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살아남은 자들의 것.
꽃으로 쓰는 독후감, 꽃후감은 책을 읽고 떠오른 심상, 느낌, 주제, 캐릭터 등을 꽃으로 표현합니다. 글로 쓰는 독후감은 브런치에, 영상으로 쓰는 꽃후감은 유튜브 채널에 업로드 됩니다.
꽃후감 일곱번째 작품은 이민진의 '파친코'입니다.
4월부터 읽기 시작했지만 길고긴 5월 시즌 덕분에 모두 읽는데 한달이 넘게 걸렸네요.
애플TV의 드라마 시리즈로 알게 되었고, 드라마를 보지는 않았지만 원작은 드라마와는 조금 다르게 진행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등장인물이나 세부 스토리가요). 총 두권의 책으로 네 세대를 아우르는 이야기를 다뤘다고 하길래 처음부터 이건 흐름이 엄청나게 빠를 수 밖에 없겠다싶었는데 역시나 정신을 살짝 놓으면 바로 다음 세대로 이야기가 넘어가더라고요.
그래도 흡입력 있는 이야기였기 때문에 정신 없는 시즌 와중에도 포기하지 않고 끝맺을 수 있었습니다. 아주 재미있었어요. 특히나 개인적인 일로 다 읽고 난 뒤 더 마음에 큰 울림이 있는 책이었습니다.
이 책은 첫 문장의 임팩트가 쾅 하고 내리친 소설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소설의 첫문장이 그 소설의 앞으로 갈 길과 작가의 의도를 축약하여 말해주는 도구하고 하지만 난 그렇게 열심히 첫문장을 음미해본 적은 없었다. 지나고 나서 누군가 '그 책의 첫문장이 이랬다'라고 얘기할 때서야 '그런 문장이 있었나? 그랬다면 인상적이군. '하며 기억을 더듬어 볼 뿐.
하지만 파친코의 첫문장은 그런 둔한 나에게도 아릿한 아픔이 느껴지는 한 줄이었다.
역사가 우리를 망쳐놨지만 그래도 상관 없다
파친코 1권 11p
역사라는 것은 실체가 없다.
어릴 때 에드워드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읽었던 것은 기억나지만 그가 역사를 무엇으로 정의내렸는지, 어떤 결론을 지었는지는 기억에 남아 있지 않다. 제목이 질문인만큼 그 답을 내려주는 게 그 책의 결론이겠거니 생각하며 읽었음에도 말이다.
내가 생각하는 역사란 시간의 흐름, 어떤 방향성과 그에 대한 기록이나 기억이다. 우리는 어떤 역사의 한 가운데서 휘몰리고 어디론가 흘러가고 또 파탄이 나지만 그 과정에 있을 때에는 이게 어떻게 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한참 흘러가 돌아보았을 때 남겨진 궤적을 보며 '아 그랬구나. 우리는 또 역사라는 것에 휘둘렸구나.'라고 더듬어 볼 뿐.
그러므로 이 문장, '역사가 우리를 망쳐놨지만 그래도 상관 없다'는 참으로 이상한 문장이다. 역사가 우리를 망쳐놓은 것은 과거의 일인데 상관 없는 것은 현재의 시점이기 때문이다. 두 시점을 맞춘다면 '역사가 우리를 망쳐놨지만 그래도 상관 없었다'이거나 '역사가 우리를 망치지만 그래도 상관 없다'인 것이 맞지 않을까?
그러므로 이 문장은 '내가 흘러온 시간의 궤적을 보니 우리는 과거의 역사에 의해 망가졌지만 현재의 망가진 나는 그것에 상관하지 않는다'는 뜻일 것이다. 참으로 담대한 이야기다. 나였다면 '시발 날 망쳐놔? 이 개같은 역사. 아 내 인생!'라고 말했을 것이다.
줄거리
이 소설의 주인공은 '선자'라고 할 수 있지만 이야기의 시작은 선자의 할머니와 할아버지부터이다.
