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정신과 의사 사건 1심 선고를 듣고
지난 2018년 8월 18일, 서대문 역사박물관 앞에서 안희정 성폭력 사건 1심 무죄를 규탄하는 시위가 열렸다.
그 자리에서 대독된 김지은 씨의 편지에서 유독 한 문장이 오래 마음에 남았다.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거라곤, 합리적이고 상식적인 판결을 해줄 수 있는 판사님들을 만나게 해달라고 간절히 바라는 것 밖에 없습니다.
(*전문보기: 여성신문 http://www.women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144028 )
법정에서 여성의 경험이 신빙성을 얻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희생하고 싸워왔다.
이혼 경험이 있어서, 직업이 그러니까, 술을 마셔서, 시댁 식구와 사이 안 좋은 여자라서, 청바지가 가지런하게 벗겨져 있어서... 법정에서 성폭력 피해 여성들은 쉽게 거짓말쟁이가 되었다. 법정에서 여성의 말이 어떻게 취급받았는지를 살펴보면 여성이 이 사회에서 2등 시민이라는 게 너무도 명확하게 보인다. 남자는 사람을 죽여도 ‘분노해 우발적으로’ 라고 이해받는 법정이 아닌가. 보통의 상식적인 시민이라면 아무리 화가 나지 않아도 하지 않을 행동일텐데, 법정은 남성에 대해서는 비상식적인 이해력을 보여주곤 했다.
그러한 법정에서 피해자의 희생과 시민들의 연대로 우리는 겨우 여기까지 왔다. 김영란 판례(2005년) 권순일 판례(2018년)등 여성의 경험이 실체로 법정에서 인정받는데까지, 성폭력 특례법과 친고죄 폐지, 직장 내 성희롱 처법 등 법 개정까지 얼마나 많은 여성들이 앞서 싸워왔는지.
그런데 ‘여기까지 왔다.’고 기뻐할 수가 없다. 전진해 왔다고 생각하는데 발밑이 자꾸 무너진다.
11월 19일, 대구 정신과 의사의 의료법 위반과 직원 강제추행은 모두 유죄를 받고도 집행유예 3년이 내려졌다.
해당 사건의 피해자들은 더이상 피해를 막기 위해서는 그가 병원문을 닫아야 한다고 생각했기에 희생을 치루면서 언론 인터뷰를 하고 수사당국에 조사를 받고 지금도 싸우고 있다. 하지만 법은 너무 쉽게 그를 다시 병원으로 돌려보냈다.
직원 2명을 강제추행하고 개인정보를 공개하겠다고 협박하고 비대면 의료행위에 허위진료기록부를 작성했는데. 인간으로서의 윤리는 물론 의사로서 가져야할 최소한의 직업윤리마저 저버린 사람을 ‘선처 탄원서를 써준 환자들’ 곁으로 돌려보내는 법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 모르겠다.
진퇴를 거듭하면서 앞으로 나아간다고 믿고 싶지만 그런 대의적인 흐름과 별개로... 당연한 말이지만 개별 사건의 피해자들에게는 그 하나의 사건, 하나의 판결이 절대적이다.
서울중앙지법에서는 심리치료를 빌미로 내담자를 성폭행한 심리치료사에게 업무상 위력에 의한 간음 혐의로 3년의 징역형을 선고한 것에 반해, 대구 정신과 의사의 환자 성폭력 사건 중 1건의 대구 검찰이 불기소하여 피해자는 법원에 제정신청과 항고까지 싸움을 계속하고 있다.
안희정 성폭력 사건이 대법원에서 최종 유죄가 난 뒤에도, 여전히 가해자 앞접시에 음식을 덜어줘서, 술에 취해 가볍게 가해자의 어깨를 두드려서 성폭력이 아니라는 판결이 이어지고 있다.
정말 우리는 어디까지 온 걸까.
앞으로 나아가고 있긴 한 것인가.
어떤 재판부를 만나느냐에 따라 판결이 달라지는 건 왜 일까, 하고 법조인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그의 답은 아직 ‘법이 바뀌지 않아서’라고 했다. 판례가 오히려 법보다 앞서가고 있다고.
현재의 우리 형법에서 강간은 여전히 최협의설을 채택하고 있어 피해자의 ‘저항’을 기준으로 성폭력을 판단한다. 김영란 판례나 권순일 판례가 사회적 편견에 근거해서 피해자의 사건 전후 행동을 재단하고 진술을 무시하지 않아야 한다, 고 말하지만 법이 여전히 저 모양이라, 판결이 들쑥날쑥이라는 것.
김지은 씨의 말처럼 피해자들은 법에 내 사건을 맡기는 것이 아니라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판사를 만날 ‘운’에 사건을 맡기는 셈이다.
그는 결국 형법에서 강간의 최협의설, 그러니까 적극적인 거부를 기준으로 하는 것을 폐지하고 적극적인 동의를 기준으로 하는 비동의 간음죄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번 대구 정신과 의사 사건에서 법정이 보여준 것처럼, 법정도 우리 사회도 가해자에 대한 연민이 너무 넘친다.
성폭력 피해자들은 설사 재판에서 가해자들이 유죄를 받고 일시적으로 사회에서 격리된다 하더라도 트라우마로 인해 일상 복귀에 어려움을 겪는다. 가해자들은 피해자들의 미래와 가능성마저 짓밟은 것이다. 글을 쓸 수 없고, 직장을 다닐 수 없고, 사람을 믿을 수도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나날들.
물론 피해자들은 충분히 용기있고 강한 사람들이라 믿는다. 그렇기에 마땅히 존재했을 그들의 빛나는 내일이 가해자들 때문에 좌절되었고 회복에는 가늠할 수 없이 지난한 과정이 더 필요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도 법정에서는 가해자의 미래에 대해 너무 연민한다.
우발적이라, 전과가 없어서, 선처를 바라는 사람들이 있어서, 젊어서, 많이 배워서, 못 배워서, 가족이 든든해서, 가족이 없어서... 등등.
피해자에게 회복할 수 없는 고통을 안긴 사람들이 법정에서 갱생의 기회를 맞이하는 걸 과연 정의라고 할 수 있을까.
죄인에게 기회를 주는 건 부디 신에게 맡겨주길.
판사들이 자비의 신전에 앉은 사제들처럼 굴지 않기를 바라는 게 욕심은 아닐테니까.
피해자의 고통이 실체가 되고 가해자의 미래가 지워지는 법정을 언제까지 기다려야 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도 싸움을 계속하고 있는 피해자들에게 연대와 존경의 마음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