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에 약속 7개 잡는 사람

소위 말하는 '인싸'인 걸까, 혹은 외로움을 채우기 위한 도피 행동일까?

by may

(앞서 업로드한 '열심히 했는데 꼴등' 편과 이어집니다.)


내 대학 생활 첫 1년은 기대와는 조금 달랐다. 코로나19로 인해 MT 등 과 행사들은 모두 취소되었고, 학과 사람들 중에서 아주 가까운 친구를 사귀지 못했으며, 그렇다고 해서 학점을 잘 받은 것도 아니었다. 고향 친구들과도 연락을 한지 오래되어 멀어진 것처럼 느껴지고, 가족들도 멀리 떨어져 있는 상황. 그나마 기숙사 6인실에 함께 사는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며 새내기 1년이 끝나게 되었다.


대학교 2학년이 되자 이제는 전공을 슬슬 정해야 할 것 같다는 압박도 생겨났다. (서울대 자유전공학부에서는 전공 2개를 선택할 수 있는데, 주변 친구들은 1학년을 마치면 슬슬 하나의 전공을 선택하곤 했다.) 1학년 때보다는 공부도 더 하고 학점도 올려야 할 것 같았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1학년 때 내가 원하던 제대로 된 대학생활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억울한 마음이 있었다. 코로나 상황이 조금 나아지면서, 그동안 하지 못했던 것들을 이제는 모두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동아리 활동을 엄청나게 했다. 밴드 동아리를 하면서 일주일에 세 번 넘게 연습실을 드나들고, 한 공연에 10곡이 넘는 곡을 불렀다. 자유전공학부 홍보대사 동아리에도 가입해서 대표까지 맡았다. 교육봉사 프로그램에도 멘토로서 참여했고, 학생들에게 조언을 주기 위한 저널을 쓰는 크리에이터 일도 신청했다.

내 능력을 계발할 수 있는 일도 열심히 했다. 학교에서 운영하는 영어 회화 수업과 일본어 수업에 등록하여서 매일 수업을 들으러 갔다. 남는 시간을 메우기 위해 새로운 운동을 시작하기도 했다. 아침에 하는 필라테스 수업에 참여하고, 근처 폴댄스 학원에 등록해서 폴댄스를 배웠다.

친구들과의 약속도 엄청나게 많이 만들었다. 이때 서울의 웬만한 곳은 다 가봤던 것 같다. 이렇게 바쁘게 일주일을 보내고 나면, 집에서는 그냥 누워서 핸드폰 하다가 잠에 들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이런 생활에 '현타'가 느껴졌다. 텅 빈 통장 잔고를 마주하고 나서부터였을까. 혹은 부질없는 인간관계들을 정리하게 될 때부터였을까. 노력한다고 해봤지만 쉽게 오르지 않는 내 학점을 또다시 마주하고 나서부터였을까. 정확히 언제부터인지는 알 수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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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대학생들이 나와 비슷한 경험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고등학생 때는 누려보지 못한 무한한 자유를 마주하고, 그 시간을 메우기 위해, 사실은 '때우기' 위해 의미 없는 활동들로 나의 삶을 만들어 갔다. 내가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로. 그냥 언젠가는 이 모든 것들도 도움이 되겠지, 라는 생각으로.


무턱대고 가입한 동아리와, 돈을 펑펑 쓰며 친구랑 놀았던 경험들이 나에게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다는 말이 아니다. 그 시행착오들은 모두 소중한 추억이 되었고 지금의 나의 선택을 구성하는 'dot'이 되었다. 그러나 만약 그것들을 경험하고 나서 느끼는 감정이 '허무함'이라면? 요즘 너무 바쁘고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그 고리를 끊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면? 단지 혼자 있는 시간의 외로움을 채우기 위한 일인 것 같다면?


나는 과거의 나에게 과감하게 말하고 싶다. 돌아서면 없어질 것에 집착하지 말라고. 바쁨으로 허무함을 덮으려 애쓰기보다, 왜 외로운지 스스로에게 묻는 용기를 가지라고. 혼자 있는 시간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 시간 속에서 나를 더 사랑할 수 있게 만드는 일에 집중하라고.


그렇게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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