선자의 할아버지는 부산 영도의 가난한 어부였는데 할머니는 돈을 더 벌기위해 하숙을 치기 시작하고 선자의 아버지인 훈이를 낳는다. 훈이는 언청이이자 다리가 불편한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지만 온화한 성품을 가진 아이로 자랐고 가난한 집 딸로 태어난 양진을 아내로 맞는다. 돈에 팔려오다시피 한 양진이었지만 시부모는 그녀를 아껴주었고 훈이는 좋은 남편이 되어 주었다. 양진은 선자 앞에 세명의 아들을 낳았지만 모두 어릴 때 병으로 죽는다. 네번째 아이이자 유일한 딸로 태어난 선자는 건강했고, 양진과 훈이는 그런 선자를 가난한 집안 사정에서도 애지중지 키웠지만 훈이는 선자가 열세살이 되었을 때 결핵으로 죽는다.
선자는 엄마 심부름으로 시장에 갔다가 아버지뻘쯤 되어 보이는 고한수라는 남자를 만나고 사랑에 빠져 임신을 하지만 고한수는 자신이 일본에서 이미 결혼을 했으며 딸이 둘이나 있다고 한다. 한수의 현지처가 되기보다는 미혼모의 길을 선택한 선자의 집에 오사카로 가서 목사로 일하려고 하는 백이삭이 일본으로 떠나기 전 잠시 하숙을 하기 위해 찾아오고 고된 여정으로 아버지와 같은 결핵에 걸린 이삭을 양진과 선자는 극진히 간호한다. 그 과정에서 이삭은 선자의 임신을 알게 되고 그녀를 구원하고자 그녀와 결혼을 결심하고 함께 일본으로 떠난다.
고한수의 아이이자 이삭의 첫째 아들이 된 노아를 낳고 이삭의 형 부부인 요셉, 경희와 함께 일본에 자리를 잡은 선자는 이삭과의 사이에서 둘째 아들인 노아를 낳지만 이삭은 신사참배와 천황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지 않아 투옥되고 선자는 노상에서 김치와 설탕과자를 팔며 생계를 이어나가야 했다. 오랜 시간이 지나 이삭이 풀려나지만 오랜 옥중생활을 견뎌내지 못한 이삭은 곧 죽고, 일본에는 폐전의 분위기가 맴돌게 된다.
그리고 일본에 폭탄이 떨어지기 직전, 오랫동안 주변을 맴돌며 선자를 지켜보고 있던 고한수는 그 사실을 미리 알고 선자 앞에 나타나고 어쩔 수 없이 고한수의 도움을 받아 선자의 가족들은 목숨을 건진다. 한수는 선자의 어머니 양진까지 일본으로 데여와 주지만 이삭의 형인 요셉은 가족들과 떨어져 있다가 폭탄이 떨어진 후 사고를 당하고 선자의 삶은 더더욱 팍팍하게 흘러간다.
공부를 좋아하지만 조선인이라는 것을 숨기고 싶었던 노아와 공부와는 담을 쌓고 살지만 자신이 좋은 조선인이라는 것을 늘 증명하고 싶었던 모자수(모세)는 자라면서 조금씩 다른 길을 걷게 되고 자신이 고한수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된 노아는 어렵게 들어간 와세다 대학을 중퇴하고 잠적해 버린다.
그렇게 가족들과 떨어진 노아는 외국인을 고용하지 않는 일본인 파친코 사장 밑에서 파친코 일을 배우며 일본여자와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국적도 일본으로 바꾸게 되고, 모자수는 조선인에게 친절했던 일본인 파친코 사장 밑에서 일을 배우며 조선 여자와 결혼하고 솔로몬이라는 아들을 낳고 조금씩 부를 축적한다.
“잘들어.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어.이 나라는 변하지 않아.
나 같은 조선인들은 이 나라를 떠날 수도 없어.
서울에서는 나 같은 사람들을 일본인 새끼라고 불러.
일본에서는 아무리 돈을 많이 벌어도,
아무리 근사하게 차려입어도 더러운 조선인 소리를 듣고.
대체 우리 보고 어떡하라는 거야?
북한으로 돌아간 사람들은 굶어 죽어나 공포에 떨고 있어.”
모자수는 담배를 찾아 주머니를 툭툭 두르렸다.
“인간은 원래 끔찍한 존재야. 맥주나 마셔.”
