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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야수파 Oct 30. 2019

실패의 두려움에 사로잡힌 창작가

<유열의 음악앨범> 2019


"너는 너무 무거워. 미수 씨한텐 나처럼 가벼운 사람이 필요해." 극중 등장하는 이 대사는 <해피엔드><은교><4등><침묵> 등 무거운 드라마를 만들어온 정지우 감독이 왜 갑자기 향수 가득한 청춘멜로를 택했는가에 대한 답변으로도 대신할 수 있다. 과연 이 영화는 예쁘고 잘생긴 주연배우들과 라디오부터 천리안, 핸드폰과 함께 각 시대를 대표하는 음악 등 관객들이 사랑하는 요소들을 가득 우겨넣음으로써 '결코 실패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낸다. 그런데 선배영화들의 성공요소를 답습해 실패를 최소화한 영화의 선택은, 좋아하지만 불안한 라디오 인턴 대신 지루하지만 안전한 출판사 정직원을 택하는 '미수(김고은)'와 똑 닮아있다. 아이러니한 건 그래놓고 마지막엔 글쓰기와 '현우(정해인)'의 곁으로 돌아오는 미수를 통해 좋아하는 일과 사람을 택해야 한다는 메세지를 전하려 한다는 점이다. 정작 영화는 창작적 개성보단 제작비 회수가 우선인 모습을 보여주면서 말이다. 그러니 결말부의 이별과 재회는 감흥이 없고, 미수의 갈등이나 선택은 전혀 와닿지 않을 수 밖에.



물론 장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이 영화의 악역들은 마냥 작위적이고 일차원적이지 않다. 현우의 불량한 친구들은 범죄의 온상으로 끌어들일 것 같은 인상이지만, 정작 제사를 지내거나 속죄를 지내기 위해 그를 불러들일 뿐. 조금 껄렁하지만 평범한 남자애들일 뿐이다. 재력과 권력으로 미수를 유혹하고, 현우를 위협하는 '종우(박해진)' 역시 춘향전의 변사또처럼 막나가지는 않는다. 이처럼 영화가 통속적 요소를 적절한 선에서 덜어낸 덕에, 현우는 깡패가 되고 미수는 상사에게 팔려간다는 막장 신파 멜로라는 최악의 상황은 피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김고은과 정해인이라는 두 배우의 매력을 극대화는덴 톡톡히 성공한다. 정해인에겐 순수한 연하남친 이미지를 울궈먹는 대신 어둡고 진지한 배역으로 색다른 매력을 끌어내고, 김고은은 그녀의 필모그래피 중에서 가장 아름답게 화면에 담긴다. 영화를 보는 내내 그녀가 저렇게 예뻤었나 내내 감탄사가 나올 정도다. (김고은 배우에게 정지우 감독은 정말 귀인인 듯 싶다.) 두 배우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 필자마저 그들을 보는 재미로 영화를 보았을 정도니, 두 배우의 팬이라면 이 영화에게서 얻어갈 즐거움은 충분해보인다.



그러나 이 두 장점은 영화가 '최악'은 아니며, 볼 것은 '배우의 매력' 뿐이라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정말이지 이 영화에서 빛나는 건 두 배우 밖에 없다. 정작 영화는 라디오로 만나 천리안으로 소통하는 초반부는 <접속>을, 손만 잡고 잘 정도로 순수했던 대학생의 사랑은 <건축학개론>을, 계속 엇갈리다 드디어 접점에서 만나 연인이 되는 시기는 <너의 결혼식>을, 과거의 죄에 현재와 미래가 묶여버린 현우의 비애는 <보이A>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이처럼 다른 영화들을 짜집기하고 이어붙인 흔적만이 가득할 뿐, 그 안에서 <유열의 음악앨범>만의 고유한 개성이나 정체성은 발견되지 않는다. 그러나 관객은 네 편의 영화를 속성으로 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유열의 음악앨범>이라는 영화를 보러 온 것이 아닌가. 실패의 두려움에 사로잡힌 이 창작가의 작품이 그리 매력적으로 다가오지 않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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