베즈는 쿠포가 원래대로 돌아오길 바라면서도 다른 남자들처럼 술을 먹고 자신을 때리지 않는 어디냐고 자위하며 망가져내리는 자신의 삶을 다시 수습하지 못하고, 와중에 랑티에가 다시 나타나 쿠포와 동네사람들을 모두 자신의 편으로 만들며 그녀의 집안으로 들어와 하숙을 시작한다.

이제 책임져야할 입은 하나가 늘고, 주변 사람들은 누구도 그녀를 돕지 않는다. 과정에서 그녀 역시 술에 입을 대기 시작하고 그녀의 세탁소는 완전히 망한다.

아들들은 모두 직업을 찾아 멀리 떠나보내고, 쿠포와의 사이에서 낳은 나나는 근처의 조화공장에 취직시켰으나 알콜중독이 심각해진 쿠포는 이제 나나와 제르베즈에게 폭력을 휘두르고 나나는 가출한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와중에 쿠포는 알콜중독 증세로 정신병원을 들락거리다가 숨지고, 이제는 세탁소도 잃고, 쫒겨나다시피 작은 임대 아파트의 방도 잃은 제르베즈는 계단 작은 구석에서 숨을 거둔 이틀 발견되어 관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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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한쪽 다리를 절지만 '아이들을 잘 키우고, 빵을 배불리 먹고, 남자에게 맞지 않으며 자기 침대에서 죽는 것'이 소원인 제르베즈는 그 어느 것도 이루지 못하고 죽는데, 그 과정이 너무 사실적이면서 처절하다. 어느 순간에는 그녀의 소박한 꿈을 거의 이룬듯, 희망 찬 날들이 짧게나마 그녀의 품에 들어오지만 한 순간 매몰차게 떠난다.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는 모래알을 바라보는 것처럼 다가오는 비극을 알아도 피할 수가 없다.

에밀졸라를 일종의 자연주의 작가라고 하는데 여기서 말하는 '자연'은 운명 그대로를 말한다고 한다. 운명이란 환경과 유전적 요인으로 제르베즈는 알콜중독자 아버지의 DNA를 가지고 있으며 파리 외곽의 하층민으로서의 환경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아무리 노력하고 벗어나려 해도 그녀에게 주어진 운명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읽는 내내 희망이 없는 기분이었다. 어차피 그녀는 망한다. 어차피 그녀는 파멸한다는 걸 알면서 잠깐의 희망을 품는 제르베즈를, 헛된 꿈을 꾸는 제르베즈를 지켜보는 것은 보는 것은 고문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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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끊임없이 '나는 제르베즈가 아닌가?'에 대한 의문을 갖게 했다. 나는 내가 가진 유전과 환경에서 자유로운가. 나 역시 그 테두리 안에서 매몰되는 것은 아닌가. 나도 모르게 내 삶의 나락으로 걸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두려웠다.

아버지에게서 늘 두드려 맞던 자신을 구원해준 랑티에도 타락했고, 사생아가 셋이나 딸린 여자를 품어주고 가족을 이루었던 다정한 남편 쿠포도 결국 랑티에만 못한 남자가 되었다. 그녀가 마음을 주었던 순수한 대장장이 구제 역시 구원이 되지는 못했다. 한때는 가까웠던 이웃도, 그녀의 주머니가 불룩했을 땐 곁을 지키던 이웃들도 몰락한 제르베즈에겐 한없이 매몰찼고, 기댈 곳은 아무대도 없었다. 그런 그녀도 모든 것을 가졌던 때가 있었으니, 모든 것을 갖고 또 잃는 건 너무나 한순간이다. 나라고 그렇게 되지 말란 법이 없었다.

그러나 나는 제르베즈와는 다르다.

그러나 나는 그녀의 꿈에서 나를 보았다.

절대 거창하지 않은 삶.

누가 들어도 허황되다 놀림받지 않을 정도의 바람을 가진 여자 속에서 나를 보았다. 나 역시 내 인생에 대한 꿈이 있다. 간절하지만 소박하고 한편으로는 보잘 것 없는 꿈이다.

평생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싶다는 꿈.

인간의 의지가 얼마나 연약하게 바스러지는지를 간접 경험하고 나니 그 삶을 지탱하고 있는 꿈이 바스러지는 것이 얼마나 비참한 일인지 지켜보는 과정이 참 울적했다.


어떤 사람에게 이 책은 그 시절 서민들의 삶을 돋보기로 들여다보는 듯한 사실적인 소설에 불과할 것이다. 나에게는 왠지 모르게 내 삶이 보낸 경고장 같았다. 그렇게 생각할 이유는 전혀 없지만 뱃속 어딘가가 서늘해지는 소설이었다.

어떤 무심한 고민 없이 사는 것이 정답이지만 어떨 무심코 디딘 걸음이 나를 천길 낭떠러지로 굴러떨어지게 수도 있다는 것을, 그런 인생의 모순을 경고하는 이야기였다. 정해진 운명을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운명이 우리를 벗어나지 못하게 호시탐탐 옭아맬 기회만 엿본다는 것을 깨닫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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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말이죠. 욕심이 많은 여자가 아니랍니다. 별로 바라는 게 없어요……
내 꿈은 별 탈 없이 일하면서 언제나 배불리 빵을 먹고, 지친 몸을 누일 깨끗한 방 한 칸을 갖는 게 전부랍니다. 침대, 식탁 그리고 의자 두 개. 그거면 충분해요……
내 아이들을 제대로 키울 수만 있다면, 그래서 좋은 시민으로 만들 수만 있다면 말이죠……
또 하나 더 바라는 게 있다면, 그건 맞지 않고 사는 거에요. 내가 만약 다시 결혼을 한다면 말이죠. 그래요, 다시는 맞으면서 살고 싶지 않아요……
그게 다예요, 정말 그게 다라고요……"

제르베즈는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게 무언지 자문해보았지만 더이상 절실한 것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리고 잠시 머물거리다가 이렇게 덧붙였다.

“그래요, 자기 집 침대에서 죽고 싶다는 바람 정도는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거니까요……난 지금까지 죽도록 고생만 해서 그런지 적어도 죽을 때는 내 집 침대에서 죽을 수 있기를 바라거든요.”

목로주점 / 에밀졸라 (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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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첫번째 영상으로 보는 꽃후감: 목로주점 바로가기

https://youtu.be/5XTBCz-qv0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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