파친코 2권 220p
전혀 다르게 갈라졌던 형제의 삶은 결국 '파친코'로 다시 비슷하게 합쳐지지만 노아를 찾아낸 고한수와 선자를 만난 노아는 자신이 조선인이라는 것이 밝혀지는 것, 혹은 조선인으로 살아가는 것, 또는 조선인 야쿠자의 사생아라는 것을 받아들이지 못해 선자와 재회한 날 자살한다.
살아남은 선자의 유일한 아이인 모자수는 첫번째 아내인 유미를 사고로 잃지만 아들 솔로몬을 국제학교에 보내고, 미국 유학을 시키는 등 자신의 삶과는 다른 삶을 살게하기 위해 피나게 노력한다. 그러나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솔로몬은 운명적인 사건을 통해 자신은 일본에서 살아남은 '조선인'의 운명을 받아들이며 모자수의 '파친코' 사업을 물려받고자 한다.
어디를 가든 썩어빠진 사람들이 있어.
그들은 좋은 사람들이 아니야.
아주 나쁜 사람을 보고 싶니?
그럼 평범한 사람은 상상도 못할 성공을 안겨줘 봐.
언제든지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어떤 행동을 하는지 한번 보는 거야.
파친코 1권 69p
4세대의 이야기이지만 처음 선자의 조부모와 부모세대의 이야기는 초반 10페이지 정도로 끝이나고 그 후로는 선자의 일생으로 이루어진다. 선자는 일제 강점기에 가난한 집 딸로 태어나 배우지도 못하고 사생아를 밴 미혼모가 되지만 운이 좋았던 것인지 나빴던 것인지 나락으로 떨어질뻔한 그녀의 인생을 젊은 목사인 백이삭이 구해낸다. 백이삭의 구원은 노아를 세상에 태어나 손가락질 받지 않고 살 수 있게 했지만 노아는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운명에 끊임없이 좌절했고 그로인해 선자를 영원히 떠나버렸다. 일본으로 건너와 한국 전쟁과 가난을 겪지 않았지만 일본의 전쟁에 휘말려야 했고 다시는 고향 땅을 밟을 수 없었다. 선자의 일본행은 불행과 행운이 뒤섞인 쉐이크와 같았다.
살아남기는 했지만, 말년의 삶은 조금 풍족해졌지만, 그것은 결론일 뿐이다. 모든 것이 온전한 것은 아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 속절없이 휘말렸고 온 힘을 다해 버텼지만 떨어져나간 살점들이 너무 많았다.
선자의 힘겨운 삶 속에 위로인 듯 체념인듯 이런 구절이 자주 나온다. "여자의 삶은 고생길이다. 여자로 태어났기 때문이다". 인생이 고달프고 쉽지 않은 것에 남녀가 있겠냐만은, 그 시대의 여자는 삶은 고난이고 그것이 곧 삶이라는 것을 어린시절부터 주문처럼 외우며 살았다. 자신에게 어떤 일이 닥쳐도 그것이 여자에게 주어진 삶의 일부이기 때문에 거부할 수도 도망칠 수도 없고 그저 묵묵히 겪어내야만 한다고.
선자야, 여자의 일생은 일이 끊이지 않는 고통스러운 삶이데이.
고통스럽고 또 고통스러운 게 여자의 인생 아이겠나.
니도 각오하는 게 좋을 끼다.
인자 니도 여자가 되었으니까네 이건 꼭 알아둬야 한데이.(생략)
파친코 1권 48p
아이러니하게도 그 부당한 주문은 오히려 선자를 살게했다. 그 반대가 선자의 아들인 노아의 인생이었다. 노아는 자신의 노력으로 모든 것을 극복하고자 했고, 자신의 힘으로 얼마든지 자신의 미래와 운명을 바꾸거나 개척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하지만 그가 그렇게 벗어나고 싶었던 '피'는 속일 수는 있어도 노력으로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법을 배우지 못한 노아에게는 유일한 거부 방법인 죽음만이 남아있을 뿐이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부당한 운명을 담담히 인내하고 받아들였던 선자지만 노아만은 그렇지 않길 바랬던 것인지 그에게 인생의 고난을 삶으로 받아들이는 법을 가르치지 않았다. 책의 말미에서 선자는 그 점에 대해 후회를 비치지만 역사를 흘려갔을 뿐이다.
