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대화창 속 n번방

by MEI

n번방 사건이 불거지면서 사람들은 미성년자 여성을 유인해 착취하는 범행 자체에도 경악했지만 무엇보다 갓갓과 박사 등 번져나간 텔레그램 성착취 단톡방의 참여자 수가 무려 26만 명에 이른다는 규모에 놀랐다. 물론 경찰 발표에서는 1만으로 축소되긴 했지만. 26만이든 1만이든... 기사로 일부만 전해 들어도 끔찍한 성착취 영상을 그토록 많은 남성(셀카부터 다리털 인증까지, 남성임을 확인하고 회원을 받았다고 하니 굳이 성별 중립적 단어를 쓸 필요는 없을 것 같다)들이 돈을 내고 사고, 주문하고, 즐겼다는 사실... 인간이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싶어 지는 것이다.


하지만 정말 n번방이 아주 특수한 사건일까.

처음 방을 만든 것(인간이라고 부르고 싶지도 않음)들이나, 거기에 돈 내고 들어간 것들이나 우리가 평범한 일상 속에서 만나기 힘든 괴물들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집단 성폭력의 가해 남성은 혼자서는 절대 성폭력을 저지르지 않을 사람일 수 있다. 그러나 집단 성폭력에 가담하면서 가해 남성들은 특별한 유대감을 경험하고, 집단적 '남성성'의 실현을 위해 피해자를 수단화하는 공동의 목표를 갖게 된다.

우리 사회는 남자 청소년들이 "혈기왕성하게 난봉을 피우고 다니는" 것을 성인이 되면서 필요한 과정으로 보는 경향이 있고 그 결과 집단 성폭력 역시 암묵적으로 수용되곤 한다. 청소년들의 '난봉'은 친구와 함께할 때 '정상적'인 행위가 되곤 한다.

-[그것은 썸도 데이트도 섹스도 아니다] 중에서

서로 얼굴을 아는 지인들이 모여 있는 단톡방에 모르는 여자 사진이 한 장 올라온다. 사진 속 여성은 전송자의 학교 동기 거나 회사 동료일 수도 있고 그저 SNS에서 본 모르는 여자일 수도 있다. 어쨌든 사진을 올리는 순간, 그 여성은 마치 하나의 정물처럼 취급된다. 쉬운 외모 품평부터 시작되어서 어느새 성적인 농담까지.


최근 몇 년간 고발된 수많은 단톡방들을 기억한다. 매일같이 어깨를 마주하고 수업을 듣는 학우에게 성적 발언, 심지어 강간 모의까지 서슴지 않던 남자들만의 단톡방.


어쩌면 그것이 당신들의 대화목록 가운데 있는 친숙한 n번방은 아닐까.


위에 인용한 책 [그것은 썸도 데이트도 섹스도 아니다]는 아는 사람에 의한 강간에 관한 내용으로 출간된 지 벌써 30년 가까이 된 것이다.

그러니까 단톡방 성폭력도, 딥페이크 기술을 이용해 지인능욕 사진이며 영상이 횡행하기 전에 쓴 책이라 인용된 문장은 물리적이고 직접적인 성폭력을 의미한다.

기술 발달과 더불어 남성들의 '집단 성폭력'은 이렇게 진화한 것이다. 하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여성을 재물로 삼아 유무료의 단톡방 속에서 남성들은 남성성을 과시하고 집단의 친목을 다지고 있다.


남자들끼리 하는 가벼운 농담이 만들어낸 지옥이 바로 n번방이다.

만약 n번방 사건에 진심으로 분노한다면 남자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그 단톡방을 멈추는 일이 아닐까. 사진 속 여성이 설사 당신이 모르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당사자가 들을 일이 없다 하더라도, 들키기 전의 범죄도 이미 범죄니까.


그리고 부디 그 빌어먹을 '남성들의 성욕'타령은 좀 그만 듣고 싶다.

성욕이 통제불능이라면 이 문명화된 사회에서 동료 시민으로서 살 자격이 없다고 스스로 인정하는 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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