네가 누군가를 사랑한다면 그와 고통을 함께 나누지 않을 수 없어.
우리가 주님을 사랑한다면 단순히 주님을 흠모하거나 두려워하고,
주님에게 우리가 원하는 것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 주님의 감정을 알아야해.
주님은 우리의 죄 때문에 괴로워하실 게 분명하니까.
우리는 주님의 고뇌를 이해해야 하지.주님은 우리와 함께 고난을 겪으시네.
주님은 우리와 같은 고통을 겪으시지.
그걸 아는 게 우리에게는 위로가 되는 거야.
우리가 홀로 고통 받는 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되는 게 말일세.
파친코 1권 106p
아내와 아이들을 두 번째 얻은 기회처럼 소중하게 여겼지만,
현재 자신이 새롭게 태어나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조선인으로 살았던 삶이 아직도
노아의 가슴속에 새카맣고 묵직한 바위처럼 박혀 있었다.
자신의 정체가 들통날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사로잡히지 않은 날이 하루도 없었다.
파친코 2권 191p
선자 가족이 과거를 벗어던지고 새로운 역사가 되리라 믿었던 손자 솔로몬은 넉넉한 환경에서 억압받거나 차별받지 않도록 길러졌지만 결국 돌아온 '고향' 일본에서 그는 이방인일 뿐이었다.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랐지만 주기적으로 거주허가를 받아야 했고 그렇지 않으면 일본에서 추방될 수 있었다. 솔로몬은 자신에게 조선인의 피가 흐르고 뿌리는 조선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일본에 대한 반감이 있거나 일본을 타국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나고 자란 곳이 고향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하지만 결국 역사의 꼬리는 솔로몬를 휘감았고 아직 끝나지 않은, 그리고 영원히 끝나지 않을 역사의 흐름은 다시 한번 솔로몬을 파친코로 인도한다.
인내하는 것 외에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겠니?
우리의 재능을 키워야 한단다.네가 지금처럼만 한다면 아버지는 행복할 거야.
어디를 가든 넌 우리 가족을 대표하는 훌륭한 사람이 분명해.
학교에서건, 동네에서건, 이 세상 어디에서건 넌 그런 사람이야.
다른 사람들의 말이나 행동은 중요하지 않아.
파친코 1권 296p
다만 선자의 세대, 그녀의 부모와 조부모의 세대에 비하면 조금은 더 밝은 가능성과 개선될 수 있는 여지를 두고 있다는 것이 소설 말미 작품 해설에 나와 있다. 하지만 이 소설은 미래가 나아지고 있다, 가련한 선자의 후손들은 더 나은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것이 주제가 아니다.
내가 느낀 것은 삶은 고난이고, 그것은 누구도 거부거하나 거절할 수 없다. 우리는 역사 속에서 망쳐지거나 다시 일어설 수 있으며 살아남은 자의 것이 인생이라는 것이다.
어머니는 죽음을 앞두고 고한수가 그녀의 인생을 망쳤다고 말했지만
정말 그랬을까?
고한수는 그녀에게 노아를 주었다.
그녀가 임신하지 않았다면 이삭과 결혼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이삭이 없었다면 모자수와 손자 솔로몬을 얻지 못했을 것이다.
선자는 더 이상 고한수를 미워하기 싫었다.
성경 속 요셉이 자신을 노예로 팔아버린 형제들을 다시 만났을 때
뭐라고 했던가?
“형들은 나를 해치려고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셔서
오늘날 내가 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선자가 이삭에게 이 세상의 죄악에 관해서 물었을 때
이삭이 가르쳐준 이야기였다.
파친코 2권 291p
내일 새벽, 내가 초등학교 때 미국으로 이민갔던 막내이모와 이모부가 오랜만에 한국에 온다. 아주 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잠시 오는 것이다. LA폭동이 일어났을 때가 이모의 일가족이 이민을 간지 얼마 안되었을 때여서 뉴스를 보며 온 가족이 걱정을 했던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있으니 30년만인, 오랜만이라고 하기에도 민망할 정도로 오랜만의 귀국이다.
한달 정도 체류할 예정인데 그 동안 형제 자매들의 집에서 돌아가며 묵을 예정이라고 한다. 엄마와 다른 이모들은 이미 미국 여행을 갔을 때 그녀의 집에서 한달 정도를 묵었었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때는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가 계셨고, 지금은 그렇지 않다는 것 뿐이다.
외조부모의 상때도 그녀는 돌아오지 못했다. 자세히 알지는 못하지만 영주권을 따지 못해 한국으로 들어오면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지 못해서라고 했던 것 같다. 한동안 우울한 나날을 보냈던 그녀였지만 카톡 같은 메신저가 등장하면서 다시 형제자매들과 한방에 모여 수다를 떨 수 있게 되었다. 하나 밖에 없는 그녀의 아들(나의 사촌오빠)의 결혼소식과 손녀의 탄생 등이 그 단톡방을 떠들썩하게 만들었고 그녀는 다시 고국의 사람들과 연결되었다.
장로교회 목사였던 아버지는 하나님의 의도를 믿었지만,
모자수는 인생이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불확실성에 기대하는
파친코 게임과 같다고 생각했다.
모든 것이 정해져 있는 것처럼 보이면서도
희망의 여지가 남아 있는 게임에 손님들이 빠지는 이유를
모자수는 이해할 수 있었다.
파친코 2권 95p
나는 이모가 선자만큼이나 기구하고 고달픈 삶을 살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녀의 미국행이 선자처럼 그녀의 아이를 위한 것이 1번이었다고 들었다. 지금보다 나은 환경에서 더 잘 가르치고 키우고 싶어서. 그때 이모에게 한국에서의 삶은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었던 것 같다.
이민을 가기 전 이모는 미용같은 기술을 배우러 다녔다. 어느날 엄마의 화장대에 엄마가 절대 살 것 같지 않은 30색의 화려한 아이셰도우 세트가 있던 것을 보고 물어봤더니 이모가 준 것이라고 했다. 미용학원을 다닐 때 샀던 건데 떠나기 전에 선물로 준 것이라고.
영주권이 없음에도 그냥 무작정 떠났던 30년전의 그녀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비행기에서 내림과 동시에 불법체류자의 신분이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떠난 마음. 아무도 부르거나 기다리지 않는 곳으로 찾아가는 마음. 평생 한번도 해본적없고 관심도 없었던 미용 기술을 배워두던 마음.
엄마는 이모가 형제자매들의 집에서 돌아가며 묵기로 했을 때 조금 울적해했다고 했다. '내 부모가 살아있었으면 부모의 집으로 갔을텐데.'라고.
학수고대하던 귀국이지만 그렇게나 보고싶어하던 부모님은 더이상 여기 이땅에 머무르고 있지 않다. 그녀의 언니와 오빠들을 그녀를 기다리고 반길 준비가 되어 있지만 다시 한번 오랜시간 머물렀던 곳을 떠나오는 그녀의 마음은 미국으로 떠날 때와 비슷하진 않을까?
+여담.
파친코를 다 읽어갈 때쯤 이모의 귀국 소식을 들었다. 기분이 조금 묘했다. 한국인이 나오지만 나의 인생과는 전혀 상관 없는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그때 이모가 등장했다. 엄마는 새벽 다섯시에 도착하는 그녀의 귀국을 환영하기 위해 새벽 3시에 일어나 공항으로 가기로 했고 나에게 작은 꽃다발을 주문했다. 부담스러우니까 자그마하지만 화려했으면 한다는 주문이었다.
나는 '참 공존하기 힘든 조건이네.'라고 말하고 해바라기 두개를 넣은 꽃다발을 만들어주었다. 엄마의 주문과는 다르게 자꾸만 꽃을 한송이 한송이 추가하게 되어 생각보다는 커졌지만 그래도 부담스럽지는 않은 사이즈로 만들었다. 두개의 해바라기는 그 자리에 있기를 이모만큼이나 원했겠지만 함께할 수 없는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라고 생각하며 정면에 넣었다.
이게 방금 만들었던 그 꽃다발이다.
이모가 행복하길. 그리고 이 꽃들을 보며 위안을 받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